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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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이스라엘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자 미국 등 서방 정부들과 아랍 독재 정권들은 이구동성으로 “중동 지역 내에서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데 우려”를 표하고 “확전 자제”를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는 역겨운 위선이자 이중 잣대다. 국제법상 수도가 공격당한 국가는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서방은 자위권을 이스라엘에만 적용할 뿐 이란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지금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확전 자제” 촉구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해 중동에 군대를 추가 배치한다는 뜻이다.
물론 바이든은 하니예 암살이 가자지구 휴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고, 네타냐후에게 “[미국] 대통령을 쉽게 보지 말라”며 으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의 위협에 맞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테니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막지 말라는 네타냐후에게 바이든은 “안보 보장”으로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이란의 대리 테러 단체들을 포함한 모든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백악관 성명)
이스라엘은 하니예를 암살하기 몇 시간 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드론을 이용해 레바논 정당 헤즈볼라의 군사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살해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여전히 서방 제국주의의 경비견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공격이었다.
푸아드 슈크르는 2019년 미국 정부가 “국제 테러리스트”로 직접 지목한 인사였다. 미군 241명이 사망한 1983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공격을 주도했다는 게 그 혐의였다.
미국이 헤게모니 위기를 겪자 중동 지역 강국들은 자기 방식대로 게임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테헤란과 베이루트에서 암살을 저질렀다. 또, 이스라엘은 미국·이집트·카타르가 중재하는 휴전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이스라엘군은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가자시티 내 알타빈 학교를 공격해 팔레스타인인 100여 명을 학살했다.(그러자 하마스는 새 휴전 협상에 불참하겠다고 밝히고 바이든이 제출한 기존 가자 휴전안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영자 일간지 〈하아레츠〉의 칼럼니스트 기드온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국무장관] 블링컨과 미국 정부가 이 전쟁이 끝나기를 원했다면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이스라엘에 전쟁을 멈춰 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이것은 국제관계가 아니라 애들 장난이다.”(알자지라, 8월 1일 자)
그 결과 분쟁 지역들은 늘어나고 발화점에 가깝게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갈등의 소용돌이에 내밀하게 개입하고 있다. 친헤즈볼라 성향의 레바논 일간지 〈알 아크바르〉는 특히 미국의 중동 특사 아모스 호흐스타인이 푸아드 슈크르 암살에 관여돼 있다고 비난했다(8월 1일 자).
호흐스타인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국경지대 충돌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임무를 맡은 대통령 중동 문제 보좌관이다.
〈알 아크바르〉에 따르면, 골란 고원의 마즈달 샴스에 대한 로켓 공격이 있은 뒤 호흐슈타인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레바논 측에 약속했지만,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에 머물고 있던 슈크르를 살해했다.
누구도 상황 통제 못해
이스라엘이 연달아 암살 작전을 벌이자, 언론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이 지난해 10월 7일 경계 실패에 대해 “복수”했다고 논평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선정적으로 추켜세웠다.
확전 가능성이 상당히 실질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 암살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10개월 넘게 가자지구에서 인종청소를 벌이고 서안지구에서도 잔혹한 공격을 감행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 제2의 나크바를 겪고 있다. 150만 명이 폭격을 피해 피란을 갔고, 4만 명 가까이 죽었으며, 1만 명이 잔해 속에서 썩어가고 있고, 9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500명이 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사망했고 36개 병원 중 34개가 파괴됐다. 수십만 명이 기아와 전염병의 위험에 처해 있지만 의료 서비스가 없어 대부분 생존하기 어려운 상태다.
가자지구 곳곳은 식량·물·전기가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지금 가자지구는 지난해 10월 9일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가 예고한 대로 됐다. “나는 가자지구를 완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전기·식량·연료 등 모든 것이 차단될 것이다. … 우리는 인간 짐승들과 싸우고 있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꺾지 못하고 있다. 〈하아레츠〉는 이미 4월 8일에 이렇게 지적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좇는 승리는 그가 말하는 것만큼 가깝지는 않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가자지구 남부에서 철수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전쟁 목표 달성에 다가가지 못했고, 이제 서방 측의 더한층의 반대와 씨름해야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와 중대위협프로젝트(CTP)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라파흐 지상 공격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인]라파흐 여단에 대한 해체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몇 주 동안 지연되고 있다.”(알 자지라, 8월 6일 자)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지지를 받으며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 정부들을 위기에 빠뜨렸다.
10개월 전에 서방 지도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편들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영국 총선에서는 집권 보수당이 대패했다. 독일의 여당인 사민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3위로 밀려났다. 미국에서는 “학살자 조 바이든”이 후보직에서 물러나고 카멀라 해리스로 대체됐다.
정치 위기의 방정식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대입시키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게다가 최근에 중국이 주선해 모든 팔레스타인 단체들이 합의한 내용(“임시 민족 화해 정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체의 “정치적 해법”을 마련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이런 현실들을 보건대, 이스라엘이 하니예를 암살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텔아비브대학교 국가안보연구소는 하니예의 “물리적 소멸”이 하마스의 정치적·군사적 능력, 그 내부 조직이나 더 넓은 팔레스타인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알 자지라, 8월 1일 자).
또 다른 이스라엘 측 분석가도 〈파이낸셜 타임스〉(8월 2일 자)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이스라엘 군사 정보 장교이자 텔아비브대학교의 수석 분석가인 마이클 밀슈타인은 하마스 지도자들을 표적으로 삼는 정책이 하마스의 공격 능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략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런 살해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차 인티파다 기간에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핵심 지도자들을 모두 죽였지만 2년 후 하마스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3년 후에는 가자지구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012년 하마스의 정치적·군사적·이념적 지도자였던 아흐마드 자바리를 살해했지만 10년 뒤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매우 극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8월 6일 하마스는 가자지구 하마스 수장인 야히야 신와르를 새 정치국장으로 임명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이 중동 어디에서도 안전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면, 이제 최고 지도자가 [가자지구의] 터널 어딘가에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알 자지라, 8월 6일 자)
지금으로서는 중동의 위기가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 아무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고, 효과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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