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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알렉스 캘리니코스 강연:
트럼프와 제국주의 질서의 위기가 낳은 혼돈 이해하기

1999년에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와 베벌리 실버는 《근대 세계체제의 지배 구조와 혼돈》[국역: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 모티브북, 2008년]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오늘날 상황을 보면 지배 구조보다는 혼돈이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아리기와 실버는 오늘날 세계 질서의 혼돈을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미국의 ‘헤게모니 자본주의 국가’ 지위의 쇠락을 지목했습니다.

트럼프가 자신이 약속한 것과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숨기려고 하면서 세계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출처 백악관

헤게모니 자본주의 국가란 무엇일까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지도적 자본주의 국가들이 거기에 따르도록 만들면서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자본주의 국가를 말합니다.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헤게모니의 세계적 성격은 오늘날 위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튼, 앞서 말한 책을 쓰고 몇 년 후 아리기는 이라크 전쟁, 즉 조지 W 부시가 일으키고 토니 블레어가 지원한 이라크 침공·점령이 미국 제국주의의 결정적 패배 중 하나이자 미국 헤게모니 종말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미국 헤게모니 종말의 시작을 선언한 것이 성급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점령에서 겪은 패배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국제 좌파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관해 말하기를 꺼립니다.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이 이슬람주의나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의 혼합에 기초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큰 오판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은 1960~1970년대 베트남에서도 패배한 적이 있지만 이라크에서 겪은 패배가 더 심각합니다. 50여 년 전 미국이 사이공에서 달아날 때는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할 자본주의 국가가 부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경쟁자였던 소련은 당시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라는 만만찮은 경쟁자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2007~2009년 세계 금융 위기와 뒤이은 오랜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정 속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지금의 위기가 시스템 전반의 위기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위기의 중심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쇠락이 있지만, 시스템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부상하는 강대국인 중국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제국주의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체제로 봐야 합니다. 제국주의는 한 국가가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하고 횡포를 일삼는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지배와 횡포는 비일비재하지만 말입니다. 제국주의는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인류를 더 많이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체제입니다.

현재 제국주의 간 경쟁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치 〈파이낸셜 타임스〉의 1면 헤드라인은 중국이 세계 도처에서 광산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등 오늘날의 첨단 기술을 개발·사용하는 데에 특히 중요한 광물들을 확보하는 데서 중국이 우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연합(EU)이 그런 광물들의 전략적 비축을 결정했다는 짧은 보도도 있습니다. 그런 일에서 EU가 중국보다 훨씬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점은 뻔하지만, 아무튼 이런 보도들은 그 경쟁이 자아내는 긴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계화가 약속했던 세계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핵심 자원 확보 능력은 갈수록 해당 국가의 지정학적, 군사적 능력과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습니다.

또한 군비 경쟁이 거세지고 있는데, 특히 유럽에서 두드러집니다. 국내총생산(GDP)의 5퍼센트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는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나토의 결정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의 구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을까요?

트럼프가 워낙 괴짜인 만큼, 그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트럼프주의, 즉 하나의 정치 운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운동 안에는 상이한 지도자들과, 어느 정도 서로 경쟁하는 이데올로기들이 있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하겠습니다.

트럼프주의를 트럼프 개인으로 환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최강 제국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그의 전임자들이 부딪혔던 딜레마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전임자 조 바이든을 봅시다. 바이든도 중국을 경제적·지정학적으로 고립시키려고 공세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중국으로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미국 제조업을 성장시키려고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죠. 그러나 대체로 바이든은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 추구한 전통적인 전략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다른 중요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을 미국 지도하에 단일 블록으로 결집시키는 것이죠. 지금 맥락에서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에 맞선 블록으로 결집시키는 것을 뜻하죠.

