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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이민자 공격 베끼는 바이든
오히려 트럼프를 강화시킬 것

6월 4일(현지 시각) 바이든이 미등록 이민자 유입을 막고 추방을 쉽게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행정명령은 미등록 이민자 검거 건수가 일평균 2500건을 넘으면 이민자들의 긴급도피(입국·체류 일시 허가) 신청을 금지한다. 올해 4월 현재 일평균 검거 건수가 4300건이니 사실상 국경을 즉각 걸어 잠그는 것이다.

이민자 단속이 미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사기다 ⓒ출처 백악관

이 명령에 따르면 일평균 검거 건수가 3주 연속 1500건 미만으로 떨어져야 긴급도피 신청이 다시 허용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 수치가 1500건 이하로 떨어진 때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7월이었다.

바이든은 “국토안보부가 불법 판정을 받은 이민자들을 신속히 추방할 수 있게 하는 새 조처”도 마련 중이라고 했다.

2019년 트럼프가 비슷한 행정명령을 내렸을 때 바이든은 “긴급도피 희망자들을 미국 영토에 발도 못 붙이게 한 사상 첫 미국 대통령”이라고 트럼프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바이든은 트럼프와 다를 바 없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것이다.

이 뻔뻔함에 몇몇 민주당 하원의원들조차 반발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하려 했고 당시 우리 모두가 반대했던 조처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그때는 불법이던 게 지금은 합법인가?”(민주당 ‘진보의원모임’ 회장 하원의원 프라밀라 자야팔)

바이든의 이민자 정책

취임 직후 바이든은 트럼프가 내린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일부 거둬들이는 상징적 조처를 취했다.(관련 기사: 본지 354호 ‘바이든의 “트럼프 지우기,” 실질적인가?’)

그러나 트럼프의 핵심 기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바이든은 폭력 단속·추방으로 악명 높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존치했고, 팬데믹이 잦아들고 트럼프의 입국 제한 긴급조치 효력이 끝나자 군 병력을 국경 지대로 파견해 이민자 입국을 단속했다.

바이든의 이민자 공격은 인종차별적 우파를 고무했다.

공화당 극우 주지사들은 바이든의 조처로는 부족하다며 주법으로 이민자를 더 탄압했다. 몇몇 주지사들은 보수 표 결집을 노리고 미등록 이민자 수천 명을 버스에 실어 민주당이 집권한 주로 보내는 ‘퍼포먼스’도 했다.

몇몇 민주당 정치인들은 이민자 공격에 대해 말로는 툴툴거렸지만 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공식 정치권의 이민자 공격은 기층의 극우가 활개칠 기회를 더 열어 줬다.

미국 시민단체 ‘충돌 지역·사건 데이터 프로젝트’는 미국 남부 국경 지대에서 이민자·유색인종을 상대로 한 극우 단체들의 폭력 사건이 바이든 임기 첫해에 13배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극우의 이민자 공격은 보수 표심을 모으는 데에 이용된다. 이민자 공격과 이를 함축하는 코드인 치안·범죄 문제는 보수 성향 유권자가 중시하는 쟁점의 하나다. 주요 여론 조사를 보면 관련 쟁점에서 특히 바이든 반대가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지원하느라 지지율이 바닥을 친 바이든은 이민자 공격이라는 우익의 무기로 보수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바이든의 국수주의적 언사도 이와 관련있다. 바이든은 “미국 일자리와 미국인을 지키는” 데에서 트럼프보다 더 유능하게 비치기를 바라고,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이민자를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생활고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모면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경기가 비교적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실업에 따른 생활고가 대중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바이든은 그 책임을 미국 자본주의와 국가가 아니라 이민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바이든의 이런 이민자 공격은 트럼프를 오히려 강화한다. 바이든이 반(反)이민 정책을 펼수록 트럼프의 인종차별적·극우적 이민자 공격은 ‘정상적’이고 공론장에서 다뤄질 만한 것이 된다.

바이든이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트럼프는 이렇게 조롱했다. “바이든은 내가 옳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대선 후보 토론을 3주 앞둔 지금 나를 베끼는 쇼를 하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래로 유럽 각국에서 줄곧 되풀이됐다.

집권한 중도 정당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며 이민자(‘외부자’)를 희생양 삼았다. 이는 극우가 자신의 주장을 펴고 기성 정치의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진출하기 더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 중도 정당들은 극우를 제어하려고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지만, 이는 오히려 극우에 더 도움이 됐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파시스트들이 세를 늘린 것도 이런 패턴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관련 기사: 본지 504호 ‘극우의 국제적 전진에 맞서기 위한 혁명적 좌파의 과제’)

바이든은 트럼프의 차악이 아니다. 오히려 바이든은 트럼프를 강화시키고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에 맞선 대중 운동,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이민자에 연대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안전을 위협하는가?

바이든은 미등록 이민자의 증가를 과장하며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고 “안전을 확립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이민자를 엄중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든 임기 동안 미국에 미등록 이민자가 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이민자연구센터(ILC)는 2023년 말 현재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를 2021년보다 약 200만 명 는 1200만 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인의 일자리와 안전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미국의 실업은 경기 불황과, 물가를 잡겠다는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의 영향이지 이민자들 탓이 아니다.

동반 상승-하락 관계를 보이는 미국 출신자(분홍)과 이민자(파랑) 실업률 ⓒ출처 미국 노동통계청

미국 노동통계청 조사를 보면, 미국 출생자 집단과 이민자 집단의 실업률은 서로 동반 상승-하락하지 길항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그래프를 보시오).

이민자들은 미국 경제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ILC는 이민자 집단의 생산 활동 참가 비중이 미국 출생자 집단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또, 바이든 정부하에서 증가한 미등록 이민자의 상당수가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소폭 복구된 서비스업 일자리에 고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민자들은 당연히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통해서도 미국 경제가 굴러가는 데에 일조한다.

또한, 이민자들은 범죄의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다.

주정부가 미등록 이민자 보호소를 운영하는 뉴욕주의 통계에 따르면, 보호소 인근 지역의 범죄율은 다른 곳보다 두드러지게 낮았다(2023년). CNN은 “미등록 이민자는 단속 추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미국 국적자보다 범죄를 덜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극우의 증오 범죄는 매우 심각하고,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바이든 정부 첫 두 해 동안 인종·출신국을 이유로 한 증오 범죄가 21퍼센트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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