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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이렇게 생각한다
‘국익’은 좌파가 취할 개념이 아니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미국 대법원 상호관세 위법 판결: 계속되는 트럼프 관세 압박과 이재명 정부의 순응”을 읽으시오.

‘국익(국민의 이익)’ 개념은 사실 아주 정교하게 짜인 기만적인 프레임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된 것은 실제로는 지배 계급(대자본가와 고위 국가 관료)의 이익일 뿐이다. 사회는 근본적으로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계급’ 단위로 나뉘어 있다. ‘국익’이라는 말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같은 배를 탔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이 ‘국익’이라고 선전되지만, 그 이익의 대부분은 주주와 경영진에게 돌아간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는 흔히 별개 문제다. 즉, 국익은 계급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가리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도 ‘국익’을 내세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국가는 자국 자본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자원을 독점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국익을 위해 해외 파병을 한다”거나 “무역 협정을 맺는다”는 명분은 사실상 대자본의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세력 확장일 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간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이어지게 된다.

국제주의의 핵심 슬로건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다. 그러나 ‘국익’은 이 단결을 방해한다. ‘국익’을 강조하면 다른 나라의 노동자를 ‘동지’가 아닌 ‘경쟁자’나 ‘적’으로 보게 만든다. 자국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경제(국익)를 위해 임금이 낮은 외국인 노동자를 막아야 한다”거나 “타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전 세계 노동계급이 자본에 맞서 연대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

국가는 중립적인 중재자가 아니다. 국가는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따라서 ‘국익’이란 곧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안에 사는 모든 구성원의 보편적 복지를 뜻하는 게 아니다.

요컨대 ‘국익’은 노동자들을 자본의 논리에 순응시키고, 국경 너머의 동지들과 싸우게 만드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덫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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