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위기의 책임은 이란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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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를 넘어 전쟁의 위험이 중동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란과 그 동맹들, 특히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조율된 보복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란과 그 동맹들이 이스라엘에 어떤 공격을 가하든 확전의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에 있다.
이스라엘은 7월 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다. 또,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살해했다.
이 살해 사건들은 이란과 레바논 국민에게 굴욕감을 안겨 줬다. 이란 지도자들은 바로 보복 공격을 다짐했다.
이스라엘이 중동 확전을 부를 수도 있는 도발을 하는 것은 미국이 “철통같은” 지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빽 믿고 까부는” 것이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8월 11일(이하 현지 시각)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와 한 통화에서 “이스라엘 방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그 뒤 로이드 오스틴은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투단과 조지아 유도 미사일 잠수함을 (중동 지역 관할인) 중부사령부 관할 구역으로 급파하라고 명령했다. 그곳에는 이미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 전투단이 배치돼 있다.
그다음 날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총액 20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무기 공급을 승인했다.
또,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지도자들은 이란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을 공격해 지역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의 기회를 위태롭게 할 경우 이란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 대변인 나세르 칸아니가 이렇게 반박했다.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에 대한 어떤 이의 제기도 없이 뻔뻔스럽게 이란에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침해에 대응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네타냐후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 지역을 항구적인 전쟁 상태로 만들려는 자신의 노력을 지지해 줄 거로 기대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주권을 두 번이나 침해했던 것이다.
이란은 힘의 균형과 억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일정 수준에서 보복을 하려 할 듯하다. 현재의 확전 위기가 제한적으로 일단락될지 아니면 지역 전쟁으로 번질지는 불확실하다.
만일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을 벌이면 전쟁은 두 국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중동은 넓은 땅덩어리에 많은 행위자가 얽혀 있는 지역인 만큼 전쟁의 파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동 확전을 반대하는 주장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여기서 말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지지자들 사이에서 사기 저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이 막상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밝혀 운동이 방향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투쟁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스라엘이야말로 휴전 협상 방해꾼이다
미국·이집트·카타르가 중재한 가자 전쟁 휴전 및 인질 교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휴전 협상은 7월 말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자와 헤즈볼라 최고 사령관을 암살한 데 대해 이란과 헤즈볼라가 보복을 다짐한 상황에서 재개됐다.
미국은 휴전 협상을 이용해 이란의 보복 공격을 자제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8월 18일 네타냐후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열 번째 만남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와 현지인들은 협상 타결과 관련해 부정적인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는 일이라는 게 신중한 낙관론을 자아내는 한편, 골대를 옮겨 협상에 동의하지 않는 책임을 하마스에 전가하기 때문이다.”(알자지라, 8월 14일 자)
이번에도 네타냐후는 하마스가 동의하지 않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이스라엘군을 필라델피 회랑(가자지구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경계)에 영구 주둔시키고, 가자지구 북부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실향민들을 검문하고, 팔레스타인인 수감자에 대한 석방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조차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협상 타결에 장애물을 놓는 당사자라고 말한 사실이 폭로됐다.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제거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자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그는 인종 학살을 중단하고 싶지 않은 이스라엘 극우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그동안 휴전 협상 타결 기회를 기피하고 방해했다. 그는 미국이 휴전 압력을 가해도 이스라엘이 자신의 방식대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당연히 하마스는 새로운 협상에 관심이 없다며, 바이든이 5월 말에 제안한 협상안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