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들의 전략이 일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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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부터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까지 극우가 기세를 높이고 있다.
극우에 맞서 싸우려면 그들 내부의 서로 다른 역학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여러 가지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일부 세력은 고전적인 파시즘 전략을 취한다.
고전적 파시즘 전략은 거리 운동을 조직해 반대파와 소수자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궁극적으로는 독재를 수립해 노동계급 조직과 민주주의 일체를 파괴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을 취하는 자들로는 토미 로빈슨이 있고, 지난여름 영국 곳곳에서 벌어진 폭동이나 2018년 독일 동부 켐니츠를 휩쓸고 간 폭력배들도 이런 조류에 속한다.
둘째, 프랑스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나 멜로니의 이탈리아형제당처럼 선거에 초점을 두는 정당들이 있다. 이들의 중핵에는 강경 파시스트들이 있지만, 자신의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감춰서 더 폭넓은 유권자층을 끌어들이려 한다.
셋째,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지 않은 극우 정당들이 있다. 영국의 나이절 퍼라지와 영국개혁당 같은 당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퍼라지는 극우 수사를 구사하지만, 나치식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거나 거리 운동을 조직하거나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야망은 없다.
넷째, 전통적인 보수 정당들이 갈수록 극우화하고 있다.
몇 년 전 영국 보수당 내무장관 수얼라 브래버먼이 극우 음모론인 ‘대전환(인종 대교체) 이론’[유럽이 무슬림 등 이민자로 대체될 것이라는 음모론]을 들먹이며 이민자들을 공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 넷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이 넷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키운다.
극우화
주류 정치인들은 생계를 꾸리기 힘든 서민들에게 내놓을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점점 더 인종차별적 발언과 극우적 언사를 써가며 일자리와 주택, 공공 서비스가 부족한 책임을 난민과 이민자에게 뒤집어씌운다.
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을 용인한다고 해서 극우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우를 더 키워줄 뿐이다.
보수당 정치인들이 이민자의 “침공”,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비방하며] “증오 행진”, [인종에 따른] 이중 잣대 치안을 들먹일 때마다 영국개혁당 같은 정당의 인종차별 사상, 이민자 혐오 사상이 정당성을 얻게 된다.
실제로 영국개혁당은 7월 4일 총선에서 400만 표 이상 득표했다.
3주 뒤인 7월 27일에 파시스트 토미 로빈슨이 런던 거리에 1만 5000명이 넘는 군중을 모았고, 불과 며칠 뒤 잉글랜드 전역에서 인종차별적 폭동이 터져 나왔다.
사회가 힘들 때면 파시스트와 극우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이 자신들뿐이라고 자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과정이 아니다. 극우가 성장하면서 주류 정치를 끌어당길 수도 있다.
영국에서는 보수당 당권 주자들이 모두 영국개혁당으로 빠져나간 유권자들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며 보수당을 더욱 우경화시키려 한다.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도 결코 무죄가 아니다. 노동당 정부는 ‘긴축 정책 2.0’을 약속하는 동시에 이민자 수천 명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하며 이민자를 향한 인종차별을 부추긴다.
극우는 기회주의적으로 지배계급이 공격하는 대상을 자양분 삼아 세를 불린다.
여러 극우는 저마다 싫어하는 대상과 추구하는 정책이 다르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자유 시장을 옹호하고 국가의 복지 시스템을 해체하려 한다.
반면 긴축에 반대하고 복지 지원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극우도 있다. 물론 이민자 가정은 그 복지의 대상에서 열외지만 말이다.
헝가리 극우 지도자 오르반 빅토르의 동맹당은 유대계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를 거듭 공격하면서 노골적인 유대인 혐오를 드러낸다.
하지만 오르반은 이렇게 유대인을 혐오하면서도 유럽에서 이스라엘과는 가장 친하게 지내는 자이기도 하다.
멜로니는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지지하는 반면, 오르반과 르펜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자고 주장한다.