그러나 바이든의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해치는 일도 꽤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재는 자유 무역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죠. 반도체 등의 수출 금지 조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간과되는 또 다른 조처도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본질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입니다. 그 프로젝트는 1940년대에 시작됐다가 부분적으로 중단된 뒤 신자유주의 시대에 다시 확고하게 추진됐는데, 그것은 미국 등 주요 자본주의 열강의 자본에 시장을 개방하라고 각국에 강요하기 위한 일련의 기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은 WTO 분쟁 해결 기구의 최종심 판사 임명을 가로막아 WTO를 마비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바이든은 미국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창조물을 사보타주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트럼프는 WTO를 좋아한 적이 없고 그의 행동은 일관됩니다. 그러나 이른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라는 자들도 WTO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런 전략을 더 철저하게 추진했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횡포를 부리는 미국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죠. 그린란드를 갖겠다고 하고, 영광스런 미국의 일부가 되라고 캐나다를 압박하고, 파나마를 갖겠다고 하고, 우크라이나 천연 자원을 뜯어내는 협상을 체결한 것을 보십시오. 트럼프는 콩고민주공화국(DRC, 거대하고 광물 자원이 풍부한 가난한 나라입니다)에서 벌어지는 내전의 휴전을 중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란 폭격 후에도, 노벨평화상에 미련이 남은 탓도 있겠지만 트럼프는 휴전을 중재하면서 그 나라의 광물 자원에 대한 미국의 권리를 약속받았습니다.

한편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엉망진창이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여겨 볼 것이 적어도 하나 있습니다.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스티브 미런이 고안한 정책은 관세를 이용해 미국에 충성하는 일부 국가들을 미국 주위로 결속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국방비 지출을 늘려 미국의 부담을 줄여 주면 그 대가로 관세를 깎아 주는 식으로 충성파를 결집시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충성해서 이런 보상을 받으려는 주요 후보로 누가 있을까요? 당연히 [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가 있습니다. 그는 그런 일이라면 사족을 못쓰죠.

전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중국에 집중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러시아와 거래를 하려는 이유 또는 여러 이유의 하나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둘 다를 미국에 맞서는 상황으로 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뜻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러시아와의 거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차지한 땅을 인정하는 것만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나토 정상회담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미국은 유럽의 군비 지출을 늘려 유럽 국가들에 러시아 억제를 떠맡기려 합니다. 현실성 있는 계획은 아닌 듯합니다.

난관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푸틴이 미국의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두고 미국과 거래를 함으로써 각종 제재를 해제하고, 미국과 공동 사업을 벌이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시스템에서 부분적으로 배제당한 것을 되돌리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것이 푸틴의 장기적 목표일 텐데, 지금 당장은 전쟁을 좀 더 지속하면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빼앗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측이 맞는지는 지켜볼 일이죠.

그러나 트럼프가 직면한 가장 큰 난관은 미국이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라는 것과 관련있습니다.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는 모든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국의 역량에 큰 부담이 됩니다.

영국 제국주의는 1930년대에 이 문제에 직면했었습니다. 당시 영국 제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정치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헤게모니 국가 지위를 지키려 했습니다. 1930년대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유럽에서는 독일, 지중해에서는 이탈리아,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경쟁자로 등장했고 그래서 영국은 이들을 견제하는 데 힘이 부쳤습니다.

현재 미국 제국주의는 당시 영국 제국주의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전에 오바마는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중동에는 제한적으로만 개입하려 했습니다. 트럼프도 그러려 하지만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 “미국인의 생명과 돈을 중동에 낭비하는 일을 멈추겠다”고 약속해 왔고, 이 공약들은 두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왜 그랬냐면, 바이든과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2023년 10월 이래 분명해진 것을 봅시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입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구축한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이 달리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 등에 크게 의존하지만 미국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중국이 걸프산 에너지원의 최대 수입국이고, 사우디는 반공이니 뭐니 하던 과거를 잊고 여러 방면에서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나름 운신의 폭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결정적 순간에는 미국의 군사력과 금융 패권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말해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지역 한복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가 주변국들과 협정을 맺고 협력한다고 해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할 것입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모든 저항, 그들이 말하는 “모든 안보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가자지구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하고, 서안지구에서 인종 학살을 시작하고, 레바논을 공격하고, 헤즈볼라 지도부를 제거하고, 최근에는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은 다른 매력적인 대안이 없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정책에 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양의 무기와 기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그런 정책을 가능케 하고 있기도 하죠.

