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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공화당, 미국의 위기

트럼프는 여러 건의 소송을 앞두고 있음에도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 논평가들이 호들갑 떠는 것처럼 놀라운 일만은 아니라고 유리 프라사드는 지적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인 공화당이 정말 도널드 트럼프를 다음해 대선 후보로 선택할까?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 바이든과 맞붙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을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공화당의 주요 표밭 주(州) 중 많은 곳에서 트럼프가 크게 앞서 있다.

이는 미국 정치의 핵심부가 갈수록 사분오열하고 있다는 징후다.

트럼프는 각종 추문과 형사 혐의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대선후보들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출처 Team Trump

오점투성이 전직 대통령 트럼프는 이미 성추행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기 혐의와 공문서 절도 혐의로 두 건의 재판을 앞두고 있다.

지난주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죄목으로도 공범 여섯 명과 함께 기소됐다. 기소 죄목 중에는 2021년 1월 6일 극우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난입과 관련된 것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잘못 대처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해 트럼프의 임기 동안 벌어진 재앙들까지 감안하면, 그가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실로 치가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기소 혐의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혐의는 주도면밀하게 선정된 것들로, 트럼프 임기 중 저질러진 범죄들에 대한 미국 정치권 핵심부의 책임은 면제해 주게끔 돼 있다.

많은 논평가는 오직 트럼프 개인이 혼자서 미국 정치라는 우물에 독을 푼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시스템 전반은 트럼프의 등장 훨씬 전부터 썩어 있었다.

논평가들이 트럼프라는 악독한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공화당이 집권을 위해서라면 늘 더러운 방법도 마다않을 태세를 갖춘 정당이었다는 사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백인 우월주의

흑인 평등권 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이 분출한 1960년대 후반에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대선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닉슨은 스트롬 서먼드를 기용했다. 서먼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뽑힌 상원의원이자 흑백 인종 분리론자들의 거두였다. 서먼드는 “유대인과 검둥이”의 표는 무시하고 대신 “가톨릭 표를 노리라”고 조언했다. “가톨릭은 검둥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이 악명 높은 “남부 전략”으로 닉슨은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 전략은 들끓던 인종차별적 폭력을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극우를 공화당으로 결집시켰다.

십여 년 후 공화당 대선 후보 로널드 레이건은 반공과 동성애 혐오, 인종 통합 반대를 설교하는 신진 기독교 우파에 구애했다.

레이건은 기독교 부흥 운동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호소했다. “여러분이 저를 공식 지지 후보로 선정하실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 하지만 제가 여러분을 공식 지지한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주민 대부분이 흑인과 갈색 인종인 도심의 가난한 동네들을 파탄냈고, HIV/에이즈로 성소수자들이 죽어 나가도록 내버려 뒀으며, 노동조합의 저항을 짓밟았다.

2010년대에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에 반발해 등장한 우익 운동 티파티와 융합했다. 공화당은 흑인이 어찌 미국의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오바마는 자신이 무슬림임을 숨기는 “케냐 출신”이고 막후 권력층과 한통속인 자라고 공화당원들과 티파티 참가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아우성쳤다.

그들은 남부연합기[미국 남북전쟁 당시 흑인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 주들이 사용한 깃발 — 역자]를 펄럭이며 “마약·갱단·범죄”를 규탄하는 행진을 했다. “마약·갱단·범죄” 척결은 인종차별주의자라면 누구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정치적 결집 구호였다.

노예제를 찬성했던 옛 남부연합의 깃발을 흔드는 트럼프 지지자들 ⓒ출처 John Ramspott(플리커)

이런 강경 우익의 시궁창에서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다.

트럼프는 TV 게임쇼나 진행하는 별볼일 없는 인물로 정치권 주변부에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트럼프를 권좌로 끌어올린 것은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심대한 정치적·사회적 위기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와 뒤이은 긴축의 결과는 지금까지도 파괴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 오바마 정부는 세계 최대 보험사들을 “구제”하려고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퍼줬고, 대형 은행들의 파산을 막으려고 막대한 양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자 주가와 배당금이 치솟아 부유층은 더 호사를 누렸다.

1976년에는 미국 최상위 부자 1퍼센트가 국민소득의 8.5퍼센트를 가져갔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 세대 동안 맹위를 떨친 후에는 최상위 부자 1퍼센트가 국민소득의 20퍼센트 이상을 챙겼다.

