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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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의 악법2 – 국가보안법, 폐지가 답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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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헌법 위의 악법2 – 국가보안법, 폐지가 답이다》(민변, 삼인)가 나왔다. 지난해 《헌법 위의 악법1 –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가 나왔는데, 지난 4월 2권이 출판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이 책에서 공안 탄압의 핵심 무기인 국가보안법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은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악랄한 법인지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6월 30일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한 출판사와 인쇄소, 출판사 대표와 직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수영 시인이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하며 쓴 시는 62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 1월 25일에는 남북경협 사업가 김호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작년 8월에는 청주에서 F-35A 전투기 도입 반대 운동을 한 평화 활동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가보안법 탄압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유물이 아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은 이후로도 국가보안법은 통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헌법 위의 법
이 책에는 ‘모호’, ‘불명확’, ‘자의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모두 국가보안법을 비판할 때 쓰이는 말들이다. 실제로 국가보안법 조항들을 보면 그 내용이 분명하지 않고, 확대 해석될 여지가 크다. 무엇이 죄가 되는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예컨대, ‘국가변란’이란 말이 그렇다. 이 책은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 검찰총장 권승렬이 한 말을 소개한다. “그다음에 ‘국가를 변란할 목적’이라고 했는데 국가를 변란하는 것은 글자가 좀 모호합니다. 즉, 나라를 변하고 흔들리게 하는 것인데 범위와 행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143쪽)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제4조 제1항 제6호에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위 문언만으로는 무엇이 ‘사회 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인지 구체적 판단 기준을 알기 어렵다.”(241쪽)
역대 통치자들은 그 모호함과 불명확함을 이용해 표현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들을 짓밟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돼 온 국가보안법은 74년을 버텨 온 ‘헌법 위의 법’이라고 할 만하다.
정치적 목적
국가보안법이 일제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법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도 국가보안법 탄생 배경이 서술돼 있다.
“식민통치의 기술자들이, 그들을 기용한 이승만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상을 처벌한 치안유지법을 땅속에서부터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158쪽)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의 배경에는, ‘친일파(처단) 정국’을 ‘반공 정국’으로 전환시키려는 세력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161쪽)
국가보안법은 처음부터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 지배계급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생겨났다. 제정 이후로는 한국 자본주의를 수호하고 대중을 억압하고 권력에 맞선 저항을 탄압하는 지배자들의 무기로 쓰였다. 지배자들의 필요에 따라 반독재 재야 인사, 반자본주의 좌파들은 물론이고 무고한 사람들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모진 고초를 겪고 처벌받는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간첩 조작이 대표적이다. “조작간첩들은 자신이 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집권 세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간첩으로 만들어졌다.”(217쪽) “한국 현대사에서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국정원, 국군기무사령부와 경찰대공분실로 이어지는 공안수사기관들은 줄곧, 간첩을 만들어내는 곳, ‘간첩공장’이었다.”(187쪽)
2013년에 벌어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도 간첩 조작이 자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누구는 남북교류협력법, 누구는 국가보안법?’
이 책은 국가보안법이 남북교류협력법과 충돌하는 문제도 다룬다. “일반인으로서는 자신의 행위가 언제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고 언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규율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고, 이는 결국 법 집행자의 자의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를 낳아 왔다.”(89쪽)
냉전 말미에 노태우 정권은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창구 단일화’ 조처를 내세우며 남·북한 대중의 자유로운 왕래를 금지했다(남북 자유왕래는 지금도 보장되지 않는다).
당시 황석영 작가, 문익환 목사,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탄압받고 마녀사냥을 당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방북한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과 노태우의 심복 박철언은 처벌받지 않았다. 심지어 박철언은 임수경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다. “정부 측 인사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아예 원천적으로 적용하지 않은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 문제가 뚜렷이 드러나는 장면이다.”(309쪽)
이 책은 남북교류협력법이 생겼음에도 국가보안법이 존속한 것은 “정부 비판 세력의 발목을 잡아 두는 동시에 친정부 인사들의 남북 교류와 교역에는 면죄부를 부여하겠다는 이중적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89쪽)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한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북한 지배자들과 소통하고 직접 만나 왔다. 그런데 이산가족은 남·북한 지배자들이 이벤트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할 수 없다. 탈북민들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과 만나거나 연락하려다 잠입·탈출, 회합·통신 혐의로 보안기관에 끌려가 조사받고 처벌당하기 일쑤다.
