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의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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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잇달아 수구 퇴행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평등과 공정을 들먹이며 이런 공격을 했다.
6월 29일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를 대학 입학에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다음 날인 6월 30일에는 바이든의 학자금 대출 상환 지원 계획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한 기업의 손을 들어 줬다.
29일 판결 직후 몇몇 대학 캠퍼스와 연방대법원 앞에서 소규모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바이든은 “법원이 비정상”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판결 전까지 이를 저지할 만만찮은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흑인의 고등교육 접근성이 다소 제약될 것이다. 연구 단체 ‘시민권 프로젝트’는 이번 판결 이후 흑인의 명문대 진학률이 많게는 9퍼센트 정도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더 중요한 의미는 1960년대 평등권 운동이 성취한 성과를 되돌리려는 우파 공격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런 공격에 의해 가장 크게 고무될 것도 평등권을 증오하는 우파다.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은 평등권 운동이 얻은 소득
사회적 약자 우대(적극적 우대) 조처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흑인 평등권 운동의 성과로 도입됐다.
미국 남부의 인종 분리 정책 철폐를 요구하며 시작된 평등권 운동은 흑인들이 당하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급성장했다.
민주당 케네디 정부는 이 운동을 마뜩잖아 했다. 케네디는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면 민주당이 분열할까 봐 우려했다.
그럼에도 케네디는 거대한 항의 운동을 달래기 위해 흑인 투표권 법제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조차 투표권 외 흑인 차별 금지 법안은 입안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후 1965년 투표권리법이 제정됐지만, 그것만으로 경제적·사회적 차별이 해소되지 않을 것임은 명백했다.
미국 북동부·중서부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소요가 분출했다. 남부의 평등권 운동은 기업의 영업을 방해해 이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은 압력에 밀려 공공기관 고용시 인종차별을 금하는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처가 표방한 것은 기회 균등이었지, 경제적·사회적 평등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차별로 고통받던 흑인 대중은 이를 일보 전진으로 여겼다.
우파는 이것이 “역차별”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흑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이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우파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게다가 흑인 평등권 운동에 뒤이어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여성·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이 성장하면서, 인종·성·성적 지향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는 기존 관념이 광범하게 도전받았다.
1970년대 들어 정부는 흑인뿐 아니라 여성 등 다른 사회 집단도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에 포함하고, 고용뿐 아니라 교육 등 다른 영역도 포괄하는 식으로 이 조처를 확대 보완해야 했다.
50년에 걸친 우파의 반격, 극우화로 성과 얻다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의 효과는 사실 제한적이었다. 흑인 중간계급의 소수에게는 이럭저럭 괜찮은 계급 상승 기회가 열렸지만, 사회 전반을 보면 인종 격차는 그다지 완화되지 않았다.(그래프1)
그럼에도 우파는 이 조처를 증오했다. 이것이 1960년대 대중 운동이 성취한 것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반격은 사회 최상층부에서 나왔다.
1970년대에 불황이 닥치자 지배자들은 사회적 약자 우대 조처의 일부였던 채용시 인종할당제가 공정 경쟁을 훼손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공격했다. 이에 민주당 카터 정부는 1978년에 채용시 인종할당제를 폐지했다.
자신감을 얻은 우파는 이제 모든 인종의 정치적·시민적 권리가 동등해졌으므로 인종차별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엄연한 인종 격차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파는 인종 격차가 인종차별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부색이 “문화”로 바뀌었을 뿐, 흑인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인종차별 주장이었다.
이 새로운 인종차별 주장은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결합됐다. 레이건은 게으른 흑인들이 무위도식한다며 복지를 삭감했고, 무능한 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량 해고를 고무했다.
