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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팔레스타인인 유학생이 말한다:
베들레헴에서 자라며 겪은 이스라엘의 탄압

12월 2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해 연설하는 나리만 씨 ⓒ조승진

왜 팔레스타인일까요? 팔레스타인은 고대 세계의 중심지이자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아시아, 아프리카, 심지어 유럽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모든 문명은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를 바랐습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고, 우리가 없었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그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발언은 팔레스타인 쟁점이 순전히 정치적‍·‍경제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팔레스타인은 작은 면적이지만 온화한 기후, 다양한 지형, 유전‍·‍가스전‍·‍천연소금 등 풍부한 자원, 지중해‍·‍홍해‍·‍요르단강 모두와 인접하고 수에즈 운하와 가깝다는 점 등 많은 요인으로 인해 모두가 탐내는 지역이 됐습니다.

비록 팔레스타인 인구의 다수는 무슬림이지만, 팔레스타인은 3대 유일신 종교(이슬람‍·‍그리스도교‍·‍유대교)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 국가 설립을 유대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보는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이스라엘 시민으로 귀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에게 이스라엘 국적을 강제로 부여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들은 이스라엘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많은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살며 팔레스타인에서 공직을 맡고 있고,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입법부]에서 유대인 공동체를 대표합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헌장에도 나크바 이전의 모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이며, 그 후손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일[나크바]은 유엔의 실패를 보여 주는 한 과정의 시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로 국제연맹이 실패한 자리에 유엔이 세워졌는데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점령은 타 국가와 민족을 지배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강대국들이 마음대로 상황을 조작하는 편향된 수단이 동원됐는데, 유엔 결정은 대부분 약소국이나, 미국과 그 동맹국이 싫어하는 국가에만 적용되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에게만 어떤 결의안이든 부결시킬 수 있는 거부권을 주는 것, 심지어 다른 모든 국가가 동의하더라도 그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요?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점령 국가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공식적 합의입니다.

오슬로 협정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자기네 땅이라 여기는 역사적 팔레스타인 지역 77퍼센트의 통제권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오슬로 협정의 목적은 역내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로 팔레스타인인들과는 그 어떤 진지한 협상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총리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본다고 여러 차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슬로 협정 타결 2년 후,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은 오슬로 협정에 참여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 극단주의자’의 손에 암살됐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기 과수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8미터 높이의 시멘트 장벽이 들어서서 태양조차 볼 수 없도록 막고 있다면, 집의 절반(장벽 건설을 위해 진작에 통째로 철거되지 않았다면)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여러분의 동네가 10퍼센트만 남아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생길까요?

나리만 씨가 다닌 학교 바로 옆에 세워진 분리 장벽. 초소에서 언제든 운동장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출처 UNRWA

그 벽에는 감시탑이 있고, 저격수들이 배치돼 여러분을 사살하거나 짐승처럼 끌고 가려고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최신 화학 무기를 여러분들에게 실험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벌어졌습니다. 전에 학교 앞에는 넓은 들판이 있었지만 빼앗겼고, 중간에 거대한 장벽과 감시탑이 생겨 가로막혔습니다. 점령군은 우리를 향해 최루가스를 사용했습니다.

그 탓에 우리는 다른 편에 있던 남학교와 우리 여학교를 바꿔야 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이 탈출구를 더 잘 찾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학년짜리, 그러니까 7살 아이들이 탈출하는 법과 난민촌 골목길로 빠져나와 무사히 귀가하는 법을 훈련받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혹시 최루탄을 견디라고 양파나 깨끗한 천, 향수를 잘 가져왔는지 준비물 검사를 한 적이 있습니까?

국제법은 2004년부터 장벽 건설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에 오슬로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 두 국가의 공존이라는 꿈을 허무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이스라엘이 이를 준수하도록 아무도 제대로 압박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장벽 탓에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숱하게 생겼습니다.

팔레스타인인으로 산다는 것

혹시 도축장에 가 본 적이 있나요? 이상한 질문으로 들릴 테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일 통과하는 검문소가 그런 장소와 같다면 어떨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이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 통로는 마치 동물들이 도살될 때 끌려가는 길과 비슷합니다. 이 비좁다 못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통로를 지나지 않고는 학교나 직장에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아무도 서로 도와줄 수 없습니다. 1.5미터도 안 되는 통로에 수백 명이 빽빽이 들어차서 통과 순서를 기다립니다.

