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 인종학살:
역사상 최악의 공동처벌(연대책임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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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PCBS)은 10월 7일 개전 이래 12월 23일까지 가자지구에서 2만 561명이 죽었다고 집계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연대책임 지우기(공동 처벌) 작전을 펼치고 있다.
병원과 구급차를 폭격하고 건물을 파괴하며 물·식량·전기를 사실상 끊었다. 이를 통해 무장 저항 세력을 굴복시키고 민간인의 동조 의지를 꺾고자 한다.
연대책임 지우기 전략이 절정에 달했던 제2차세계대전과 비교해 봐도 가자지구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연합군은 1942~1945년 함부르크·다름슈타트·드레스덴 등 독일 도시 51곳을 폭격해 그 도시들의 40~50퍼센트를 파괴했다.
그런데 가자지구에서는 단 두 달 만에 건물의 33퍼센트가 파괴됐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폭탄과 대포는 대부분 미국제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확실하게 편들지 않으면 댈 수 없는 화력이다.
〈뉴욕 타임스〉(12월 22일 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들을 남부 ‘안전 지대’로 소개한 뒤 2000파운드(907킬로그램) 무게의 초대형 폭탄으로 208차례 폭격했다고 폭로했다.
2000파운드면 아파트를 무너뜨릴 수 있고 반경 20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에 MK-84 초대형 폭탄을 5000발 이상 공급했다.
그런 초대형 폭탄을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 남부에서 마음껏 사용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스라엘이 인종 말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230만 가자 주민을 이집트 시나이 사막으로 내쫓으려던 계획이 여의치 않자, 죽여서 없애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또다시 휴전을 반대했다. 그래서 12월 22일 유엔 안보리는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이라는 문구가 빠진 구호 지원 결의안을 채택했다.
살인자가 총 쏘는 상황에서 그저 부상자와 기근자를 구호하라는 결의안이다. 그래서 “가자지구 민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국경없는의사회)는 결의안이다.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에 대한 분노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주요 서방 정부들조차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해야 했다.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G7(서방 주요 7개국) 중 미국만이 ‘즉각적인 인도적 휴전’ 결의안(법적 구속력도 없다)에 반대했다. 프랑스·일본·캐나다가 찬성했고, 영국·독일·이탈리아는 기권했다.
부득이하게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경고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폭격으로 이스라엘은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전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하나마나 한 말이었다.
저강도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 차이는 전략(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인종 청소)의 차이가 아니라 전술(인종 청소 수단과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12월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정당방위이다.”
식민주의가 피지배 인민을 향해 자행하는 전쟁이나 폭력은 “정당방위”일 수 없다.
미국은 심지어 이스라엘이 전쟁을 끝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12월 23일 네타냐후와 통화하면서 “휴전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저강도 전쟁’을 이스라엘에 권고한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이 확전으로 이어질까 봐 우려해서다(본지에 실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부산물 홍해 위기: 청해부대 파견 가능성 경계해야’를 보시오).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12월 20일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에는 하마스를 제거할 의무와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할 의무가 병존한다.”
무차별 폭격과 대규모 지상전에서 하마스만 정밀 타격하는 (불가능한) 전술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봤듯이, ‘정밀 타격’은 반드시 민간인 대량 사상(제국주의자들은 냉혈한답게 이를 두고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다)을 수반한다.
미국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하기 때문에 네타냐후는 기고만장하다.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
“공동처벌로 하마스를 궤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과 대량 학살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저항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그 때문에 서방 엘리트들의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은 12월 17일 네타냐후를 공개 비판했다.
“몹시 고통스러운 때에 이스라엘은 적어도 그런 현실을 인식하고 기꺼이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하자고 주장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네타냐후는 그런 지도자였던 적이 없다.”
심지어 영국의 전 국방장관 벤 월러스 같은 매파조차 이렇게 경고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에서 드러내는 살벌한 분노가 그 나라의 도덕적·법적 권위를 위협하고 또 다른 50년 전쟁을 부채질한다.”(〈가디언〉 12월 18일 자)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 로버트 페이프는 “공동 처벌[연대책임 지우기]로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포린 어페어스》 12월 6일 자).
“순전히 전략적인 관점에서 판단해 볼 때도, 이스라엘의 방식은 실패할 운명이다. 사실 이미 실패하고 있다. 민간인을 대규모로 [공동] 처벌하는 것은 가자지구 주민들로 하여금 하마스 지지를 철회하도록 납득시키지 못한다.
“역사는 민간인 거주지에 대한 대규모 폭격이 목표를 이룬 적이 거의 없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학살하는 것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하마스 전사]를 양산해 내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죽은 민간인들마다 복수를 위해 하마스에 가입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족과 친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 처벌[연대책임 지우기]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분노만 고조시켰을 뿐이다. 군사 작전은 표면상 타깃으로 삼은 조직을 해체시키지 못했다. 50일 넘은 전쟁은 이스라엘이 가자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언정 하마스를 파괴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사실 지금 하마스는 전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대에 없는 강점이 있다. 하마스는 쉽게 전투를 포기하고 민간인들 속으로 스며들어 살아가다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전투를 재개할 수 있다. 이것도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지상전이 실패할 운명인 까닭이다.
“일반 통념과 달리, 대다수 테러리스트들은 종교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런 사명을 택한 게 아니다. 비록 일부는 분명 그랬지만 말이다. 오히려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빼앗긴 땅 때문에 그 활동을 했다.”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견해가 설득력 있음을 뒷받침한다.
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퍼센트는 무장 투쟁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답했다.
또, 서안지구에서는 44퍼센트가, 가자지구에서는 42퍼센트가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50퍼센트를 넘지 못했지만, 9월 조사보다 각각 12퍼센트포인트, 4퍼센트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불신은 전쟁 이후 더 커졌다. 88퍼센트가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아바스의 퇴진을 원했다. 서안지구에서는 92퍼센트가 나왔다. 바이든은 이토록 불신받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가자지구 전후 통치를 맡기려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가자지구에서도 미국의 제국주의는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인질 교환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자국민 인질 오인 사살 이후 반발이 커지자, 바이든 정부는 인질 교환을 위한 일시적 휴전을 이스라엘에 요구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 이스라엘의 모사드, 카타르가 협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인질 석방 대상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이스라엘군이 미리 설정된 선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협상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3단계 중재안을 제안한 직후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항전 의지를 분명히 하는 편지를 해외 지도부에 보냈다. “[알 카삼 여단은] 이스라엘군을 격파하고 있고 … 점령군의 조건에 굴복하지 않겠다.”(알자지라 12월 25일 자).
신와르는 같은 편지에서 가자 지상전 개시 이래 이스라엘군 사상자가 5000명이고, 그중 1660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