부자를 위한 복지는 강화되고 가난한 사람의 복지는 삭감됐다.

산업 부문들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실질 임금이 격감하고,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을 지원해야 할 사회 안전망은 긴축으로 파탄 났다.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던 사람들조차 금융 위기 때문에 삶이 망가질 가능성에 직면했다.

오바마는 제너럴모터스·크라이슬러 등 휘청이는 자동차 대기업들에 자금을 대출해 주고는 그 대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는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이었다.

불황을 기회 삼아 민주당은 경쟁력을 갖추려면 미국도 저임금 경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벼랑 끝

트럼프에게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가 준비돼 있었다.

미국이 쇠락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의 엘리트”들이 미국의 국익을 중국이나 유럽연합 같은 다른 나라들의 이익에 종속시켰기 때문이라고 트럼프는 주장했다.

트럼프는 백만장자 사기꾼이라는 본모습을 감추고는 발언권 없는 “미국 사람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본인이 집권하면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한 술 더 떠 트럼프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시스템을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다. 이 말은 이민자를 막는 장벽을 세우고, 당시 표현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거스르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메시지 덕에 트럼프는 전통적 보수 유권자층(여전히 트럼프 지지층에서 비중이 상당하다)을 넘어, 지지 정당을 찾지 못한 투표층과 이전에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 일부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표의 약 20퍼센트는 정치권을 증오하는 “엘리트 반대”(《포브스》지의 표현) 유권자층에서 나왔다.

또 다른 5퍼센트는 “무관심층”, 즉 정치 상황을 주시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이처럼 트럼프는 이전에는 여론 조사 기관들이 주목하지 않던 층에서 수많은 표를 끌어왔다.

트럼프는 기득권층에 대한 가짜 저항을 선동하는 우익 포퓰리즘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난입 모습 ⓒ출처 Tyler Merbler(플리커)

공화당이 노동자들에게서도 표를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민주당의 탓이자, 오바마의 길을 따르겠다고 공약한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탓이다.[관련 기사 본지 195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 당선에는 오바마 책임도 있다’]

부유층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실히 들어 준 전임 공화당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를 사랑했다. 공화당은 오랫동안 부유층의 제1선호 정당이었다.

트럼프는 세금과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해 주식 시장과 기업 이윤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몇몇 자본가는 트럼프의 반(反)세계화 수사와, 트럼프가 중국·유럽연합 모두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벌일 가능성에 불안해 했다.

기업주들이 보기에 세계화는 미국에 커다란 득이 됐다. 세계화가 없었다면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의 시장 지배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기업주들은 이윤이 계속 굴러들어오는 한 트럼프의 증오 선동과 혼란스러운 정책 결정을 보아 넘겨 줄 태세가 돼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일으킨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만큼은 보아 넘기지 않았다.

이윤

기업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다국적 기업은 세계 각지의 독재자들에게 돈을 계속 대 왔다. 미국 지배계급이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보아 넘기지 않으려 한 이유는 그런 반란이 지배계급의 힘을 보호하는 정치 시스템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은 자본에 득이 돼 왔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본인이든 본인 소유의 언론사들이든 모두 트럼프의 차기 대선 선거운동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머독 외에도 많은 지배층 인사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지지가 없어도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공화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트럼프의 여러 경쟁자도 트럼프의 핵심 정책들을 베끼고 있다.

민주당의 트럼프 대응 전략은 크게 네 가지 핵심 전선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 지지에 대한 거부감도 광범하다는 것에 기대는 것이다. 심지어 공화당 투표층 사이에서도 거부감이 상당하다.

둘째, 트럼프가 러시아·푸틴과 너무 친밀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지휘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호전적이고 친제국주의적인 우려를 내세우는 것이다.

셋째, 최근 상대적으로 호조인 실업·임금·인플레이션 관련 경제 수치를 이용해, 트럼프에게 빼앗겼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했던 노동자들의 표를 되찾는 것이다.

넷째, 트럼프 2기 정부가 자행할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일들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바이든이 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으로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트럼프를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익의 준동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할 것이다.

우익을 완전히 꺾으려면 양당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국 좌파에게 한동안 잊힌 것, 즉 계급투쟁에 매진할 훨씬 급진적인 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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