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의 지배자들은 정권·체제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왔다. 이 법 때문에 수많은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 지식인들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국정원은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형법의 내란죄 혐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웠다면 얻기 어려웠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상의 자유 탄압이라는 논란을 피하며 “충격과 공포” 속에 진보진영을 고립·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는 1953년에 형법을 처음 만들면서 기존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그 기능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고 만든 조항이다. 특히, 내란 선동·선전의 죄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처럼 사상을 처벌하는 위험천만한 독소 조항이다.
법무장관 황교안도 4일 국회에 나와서 “[내란 음모죄는] 실행계획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의할 필요는 없다 … [선동죄는]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고 설명했다.
내란죄의 예비·음모·선전·선동의 죄로도 얼마든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노동계급 정치조직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승만이 만든 국가보안법을 계승·발전시키면서도 거듭 내란음모죄를 이용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1991년에 국가보안법을 개악하면서 ‘친북’과 관계 없는 좌파까지 탄압할 수 있도록 “국가 변란 선전·선동” 개념을 추가한 바 있다. 그런데 황교안은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그동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형법으로 보완하거나 대체 가능하다고 했던 자유주의·개혁주의 논리가 왜 틀려먹었는지도 보여 준다. 이들 중 상당수가 마녀사냥에 무릎 꿇어 온 것도 그 방증이다.
이번 탄압이 성공을 거둔다면, 저들은 새로운 ‘탄압 무기’를 33년 만에 다시 확보하는 셈이다. 북한과 연계가 없거나 북한 체제를 반대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기구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좌파들까지 언제든지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이런 방향으로 물꼬를 트려는 저들의 추악한 시도를 반드시 단결해서 막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