이산가족이나 탈북민들은 최소한 가족을 만나거나 도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탈북민
많은 탈북민들이 “잠재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로 취급당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크게 늘어난 탈북민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가보안법의 주요 피해자가 되고 있는데, 처벌되고 있는 현황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138쪽)
이 책은 탈북민들이 ‘조사’ 명목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탄압받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국가보안법이 적대시하는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보호를 요청한 탈북민들이 거꾸로 국가보안법의 새로운 피해자가 되는 모순된 상황이다.”(139쪽)
탈북민들은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과해도 ‘신변 보호’ 명목으로 감시받으며 지내야 한다. “탈북민에 대한 신변 보호는 다른 사람의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국가보안법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감시하는 것까지 포괄한다.”(140쪽)
감시와 차별을 겪는 대다수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어렵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북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다. “탈북민이 겪는 고통은 국가보안법의 틀 위에서 생겨나고 지속되고 있다.”(141쪽)
생각과 말을 처벌하기 위한 법
“정신과 사상에 대한 예비검속법”이던 일제 치안유지법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는 법이다. “사람의 머릿속을 파헤치고 그의 인간관계와 소속, 조직, 언행, 과거 전력 등으로 추단한 그의 사상과 정치적 의견에 따라 차별적으로 처벌하는 법”(486쪽)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가 중점적으로 그 구실을 한다. 제7조는 구체적 폭력 행위가 전혀 없어도 “찬양·고무,” “국가변란 선전·선동”을 이유로 처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행동이 없이 말만 있는 단계를 처벌한다. 이는 곧 생각 그 자체에 대한 처벌이다.”(489쪽)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 학생, 언론인, 반자본주의·사회주의 활동가들이 국가를 비판하거나 체제 비판적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처벌을 받았다.
제7조는 북한의 위협을 막으려고 존재한다는 국가보안법이 실은 북한과 아무 관계 없고 심지어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혁명적 좌파들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다. 예컨대 북한·소련·중국 등을 본질에서 서방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로서 그 나라 노동 대중에 의해 타도돼야 할 체제라고 보는 ‘국제사회주의자들’은 1990년대 내내 제7조로 탄압받았고 단일 조직으로는 이례적으로 수백 명이 구속됐다. 최근 사례로는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이진영 ‘노동자의 책’ 대표가 제7조의 찬양·고무 혐의로 탄압받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끼리 평화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하는 것, 평화적으로 생각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대책은 형사법의 몫이 아니다. 생각 자체는 형사 처벌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생각 자체의 규제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겨 두어도 충분하며 또한 맡겨 두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대한민국이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의 요구이기도 하다.”(489쪽)
완전히 폐지해야
이 책은 국가보안법 폐지 이유를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의아한 게 지난해 청주 평화 활동가들이 F-35A 전투기 도입을 반대하다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았을 때 민변이 왜 공익 변론 요청을 거절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헌법에 위배되고,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활용되는 국가보안법을 존속하게 할 이유가 없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는 강점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국가보안법 존치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존치론의 핵심은 결국 ‘사상’을 이유로 가중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특정한 ‘내심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공안수사기관의 위헌적 강제수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501쪽)
한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대체입법을 하자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1989년 김대중의 평민당은 민주질서보호법을 대체 법안으로 내놓았는데, 국가보안법 제7조와 비슷한 민주질서위해죄가 포함돼 있었다. 이 책은 민주질서위해죄가 “기존의 국가보안법 규정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또 하나의 ‘백지형법’”이고, 비폭력적 선전 활동을 형벌로 규제한다고 비판한다. “아무리 그 내용이 기존 질서에 배치되고 정부 의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에 의하여 극복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516쪽)
2004년 열린우리당은 ‘형법 보완 후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란목적단체조직죄’를 형법에 신설할 것을 주장했다. 이 책은 옳게도 “내란목적단체조직죄 신설은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처벌하지 않는 단체조직 선전·선동까지 처벌하는 것이어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취지에 어긋난다” 하고 지적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주장한다.
“대체입법 또는 형법 보완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곧 국가보안법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의 국가보안법이 존재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대체입법도 형법 보완도 필요 없다. 형법 개정은 형법의 국가보안법화를 가져올 뿐이다.”(521쪽)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면
이 책의 부제가 말하듯, 국가보안법은 폐지가 답이다.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인 국회와 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국민의 몫으로 핵심이 이전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 절차는 국회에서 이뤄지겠지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힘은 국회 바깥에 있다.
군부 독재 타도와 노동기본권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이끌던 원내 야당의 힘으로 쟁취해낸 것이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쟁취해 낸 것이다. 현행 헌법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덕에 제정될 수 있었다.
앞서 평민당과 열린우리당이 대체입법과 형법 보완을 주장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당 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권기에 국가보안법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 첫해에만 400명 넘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5년 동안 1100여 명이 기소됐다. 노무현은 민변 창립 멤버였고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도 말했지만,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보안법 폐지는커녕 형법보완론이나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보안법 폐지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안법으로 구속되는 사람들이 나왔다.
역사는 민주적 권리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투쟁으로 확대돼 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은 노동계급의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의 보장 여부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혹독하게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면 노동계급 대중의 운동이 고양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깊어지는 경제 위기와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대중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강화하고자 한다. 유우성 간첩 조작 검사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앉힌 일, 검찰 인사에서 공안통 검사들을 요직에 앉힌 일, 구속됐던 전직 국정원장 남재준·이병기를 풀어 준 일 등은 윤석열 정부가 장차 공안 탄압을 벌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혁명적 좌파는 윤석열 정부의 예상되는 민주적 권리 공격에 맞서 대중 투쟁을 일으킬 채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