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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반파시즘 활동가 인터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여느 공당처럼 보아서는 안 됩니다”

파시스트들이 주도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9월 1일 튀링겐주 선거에서 제1 당이 됐고, 9월 22일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2위를 했다.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토마시 텡글리-에번스가 독일의 파시즘 반대 운동가이자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가비 엥겔하르트(아래 사진)에게 AfD가 성장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다.

가비 엥겔하르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뒤섞인 당으로 출범했습니다. 현재 이 정당의 성격은 무엇인가요?

AfD는 2013년 창당 당시 파시스트, 우익 보수주의자, 신자유주의자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2015년부터는 EU 회의론을 주된 기조로 삼는 자들이 대부분 지도부에서 밀려났고, 이후 AfD의 인종차별적 강령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고 당은 급격히 우경화됐습니다.

현재 튀링겐주 AfD 지도자인 비외른 회케가 당시 당내 파시스트 분파인 ‘플뤼겔’(‘날개’라는 뜻)을 이끌었습니다.

회케는 2022년 작센주 리자에서 열린 AfD 전당대회에서 승리했습니다. 당 공동대표 알리체 바이델은 이전에는 회케를 축출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유럽연합 탈퇴, 연금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파시스트 중핵을 거스르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노골적인 파시스트들이 당의 정책을 결정하고 전반적인 기조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동부의 튀링겐주와 작센주 선거에서 거둔 승리로 회케의 노선에 대한 반대 의견은 잦아들었습니다. AfD는 아직 순수한 파시스트 정당은 아니지만, 이제 파시스트 성격이 지배적인 정당이 됐습니다.

AfD의 규모는 얼마나 되며, 어떻게 조직돼 있나요?

AfD는 당원이 약 4만 8000명이며, 그중 많은 이들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입당했습니다. 앞으로 몇 주 안에 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AfD는 국회의원 77명, 전국적으로 주 의회 의원 275명을 두고 있습니다. AfD 국회의원들만 해도 100명이 넘는 나치와 극우 ‘정체성주의 운동’ 활동가들을 보좌관으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나치들은 이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고 막후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는 시야를 갖게 됩니다.

이제 AfD는 적어도 옛 동독 지역의 거의 모든 지방 의회에 진출해 있습니다. 지역 당 조직을 구축하고 모임을 열며, 선거 운동 기간에는 거의 매일 책 가판을 운영했습니다.

튀링겐주와 작센주에는 AfD에서 가장 우익적인 지역 당 조직들이 있는데, 평당원 중 나치 비율이 가장 높은 데다가 지도자들도 파시스트입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작센주 켐니츠에서 일어난 파시스트들의 시위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아르투어 외스테를레는 현재 작센주 의회의 AfD 의원입니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가 벌어지는 가운데 파시스트와 반(反)파시즘 세력 간에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fD 대표들이 노골적인 나치들과 ‘정체성주의 운동’의 대표자인 마르틴 젤너를 만나 이주민 대규모 추방을 모의한 사실이 폭로되자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AfD도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1월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AfD 반대 시위 ⓒ출처 Magnus Hagdorn(플리커)

AfD는 파시스트 거리 폭력배들과 관계가 있나요?

AfD는 우익 테러 집단의 의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치들이 거리에서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부추기고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2018년 켐니츠에서 일어난 파시스트들의 인종차별적인 시위가 전환점이 됐습니다. AfD는 당시 처음으로 나치들과 함께 공공연하게 행진했고, 그 이후로 여러 도시에서 매주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위 주제는 매번 바뀝니다. 코로나, 에너지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하며, 참가자 수도 변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의 핵심 목표는 파시스트 거리 운동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AfD는 여러 의회에서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연설을 하며 난민, 무슬림,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작센주의 바우첸이라는 도시에서는 약 700명의 나치들이 성소수자 축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행진에 참가한 1000여 명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주최 측은 나치의 위협 때문에 행진 후로 예정된 파티를 취소해야 했습니다.

작센주 라이프치히에서도 나치들이 공격을 시도했지만, 반파시즘 거리 동원 덕분에 저지됐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이미 난민을 겨냥한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작센주에서 41건, 튀링겐주에서 35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AfD가 40~50퍼센트 득표율을 기록한 소도시와 작은 마을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나치 깡패 조직을 만들어(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색인종, 무슬림, 성소수자, 좌파를 공격하는 운동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졸링겐에서 한 난민이 3명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AfD는 자신들의 정당성이 더 입증됐다고 여겼고, 난민을 더 괴롭히고 있습니다.

9월 말 브란덴부르크주 선거를 계기로 공격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으로 구성된 연립정부는 어떤 구실을 해 왔나요?