레이건은 이제 인종차별이 사라졌으니 인종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색맹” 방침을 내세워 약자 우대 조처를 공격했다. 미국 우파를 연구한 역사가 진 하디스티는 “우파가 ‘색맹’ 방침으로 ‘사회적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라는 평등권 운동의 요구를 도둑질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레이건은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 삼아 경찰을 중무장시켜, 평등권 운동의 요람이던 흑인 지역사회들을 파괴했다(미국 드라마 ‘더 와이어’에서 생생하게 묘사됐다).
레이건의 후임인 공화당 조지 부시 1세와 민주당 빌 클린턴 모두 레이건의 노선을 계승했다.
이 세 정부 모두 보수적 흑인들을 등용해 이들로 하여금 약자 우대 조처를 공격하게 했다.
그렇게 등용된 인물 중 한 명이 이번 판결에 앞장선 흑인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다. 나치 연관설까지 돌았던 극우 인사 토머스는 대법관 취임 이후 줄곧 인종차별·성차별 완화 조처들을 공격했다. 지난해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도 토머스가 주도했다.
극우를 고무하다
이처럼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위로부터 계속된 공격은 다른 우파 세력들도 고무했다.
특히, 기독교 우파들은 약자 우대 정책이 미국인들의 기회를 뺏는다고 비난했다. 이런 주장은 불황으로 고통받는 백인 중간계급 하층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이제, 그전까지 정치 무대 바깥에 있던 극우파들이 지배자들이 조장한 새로운 인종차별을 성장 발판으로 삼았다.
극우는 소수인종들, 특히 흑인과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을 점령하고 있다”는 데마고기와 음모론을 퍼뜨리며, 실업으로 고통받는 백인 하층민들에게 가 닿으려 했다. 그러면서, 약자 우대 조처를 그런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런 극우 운동은 인종차별을 중심으로 결집해 공화당 기층을 잠식하며 세를 불렸다.
이번 위헌 판결 소송을 주도한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의 조직자 에드워드 블럼도 그런 운동 소속이다.
블럼은 대학생이 아니라 71세의 극우 인자로, 약자 우대 조처 반대 운동을 30년 넘게 조직해 온 ‘전문 소송꾼’이다. 블럼은 간판이 될 원고를 내세워 소송을 걸고 패소하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원고를 내세워 다시 소송을 걸어 운동에 이용하는 전술을 즐겨 써 왔다.
이런 일련의 공격에 민주당은 전혀 제대로 도전하지 않았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우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말은 했지만, 이는 대중의 평등 염원을 순치시키고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 체제를 수호하고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 대중에 전가하는 데에 열심이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의 당선은 엄청난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바마는 기존 정책들을 사소하게만 수정한 채 그대로 유지했다. 오바마 정부하에서 경제 위기 등 체제의 위기가 심각해지는 동안 인종차별도 더 심각해졌다.
그에 대한 환멸에 힘입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관련 기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 당선에는 오바마 책임도 있다’)
트럼프는 임기 중 우파들의 공격을 더한층 강화하는 데에 중요한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 공공연하게 반동적 주장을 펴고 정책을 추진해 공식 정치 지형을 우경화하고, 평등권을 증오하는 극우 운동이 기층에서 성장하게 도왔다.
둘째, 기독교 우파들과 공조해 극우 판사 셋을 연방대법관에 지명했다. 이들은 우파 운동의 공격 대상이 된 평등권 운동의 성취들에 사법 철퇴를 가했다.
지배 엘리트들이 조장한 인종차별과 그에 고무돼 기층에서 성장한 극우 운동이 만나, 잇따른 공격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리고 위험하게도, 이런 반동적 판결에 의해 가장 크게 고무될 것도 그런 극우파들이다.
학자금 대출 상환 일부 면제도 위헌?
연방대법원은 바이든이 내놓은 대학 학자금 상환 지원 계획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미국은 학자금 부담이 극심하기로 악명 높다. 미국 학자금 대출 총액은 1조 7800억 달러(약 2300조 원, 2023년 3월 현재)에 이른다.