각 마을이나 도시, 촌락을 잇는 도로가 딱 하나씩밖에 없고 그 도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직장이나 학교,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심지어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한 번은 남부와 북부를 잇는 검문소(“컨테이너”라 불립니다)가 폐쇄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이 검문소에서 불과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컨테이너” 검문소가 폐쇄돼 도로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

저는 공부보다는 인내심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거의 맹세하다시피 말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30분이면 지날 수 있는 길을 1시간에서 5시간까지 걸리는 상황, 심지어 때로는 사흘 동안 완전히 폐쇄되는 그런 상황이 합리적이라고 보이나요?

한 번은 도로가 폐쇄됐는데, 이런 상황을 잘 모르고 새로 오신 프랑스어 선생님께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분께서는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면 되지 않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도로는 이미 전날부터 폐쇄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학생들과 모여서 어떻게든 지나가 보려고 했지만 길이 막힌 탓에 운전사도 별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산을 타고 넘어서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몇몇 병사들과 맞닥뜨렸고 나중에 알고 보니 축사였던 건물로 도망갔습니다.

슬프게도 학생 한 명이 총에 맞았습니다. 사실 낯선 일만은 아닌 것이, 제가 다니던 대학교는 줄곧 이스라엘군의 훈련장과 다름없었습니다.

또 한 번은 훈련이 벌어지던 곳 인근 건물에서 수업을 받던 도중에 강의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그냥 창문을 닫고 수업을 계속하자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늘 주머니에 알코올이나 석류, 양파 따위를 갖고 다녔는데 최루가스를 견디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날 그들이 건물을 습격해서 최루가스를 구석구석 퍼부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더러 화장실로 가라고 하셨지만, 학교 내 모든 화장실은 원래 6인용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수십 명이 그 안에 몰렸고 아주 큰 혼란이 일었습니다.

저는 실수로 그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닫히면서 최루가스가 들어찼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마침내 움직였을 때 저는 앞을 볼 수가 없었고 마치 의식을 잃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부축하며 “얼른 알코올과 비상약을 가져와”라고 말했지만 누군가 “아무것도 없어. 지금 수백 명이 가스 흡입 상태야” 하고 말했습니다.

후에 저는 누군가 “그녀를 영안실로 데려가, 거기에는 뭔가 있을지도 몰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두고 “영안실로 데려가” 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어요?

저는 제가 죽은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구급약과 깨끗한 천, 알코올을 충분히 구해다 줬습니다. 여러분은 이후 제가 귀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저는 다음 강의를 들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흔한 일상이었습니다.

2021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불 타버린 나리만 씨가 다닌 팔레스타인 공립 대학

결혼식에 늦어 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결혼하는 당사자이고 다들 예식장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것도 여러 번 벌어졌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약 일주일 전에 제 사촌의 딸이 결혼했습니다. [그 신부와 함께] 우리는 각종 위기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후 2시에 일찍 출발했어요. 결혼식이 열리는 도시까지는 길어야 2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요.

그런데 도중에 도시 진입로가 폐쇄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현지 사람들이 위기 상황 대처용으로 만든 각종 흙먼지 길로도 가 보려 했지만 주요 출입로가 폐쇄된 데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많은 탓에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녁 8시 반에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자체는 매우 짧았는데 하객들이 모두 피곤했고 얼른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먼저 도착한 하객들은 이미 2시간 넘게 기다린 상황이었고 우리는 길에서 6시간을 허비한 뒤였습니다.

보통 팔레스타인 문화에서는 며칠에 걸쳐 결혼을 축하하고 혼인 행사도 3시간 정도 걸리는 혼례식이 끝난 뒤 정오 때 점심 식사로 시작해서 저녁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빠지지 않고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일부는 우리더러 돌아가라고 했지만 우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결혼식이 거의 취소될 뻔했던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처음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는 난민 3세대에 속합니다. 제 가족은 1948년에 쫓겨난 뒤 오랜 시간 난민촌에서 살았습니다. 그 뒤 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이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도시는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도시죠.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에 속합니다. 베들레헴 인구의 다수는 무슬림이지만 시장과 부시장, 8인의 시의원들은 기독교인입니다. 무슬림들이 이들을 선출하는 것이죠. 기독교인들은 점령에 맞서 저항에 동참하고 이스라엘 통치에 반대하는 정당들에서 활동합니다.