많은 이들이 연립정부에 정당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연립정부는 사회적 궁핍을 완화하지 못했고, 부유층 증세는 감히 시도도 못 하고 있으며, 오히려 예산 삭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기존 군비에 더해 1000억 유로[약 150조 원]를 재무장에 투입하는 정책을 통과시켰습니다.

졸링겐 칼부림 사건 이후 독일 좌파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난민 신청 자격을 더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에 영합해서 AfD의 표를 가져오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터 맛 나는 마가린이 아니라 진짜 버터에 투표합니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사민당이 이끄는 정부를 ‘자신들의’ 정부로 여기고는 그 정부를 공격하려 하지 않는 탓에, 거리에서는 실질적인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전쟁에 맞서 싸우지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사회 문제에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동시에 노동조합 조합원의 25퍼센트가 AfD에 투표했습니다! 일부 노동조합은 “우리는 모든 조합원을 위한 노조”라며 이 문제와 대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노조들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뤄서 이 문제에 대처하려 하지만, 인종차별과 파시즘 문제와 직접 대결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일터에서 AfD와 나치에 맞설 의지를 가진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것이 매우 큰 과제입니다.

왜 AfD는 특히 독일 동부에서 성장하고 있나요?

AfD가 독일 동부에서 부상한 까닭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벌어진 일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독의 스탈린주의 정권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많은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번영이 이뤄질 거라는 전망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탈산업화와 20퍼센트에 달하는 대량 실업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에는 탈산업화에 반대하고 사회보장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시위들이 벌어졌지만, 독일 국가는 인종차별을 이용해 운동을 약화시켰습니다.

보수 정당인 기민련(CDU)이 이끄는 정부는 나라가 “이미 포화 상태라 동유럽 국가들에서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를 이주민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옛 동독 지역에는 이러한 인종차별이 번성할 토양이 이미 마련돼 있었습니다. 동독의 스탈린주의 정권이 베트남, 모잠비크, 쿠바 등지에서 온 계약직 노동자들을 천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공장에서 쫓겨났고, 일자리를 잃자 살 곳도, 사회보장도 없어졌습니다. 스탈린주의 정권은 그들에게 경제 위기와 물자 부족의 책임을 전가하려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이주민들에 대한 잔혹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야구 방망이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나치들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나치에 맞선 시위를 조직해야 했습니다.

2000년대에 사민당은 임금을 억제하고 복지를 삭감하는 신자유주의 “개혁” 패키지인 ‘아겐다 2010’을 도입했습니다.

‘아겐다 2010’은 이미 실업률이 20퍼센트였던 독일 동부 지역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저축한 돈을 모두 소진해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심지어 집을 잃거나 차를 팔아야 했습니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동안, 기반 시설에 대한 지출은 크게 줄었습니다.

농촌은 버스도, 병원도, 상점도 없고 기반 시설이 극도로 열악합니다. 동부가 더 심하지만, 서부도 좋지 않습니다.

왜 좌파가 지지받지 못했나요?

2000년대 초 주로 옛 동독 지역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좌파는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2007년 이 운동에서 좌파당이 탄생했고, 초기에는 지지받았습니다. 2009년 총선에서는 거의 12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처음에 좌파당은 변화 염원 대중의 희망과 열망을 대변했고, 전쟁에 명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좌파당 내 일부 사람들은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거란 환상을 품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좌파당이 이미 사민당과 함께 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예비 정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정부 수준에서 사민당과 연정을 꾸린 곳에서는 독일의 여느 주 정부처럼 행동해 지지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코로나 사태 동안 좌파당은 공장과 상점을 멈추고 생명을 구하는 투쟁을 실질적으로 벌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좌파당은 더는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AfD가 그 공백을 메우고 유일한 반전 정당이자 정부 정책에 유일하게 실질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을 자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파시스트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일부 사람들은 AfD가 민주적으로 선출됐으므로 민주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AfD가 의회에서 직책을 맡으면 무능함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용인될 만한 정치인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위험하며 1930년대 나치가 부상할 때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파시스트들이 민주적 절차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민주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AfD가 여느 공당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가면을 벗겨 파시스트 실체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국가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에 맞서는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하고 거리에서 그들에 맞서고 그들을 저지해야 합니다.

반파시즘 활동가들은 거리로 나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튀링겐주 예나에서는 2000명이 AfD 집회를 막아서 회케의 연설을 저지하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우리는 연대체 ‘인종차별에 맞서자’와 협력하여 AfD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에센에서는 AfD 전당대회를 저지하려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내년 봄에 있을 다음 전당대회도 저지하려 합니다.

이미 많은 단체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무언가 행동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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