사정이 이런지라 학자금 대출 전액 탕감은 2011년 ‘점거하라’ 운동 이래 미국 청년들의 가장 주요한 요구였다.
지난해 바이든이 내놓은 계획은 학자금 대출 상환액 중 아주 적은 일부만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지원 액수가 부족해 부채 부담 완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바이든 정부 자신이 자인한 수준이었다.
연방대법원이 여기에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은 꾀죄죄한 서민 지원조차 “사회주의적”이라며 질색하는 우파 반발의 일부였다.
물론 대선 선거운동 돌입을 앞두고 바이든의 인기용 정책에 흠집을 내고 바이든 국정 운영에 제동을 걸어, 공화당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판결은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나 약자 우대 조처 공격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개혁 염원이 조금치라도 반영된 정책은 모조리 공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입 공정 경쟁에 위배?
약자 우대 조처를 공격하는 논리 중 하나는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능력 없는 흑인들을 대학에 입학시키느라 능력 있는 백인·아시아인의 명문대 입학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명문대 졸업생이 극도로 불공정한 기여입학제(동문·기부자 자녀 우선선발 제도)로 가장 많이(29퍼센트) 배출된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약자 우대 조처가 시행된 이후 흑인의 대학 합격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흑인 합격률이 높아질 때 백인이나 아시아인의 입학률이 낮아진 적은 없다. 또, 흑인의 대학 합격률은 늘 그 두 집단보다 낮았다.(그래프2)
오히려 약자 우대 조처가 폐지된 곳에서는 모든 소수인종의 고등교육 기회가 줄어들었다. 2010년 시카고사립고등학교위원회(CPS)가 고입 전형에서 약자 우대 조처를 금지하자, 흑인 입학률(37퍼센트→17퍼센트)과 아시아계 입학률(12.2퍼센트→11.4퍼센트)이 모두 줄었다. 유일하게 입학률이 높아진 집단은 백인(29퍼센트→45퍼센트)이었다.
시험만이 공정하다?
인종을 기준에서 배제하고 SAT 같은 표준화 시험으로만 평가해야 공정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은 공정한 평가 제도가 못 된다.
표준화 시험은 기준을 획일화해 인간 능력을 수량화하는 데에 최적화된 제도이지,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폭넓게 측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표준화 시험 성적이 개인의 능력보다 응시자의 계급적 배경과 상관관계가 더 높음을 보여 주는 조사가 많다. 미국 친기업 언론 〈포브스〉조차 SAT 시험 점수와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것은 가계 소득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계급적·사회적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표준화 시험도 계급 불평등을 반영하고 재생산한다.(관련 기사 ‘불평등의 세습에 좌절하는 청년에게 능력주의는 공정을 보장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약자 우대 조처 반대자들이 표준화 시험의 공정성을 내세우는 것은 노골적 인종차별 주장이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보수주의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박탈감에 기대어 차별 완화 조처를 공격하려고 한다.
소수인종 채용 악화에 일조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학 입학뿐 아니라 채용시 차별 완화 조처를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소수자 배려 채용 지침들을 폐기하는 데에 이 판결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피해는 모든 소수인종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하버드대학교 공공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자 우대 조처가 채용에 적용되지 않으면 흑인·라틴계뿐 아니라 아시아계의 고용도 감소할 것이다.
이것은 가뜩이나 불비례하게 높은 소수인종의 실업률을 더 높일 뿐 아니라, 이미 취업한 노동자의 일자리를 공격하는 것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1996년 캘리포니아주 주정부가 공공기관 채용에서 약자 우대 조처 적용을 금지하자, 공공·민간 부문 모두에서 소수인종 해고가 늘고 채용이 줄었다.
15년 후인 2011년에 가서야 채용시 인종 격차가 1996년 수준을 회복했다. 대안세계화 운동이 일어났던 2000년대에 좌파와 이민자 운동 단체들이 끈질기게 운동을 벌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