트럼프는 미국의 이런 정책을 큰 틀에서 이어가면서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고 핵협상에 나서 과거 자신의 정책을 뒤집고 네타냐후를 놀라게 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임기 때 네타냐후의 로비를 받아들여 오바마가 체결한 이란 핵합의를 폐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비슷한 핵합의를 다시 체결한려 한 것입니다. 네타냐후는 협상을 좌초시키려고 이란을 폭격해 사태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려 했던 듯합니다. 네타냐후가 이런 주도력을 발휘했다고 해서 트럼프가 이를 사전에 몰랐다거나, 미국 국방부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돕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협상에 이용하는 방안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듯합니다.

그러나 미국 전투기들이 이란 핵시설에 무시무시한 3만 파운드짜리 벙커버스터와 순항 미사일들을 수십 기를 쏜 것은 전쟁을 신속하게 승리한 것처럼 끝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주말치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스티브 배넌과의 조금 괴상한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 운동의 핵심 인물로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거기서 배넌은 트럼프의 이란 전쟁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란 정권 교체를 이룰 장기전을 바란 네오콘과 네타냐후를 트럼프가 물리쳤다는 것이죠. 어쩌면 그의 말이 참말일 수도 있습니다.

배넌 얘기가 나온 김에, 트럼프가 이끄는 꽤나 복잡한 연합을 살펴봐야 합니다. 한편에는 전통적인 공화당 자본가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라는 것은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 감세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커지더라도 개의치 않을 자들이죠.

그다음 거대 기술 기업주들이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뿐 아니라, 출세나 이데올로기적인 온갖 이유로 트럼프 주변에 모여든 작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작은 국가를 선호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규제를 막아 줄 국가도 원합니다. 예컨대, 실리콘밸리가 소재한 캘리포니아에 진보적 민주당 주지사가 등장해 거대 기술기업을 규제하려고 할 때 연방 정부가 이를 막아 주길 바라죠. 특히, 자신들을 규제하려는 EU에 맞서는 보호자가 돼 주길 바라고 어느 정도는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국가의 보호를 바라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데올로기적 환상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배넌이 이끄는 운동이 있습니다. 배넌이 파시스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배넌은 아주 영리하면서 고약한 파시스트입니다. 그는 자의적 체포·구속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체포·구속적부심사 제도를 중단시키고 “불법” 이주민 1,100만 명을 강제 추방하라고 트럼프에 요구합니다. 배넌은 공화당이라는 틀 안에서 파시스트 운동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입당 전술입니다.

트럼프 연합 안에는 온갖 분열이 있습니다. 배넌은 부자 증세를 바라고 복지 삭감에 반대합니다. 그는 머스크를 증오합니다. 또한 우리는 머스크가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예산안]과 감세안 등을 얼마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머스크는 또한 관세에 반대하는데, 그가 글로벌 자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장 큰 공장이 중국에 있는데, 관세는 그의 사업을 완전히 곤란하게 만들 것입니다. 또한 트럼프의 긴축 예산에는 전기차 보조금 삭감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 보조금은 어마어마했고, 그 덕에 테슬라가 채무 상환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영리한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관해서는 충분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천하무적인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는 후퇴도 해야 했는데 바로 국채 시장 때문에 그래야 했습니다. 미국 국채는 세계 통화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과거 금이 하던 구실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미국 국채가 대거 매각되기 시작하면 미국 국가는 곤란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관세 도입을 유예해야 했던 것입니다.

