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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안법 애용하기 시작하는 정부
국가보안법, 왜 폐지돼야 하는가

국가보안법은 흔한 생각과 달리 사문화되지도 않았고 구시대 유물도 아니다.

2017년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관련 국가기관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7~201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39명이 입건됐다. 이 중 70퍼센트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진행된 검찰 수사 건수를 보면, 2019년 305건, 2020년 154건, 2021년 250건에 달했다. 남북경협 사업가 김호 씨, 혁명동지가를 부른 민중당(현 진보당) 당원들, F-35 전투기 도입 반대 충북 지역 활동가들 등이 구속되거나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취임한 지 100일이 갓 지난 윤석열 정부하에서도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김일성 회고록을 펴낸 출판사북한 연구자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한 해군 사병이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읽고 영상을 시청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과 그 남편 김삼석 씨,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인이었던 장경욱 변호사는 보안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흐름은 윤석열 정부가 간첩 조작 책임자인 공안 검사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자리에 앉히고, 독재 정권하에서 경찰 끄나풀로 학생·노동운동을 파괴하며 승승장구한 보안경찰 출신 김순호를 경찰 수뇌(경찰국장)에 앉힌 일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는 국가 관료들과 억압기관들을 더 강하게 통제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좌파와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 한다. 국가보안법은 지배자들이 그런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유용한 무기이다.

국가보안법의 진정한 표적

이 나라 지배자들은 남한이 남북 분단과 대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여전히 놓여 있고, 북한이 계속해서 간첩을 남파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독재 정권과 우파 정부들은 물론 민주당 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국가보안법상 간첩죄 처벌은 국가보안법 전체 처벌의 1퍼센트대에 불과했다. 그조차 다수는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것들이었다. 2007~2017년 간첩죄는 18건에 불과했고 이 중에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이 조작으로 드러난 사건들이 많았다.

국가보안법의 실제 적용과 처벌은 제7조(찬양·고무)에 집중돼 있다. 2007~201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수의 74퍼센트가 7조 위반이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책들. 도서관에서 누구나 빌릴 수 있는데도 누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적표현물’로 둔갑된다 ⓒ이미진

7조는 자의적 잣대로 죄를 덮어씌우기 좋은 조항이다. 가령 박근혜는 김정일을 만나서 김일성을 좋게 말해도 처벌받지 않는 반면, 누군가는 김일성 관련 서적을 읽은 것만으로도 인신 구속이 된다. 시중 서점에 버젓이 판매되는 책이나 노동조합이 나눠 준 대의원대회 문서 등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갑자기 이적 문서가 되곤 한다.

또, 국가보안법은 북한 친화적 사상과는 관계 없는 좌파들(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노련, 해방연대 등)도 이적단체로 규정해 탄압했다. 반체제적 사상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본질적으로 국가 “내부의 적”을 향해 있고, 내부의 적을 탄압해 한국 자본주의를 수호하려는 법임을 보여 준다.

국가보안법은 처음 탄생할 때부터 이런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이승만이 4·3 제주 항쟁, 10월 여순 항쟁 등 잇따른 민중 봉기를 분쇄하기 위해 일제 시대 치안유지법을 본따 만들었다. 미군정의 주도로 갓 태어난 자본주의 국가를 방어하려고 국내 노동자·민중 운동과 좌파를 겨냥해 만든 법인 것이다. 당시에도 항쟁 참여자와 남조선노동당 당원들이 주된 표적이 됐다.

남한 지배자들은 이후 수십 년간 후발 자본주의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 체제의 힘에 기댔다. 국가가 자본을 집중시켜 축적 과정을 주도했고, 노동자 초착취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투쟁 물결 이후에는 민주적 권리들이 전보다 확장되고 군사 독재 시대도 막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탄생의 배경인 냉전 시대도 소련·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저물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독재 야당 출신인 김영삼, 김대중도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았다. 김영삼은 “집권해 보니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더라” 하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던 김대중은 집권 기간에 보안법 위반으로 1164명이나 구속했다. 사흘에 두 명 구속된 꼴이다.

노무현 정부하에서는 노동계급 운동이 정치적으로 더 성장한 덕분에 국가보안법 적용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한 사례로 당시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 탄압을 계기로 당내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자민통 경향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내분을 겪었다.(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이후에도 결정적일 때 국가 안보를 지지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하에서도 국가보안법 탄압은 이어졌다.

군사 독재에 반대했던 자유주의 정부들, 심지어 가장 최근의 민주당 정부인 문재인 정부조차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왔다는 사실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단지 독재 정부나 우파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한 지배계급 전체가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유용한 무기라는 것이다.

어떻게 싸워야 할까

국가보안법이 누구를 탄압하든, 그것이 노리는 최종 효과는 운동 전체를 위축·분열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탄압받는 개인이나 단체를 적극 방어하면서 폭넓은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보안법에 맞선 투쟁의 진정한 동력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대중 운동에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상의 자유를 일관되게 방어해야 한다. 볼테르의 유명한 격언 —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겠다 — 처럼, 국가가 사상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함께 맞서야 한다.

또, 국가보안법의 본질과 역사를 이해한다면 지배계급 정당인 민주당이 이 법을 폐지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정부들)은 대체 입법이나 일부 조항 손질하기 등의 김빠지는 타협안을 내놓고 국가보안법 반대 NGO나 좌파 일부를 포섭하려 해 왔다.

그러나 전임 문재인 정부는 행정 권력과 17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일각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국가보안법 탄압의 빈도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점을 근거로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고 보기도 한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에 자신들은 별로 이해관계가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성장한 결과로 사상의 자유를 더 많이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노동운동 곁을 떠난 적은 한번도 없다.

최근 한국 자본주의를 둘러싼 경제 침체 조짐과 지정학적 위기의 고조 때문에 국가보안법 탄압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학교·작업장·거리 등 자신의 활동 공간들에서 누군가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으면 앞장서서 방어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꾸준히 정치적 주장을 내놓으며 준비돼 있어야 하고, 인내심 있게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