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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7조 위헌 첫 공개변론:
국가보안법 개정의 핵심 쟁점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9월 1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7조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이적) 단체를 구성하거나, 그런 단체나 행위를 찬양·고무·선전·동조하거나, 그런 내용의 ‘이적’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하는 경우를 처벌한다.

이번 위헌 재판은 2017년 이후 접수된 11건의 위헌소원 등이 병합돼 열린 것이다. 위헌 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29명이 공동대리인단을 꾸렸고, 합헌 측은 법무부가 대리인단을 꾸렸다.

지난 30여 년간 늘 그랬듯이 법무부의 핵심 주장은 국가보안법이 과거와 달리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오·남용 사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들을 열거했다.

그러나 이번 위헌 재판 자체가 2017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접수된 사건들이라는 점만 봐도, 법무부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심지어 이 11건 중에는 지방법원 판사들이 넣은 위헌제청 두 건도 포함돼 있다.

법무부의 주장은 또한 (최종 무죄가 나왔더라도) 검찰의 국가보안법 기소 행위 자체가 국가권력의 횡포임을 가리려는 수작이었다.

국가 안보 논리의 약점

그런데 법무부 측이 이처럼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은 민변 대리인단 측 논리의 약점을 파고들기 위함이었다.

민변 측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표현물 소지’를 국가보안법 7조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적으로 위험이 현존할 수 있음이 명백히 입증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또, 7조의 처벌 대상 중 표현물 ‘소지’와 나머지 ‘전파’ 행위를 구분해, 후자와 달리 전자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운반·반포·판매 등에 대한 처벌은 허용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관점으로 최근 김일성 회고록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있는 출판사북한 연구자를 방어할 수 있을까?

민변 측이 강조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논리는 ‘무엇을 위험으로 볼 것인가’를 모호하게 남겨 둠으로써 국가보안법 반대 논거를 취약하게 만든다. 가령 이 논리로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존재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임이 분명하므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법무부 측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이유로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는 지배자들에게 이용되기 쉽다. 지배자들은 이 논리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이용해 왔다. 헌법상 명시된 여러 기본권을 합법적으로 제약할 수 있게 해 주는 헌법 37조 제2항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해, 국가보안법을 실천에서 헌법보다 상위의 법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 준다.

국가보안법에 일관되게 반대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냐 아니냐를 따질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권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공개변론 날 헌재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등의 기자회견 ⓒ출처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7조만?

민변 측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논리를 수용한 것은, 근본적으로 국가 안보 논리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안보 논리에 타협하면, (7조 같은 일부 독소 조항을 제거한) 국가보안법 자체는 필요하다거나 또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법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변 대리인단은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히 국가 안보 위협 세력을 처벌할 수 있으니 국가보안법은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형법의 내란죄 조항을 염두에 둔 언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루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는 형법상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를 이용해 이석기 전 의원 장기 수감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라는 폭거로까지 나아갔던 바 있다.(관련 기사: “이렇게 생각한다: ‘내란죄’가 저들의 새로운 무기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한편, 이번 위헌 소송 중에는 2조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민변 대리인단은 7조만 두고 다퉜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내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지난 30여 년간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에서 ‘7조 폐지’로, 7조 폐지에서 또 ‘7조 일부 개정’으로 후퇴해 왔다. 7조만 문제인 것도, 7조와 다른 조항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 ‘이적단체’(7조)와 ‘반국가단체’(2조) 사이에 법리상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 사노맹은 반국가단체였다가 (김영삼 정부 등장 후) 이적단체로 성격 규정이 완화됐다.

물론 국가보안법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 온 자민통계 활동가들이 법 일부라도 손질해 탄압을 줄이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 받아 온 고통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남한 지배자들의 매우 유용한 무기이다. 체제의 존속이 쟁점이 될 만큼 강력한 노동계급 대중 투쟁이 펼쳐질 때 비로소 지배자들은 이 무기를 마지못해 일시 포기할 것이다. 양보해서 법 일부만 바꾸자고 하면 지배자들을 좀 더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김대중 정부 이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운동의 요구 자체가 후퇴해 온 과정은 주로 민주당과의 동맹을 추구하는 속에서 이뤄졌고, 대중 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기보다는 그것을 수동화시키는 방향이었다.

민주적 권리 방어는 어떻게 가능한가

공개변론에서 한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처벌 건수가 시기마다 오르내리는 것은 어떤 요인 때문이냐고 양측에 물었다. 민변 측 대리인단은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사법 기관들의 태도가 바뀌어 국가보안법 처벌이 줄어든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진보 정권에서도 증가한 사례가 있다”며 반박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마음만 먹었으면 폐지할 수도 있었지만 논쟁 끝에 존치하기로 했다”며 민변 측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실제로 김대중은 집권 기간에 보안법 위반으로 3일마다 두 명꼴(총 1164명)로 구속했고, 노무현은 2003년 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던 약속을 내팽개쳤다. 오히려 이들 민주당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본질이 그대로 유지되는 생색내기용 개정안이나 대체입법안을 내놓으며 개혁주의자들을 달래고 포섭하려고 했다(결과적으로 사기극으로 끝났다).

국가보안법 처벌 건수가 2000년대 이후 추세적으로 줄어든 것은 민주당 정권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민주적 권리가 옹호돼 온 것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민주적 권리 방어의 동학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투적인 노동계급 운동과 비종파적인 혁명적 조직의 강화가 핵심이다.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동시에, 기층 운동을 활성화하고 폭넓게 연대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야 보안법 무기를 녹슬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