트럼프는 다른 자본가들한테서도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일본은 더는 예전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EU는 거의 모든 면에서 쓸모없는 기구이지만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이빨을 드러낼 것입니다.

스펙터클

이 대목에서 트럼프가 ‘스펙터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해 얘기해야겠습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 사회》[국역: 《스펙타클의 사회》, 울력, 2014년]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현대적 생산 조건이 지배적인 사회에서의 삶 전반은 거대한 스펙터클의 집적으로 나타난다. 모든 직접적인 삶의 경험이 표상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당시 드보르는 전후 자본주의에 관해 썼습니다. 그는 TV, 영화, 사진 잡지 등을 통해 일상이 이미지로 넘쳐난다는 점을 다뤘습니다.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죠. 인터넷, 스마트폰, SNS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호주머니 속에 스펙터클을 갖고 다닙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SNS의 달인입니다. 그는 SNS을 이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정적을 상대로 정치적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성과가 스펙터클로 각인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뜻합니다. 4월 초 트럼프가 “해방의 날” 운운하면서 관세를 잇따라 발표했던 것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이란 핵시설 폭격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발표했을 때(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상당히 많습니다) 트럼프는 왜 그토록 화를 냈을까요? 왜냐하면 전쟁을 멈추려던 그로서는 승리를 선언하는 스펙터클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SNS 등에서 쏟아내는 말과 그가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고, 트럼프는 온갖 스펙터클로 그 간극을 메우고 있습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 드보르는 트럼프 같은 인물을 상상도 못했겠지만, 트럼프야말로 그의 이론에 딱 들어맞는 자입니다. 트럼프가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대대적인 이주민 단속에 나선 것에도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스펙터클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는 이렇게 뽐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주민 문제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트럼프의 단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배넌 등의 요구대로 진지하게 1,100만 명 추방을 트럼프가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스펙터클의 생산과 가공은 트럼프가 정치 지도자로서 활동하는 방식의 중요한 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적의 위험성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고 어떤 점에서 일말의 위안을 주기도 하는데, 트럼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기 때문이죠. 트럼프는 온갖 안개와 연출로 현실을 가려야 하는 처지인 것이죠.

물론 이 모든 것의 근저에 있는 제국주의 간 갈등은 결코 주되게 스펙터클 수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제가 말했듯, 자원 확보를 놓고 맹렬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고 아주 위협적인 군비 경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이 그렇지만, 레바논과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은 무기 체계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잔혹하고, 야만적인지 힐끗 보여 줬습니다. 때로는 아주 끔찍한 광경을 우리 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배계급들은 이처럼 끔찍하고 파괴적인 무기를 계속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근본적으로 트럼프가 (비록 대단히 역겨운 자이지만) 증상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그는 단지 현 상황의 수동적 반영이 아니고 능동적 구실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혼돈에 빠진 제국주의 시스템의 한 증상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트럼프와 같은 괴물을 세계 도처에서 배양하는 이 시스템에 맞서는 국제 반제국주의 운동을 세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인종 학살 전쟁이 2년 가까이 벌어지면서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그런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할 첫 단추라는 것입니다. 그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이 제국주의 체제를 그대로 놔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될 일을 보여 주는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발언

흥미로운 토론이었고 많은 주장이 나왔습니다.

먼저, 미국이 이스라엘을 저버리고 이란을 취할 가능성을 물은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저버리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두 국가의 군사·안보 기구가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결과 앤 알렉산더가 말한 “이스라엘의 디지털 군사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돼 있는데 그것은 좁은 의미의 군사 기술을 훨씬 넘어 감시 기술 분야 등으로 확대돼 있고, 서방 군대에게도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버릴 이유가 논리상으로는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실행에 옮기기는 매우 어려운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그것이 중동에 미칠 파장입니다.