저는 우리의 분쟁을,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분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광범하다는 것을 알고는 슬펐는데,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무슬림처럼 탄압을 겪습니다. 기독교 교회를 파괴하고 불태우고 그 지도자들을 겨냥하는 탄압 말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의회 내 시온주의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들이 종교 의식을 치르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현 상황은 서방 언론이 그리는 것과 다르다는 것, 종교 분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15~40일 동안 집에 물이 끊긴 적이 있나요? 어머니께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샤워할 때 물을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고 하시고, 또 목욕물을 양동이로 받아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집 지붕에 물탱크를 둔 적이 있나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입니다. 저는 제 언니들이랑 커다란 노란색 통을 들고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물 동냥을 다니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물을 구하러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고 난민촌에 물을 뜨러 갑니다.

임금의 절반을 써서 물을 구해도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이 이틀 치 쓰는 양에도 모자랍니다.

모든 생명은 생존하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땠는지 아나요? 오슬로 협정에 따르면 우리는 물을 얻으려고 우물을 파더라도 그 깊이가 100미터를 넘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우리가 빗물을 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아요. 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땅에 떨어지는 빗물은 이스라엘 소유인 탓에 우리가 빗물을 모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총부리 아래서 살아가는 아이들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가둔 팔레스타인인 어린이가 5만 명이 넘습니다. 2000년 이후로만 따져도 18세 미만 소년 소녀 1만 9000명을 억류했어요.

실정이 이렇지만 어떤 인권단체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은 놀다가도 체포되는데, 제 사촌의 아들이 장벽 근처에서 친구와 놀다가 그런 일을 겪었어요. 병사들이 그 녀석과 친구들을 체포하기로 찍은 것입니다.

나리만 씨가 다닌 학교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최루가스를 쏘는 이스라엘군

그저 놀고 있었을 뿐인데 취조실로 끌려갔고 친구들끼리 서로 뺨을 때리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찰싹 소리가 세게 나지 않으면 병사들이 대신 그 아이를 때렸습니다. 병사들의 사디스트적 만족감을 위해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직접 경험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7살일 때 어머니께 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음식]을 사달라고 했고, 한 친척과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했을 때 팔라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 때가 특별한 달인 라마단 기간이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통행금지!”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떠났고 저만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가게 주인이 저를 도우려고 다른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머리 위에 뭔가 닿았는데, 이스라엘 병사가 총을 대고서 “집에 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는데, 제 주변에 많은 병사들이 총으로 저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한 청년이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땅바닥에 눕혀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잠시 후 저는 병사들에게 우리 집이 근처에 있다고 말했지만 병사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게로 돌아갔고 가게 주인은 병사들이 떠난 것이 확인될 때까지 제가 머물도록 해 줬고, 제가 귀가하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고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들이 제 할머니 집에 침입했을 때였어요. 비록 그때는 무서운 티를 안 냈지만 말이에요.

병사들 중 상급자가 차에서 내려 저와 할머니, 여동생, 사촌의 딸을 향해 총을 겨눴습니다. 그는 제게 사촌의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모른다고 했고 할머니께서는 제가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셨습니다.

저들은 총으로 우리를 위협했습니다. 저는 그때 울지 않았지만 제 여동생과 사촌의 딸은 울고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 심장은 지금까지도 얼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생각합니다. ‘만약 저들이 강요했더라면 내가 결국 입을 열었을까?’ 저는 사실 그[사촌의 아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지만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저들은 모든 집을 수색했고 심지어 투항하지 않으면 집들을 부숴버리겠다고 대형 스피커를 통해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이 비율이 43.9퍼센트나 된다는 것을 아시나요?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18세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어린이 2만 9000명 이상이 부상당했고, 40퍼센트는 영구적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살해당하는 어린이 규모는 지난 4년간 무력 충돌이 벌어진 지역 23곳 중 가장 많다고 합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지, 점령지 국가와 점령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표현하는 용어는 바로 “인종 청소”입니다. 이스라엘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잘 무장된 군대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인종 청소라는 용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데,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쟁 범죄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래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고통받아 왔고, 가자지구는 16년 넘도록 봉쇄당했습니다. 육로, 해로, 항공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고 가자지구 물의 90퍼센트는 마실 수가 없습니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교회들과 모스크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지금 파괴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피신해 있는 학교와 병원도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전쟁 범죄이고 어떤 것으로도 그런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행복하지만,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에 맞서 행동하는 것에는 비통함을 느낍니다.

점령과 인종 청소에 직면해서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국이, 지금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편에 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고통은 과거 한국이 일본 식민 지배로 겪은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