이란 정권은 미국과 기꺼이 협상하려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979년 이란 혁명에서 중심적 구실을 한 것은 노동계급이었습니다. 이란 정권은 혁명적 외관과 언사를 취하지만 실은, 혁명 과정의 일부였던 노동자 위원회인 쇼라와 좌파를 파괴한 반혁명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이란 정권은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세력을 자임하지만 실제로는 대결을 회피합니다. ‘저항의 축’의 목적 자체가 이란에 여러 겹의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란의 동맹 세력들을 주도면밀하게 무력화시키는 동안, 이란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동맹을 구하기 위해 결코 충분히 대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컨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당할 때 그랬죠. 그러다 결국 이제는 이란 자신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란이 여전히 만만찮은 군사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고, 이스라엘이 시인하는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끝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스펙터클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합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분명하게 표명된 적은 없더라도 분명 합의가 이뤄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란은 카타르의 주요 미군 기지에 상징적인 공격을 하기 전에 이를 미리 알렸고 그래서 모든 인원을 철수시킬 수 있었던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이란은 명예를 회복했고 전쟁을 끝내도 된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조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번 전쟁이 대성공이었고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제거했다는 인상을 망칠 수 있는 것 모두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란 지배계급은 난처한 처지에 있습니다. 그들의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협소한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 보유는 정신 나간 선택이 아닙니다.

이란이 미국 제국주의의 만만찮은 적수가 아님이 드러났다면, 누가 그런 적수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중동의 노동계급입니다. 중동 노동계급은 지배계급들과 제국주의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혁명을 잇따라 일으켰습니다. 특히 이집트 노동계급은 위대한 저항의 역사가 있습니다. 2011년 혁명도 있지만 그 역사는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 노동계급이 움직일 때 (그런 일이 언젠가 벌어지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중동의 정치적 가능성은 활짝 열릴 것입니다.

아랍 동부에서 공산당들이 노동계급에 끼친 영향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스탈린주의 영향으로 노동계급 운동을 각종 민족주의에 종속시킴으로써 잇따라 패배를 낳았습니다.

끝내기 전에 몇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군대의 와해로 패배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징집 군대였습니다. 오늘날 군대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자원병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미군의 구성을 보면 군인의 18~20퍼센트가 히스패닉입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첨병인 해병대의 경우는 더 높은 23퍼센트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이라크 전쟁 당시 히스패닉계 이주민 남성들은 이라크에서 복무하는 대가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대가로 시민권을 준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제국주의가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억류하고 추방하는 것을 본다면 충성도와 군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렇듯, 트럼프가 추구하는 정책에는 온갖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로 의식의 엄청난 급진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스펙터클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2년 가까이 인종 학살의 스펙터클이 날마다 펼쳐지는 동안 권력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이 세계가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글래스톤버리 페스티벌을 둘러싼 논란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BBC와 핵심 권력층은 “충격과 공포”라며 아우성을 치지만 대다수 사람들과 도통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대다수 사람들은 [공연 중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지지 구호를 연호해 화제가 된] 밥 빌런, 니캡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음악인들이 현재 벌어지는 일에 수천만, 수억 명이 느끼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노는 건설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더 광범한 운동을 위한 활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우리가 기회를 붙잡고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예컨대, 몇 주 전 군수 공장 앞에서 벌어진 훌륭한 시위들을 더 많이 벌여야 합니다. 자국 자본주의 내에서 가동되는 죽음의 기관들을 공격하고 그것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운동에 노동조합 운동의 광범한 층과 그 외 많은 사람들을 더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단지 특정 쟁점과 대결하는 운동을 벌이는 조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쟁저지연합(StW), 팔레스타인연대운동(PSC)은 많은 일을 훌륭하게 해냈지만, ‘팔레스타인 행동’(PA)이 받는 탄압에 관해서는 갑자기 침묵을 지켰습니다. 개탄스러운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은 이 체제에 맞서고 학살 기구에 저항하는 자들에게 무조건 연대하려는 혁명가들의 조직입니다. 우리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더 넓게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은 바로 그런 조직을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신다면, 우리와 함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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