유럽의 여러 극우 정당이 유럽연합을 비판하지만, 일부는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입장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런 모순은 파시즘·극우가 자본주의와 맺는 관계에서 일정 부분 비롯한다. 이들은 “권력층 반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때로는 “반자본주의’ 수사도 동원하지만, 실제로는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
그래서 극우 파시스트들은 집권하고 나면 대개 대기업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집권 전보다 더 조심한다.
예컨대 멜로니는 총리가 되기 전 이탈리아에 시장 자유화 개혁을 요구하던 유럽연합을 공격했다. 하지만 총리가 되자 유럽연합의 지원금을 받는 대가로 유럽연합 비판을 재빨리 거둬들였다.
차이
이들은 정치뿐 아니라 조직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150년 넘게 존재해 온 공화당을 장악한 뒤 그 당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성 정치 기구를 넘어설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트럼프는 대안 우파 인터넷 전사들과 손잡았고, 극우 언론 ‘브라이트바트’의 스티브 배넌을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임명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우기면서 파시스트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도록 부추겼다.
트럼프는 반대파들을 체계적으로 위협하고 괴롭힌다. 그가 공격을 하면 우익 인플루언서들이 노골적인 폭력 위협을 더하며 공격을 키운다.
유럽에서 극우 조직들은 수십 년에 걸쳐 변화해 왔다.
프랑스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은 나치 추종자들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만든 당이었다.
하지만 당 대표가 된 마린 르펜은 조직의 “악마성”을 지우려 애써 왔다.
예를 들어 국민연합은, 이전에는 여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인정한다.
국민연합은 청년층을 끌어들이려고 학생 대상 세금 혜택을 공약하기도 한다.
멜로니의 이탈리아형제당도 파시스트 전통을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포스트파시즘” 정당을 표방한다.
파시스트의 상징과 구호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인정하는 당의 발언과 공존한다.
하지만 이렇게 겉모습을 바꿨다고 해서 이들 정당이 파시즘과 결별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그들이 거리 운동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중 전략
1930년대 파시스트 운동도 이중 전략을 썼다.
1930년대에도 파시스트들은 선거 기반도 만들었고 준군사적 거리 전투 조직도 만들었다. 이탈리아에는 검은셔츠단이 있었고, 독일에는 갈색 셔츠를 입은 돌격대원들이 있었다.
현재 르펜과 멜로니가 거리의 군대를 훈련시키고 있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사회적 위기가 심각해지면 그들도 거리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포퓰리즘이 먼저 등장했다. 이는 정치를 우경화시키며 2010년대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이 성공할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이는 다시 멜로니의 이탈리아형제당에게 길을 열어 줬다. 극우화가 지금보다 더 나아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변천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AfD는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EU 회의론자들이 연합해 2013년에 창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골적인 파시스트들이 당을 장악했다.
한때 홀로코스트 관련 발언 때문에 당의 골칫거리로 여겨졌던 비외른 회케가 지금은 당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 회케는 AfD 튀링겐주 대표인데, 튀링겐주에서는 지난달 주 선거에서 AfD가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AfD 국회의원들은 노골적 나치 약 100명을 보좌진으로 고용하고 있다.
AfD는 파시스트들이 어떻게 선거 정치와 거리 운동을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독일 동부 소도시 선거에서 AfD는 40~50퍼센트를 득표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청년들이 나치 조직을 만들어 무슬림과 성소수자, 좌파를 공격한다.
영국에서는 이제 새로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개혁당은 최근에 얻은 지지를 대중적 극우 정당 건설에 이용하려 한다.
영국개혁당은 당내 구조를 바꿔 지역 지부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당이 대중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강성 활동가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는 위험한 신호다. 이런 변화로 파시스트들에게 문을 열어줘, 파시스트들이 영국개혁당 안에 조직을 만들고 당을 더 극우화시킬 수 있다.
로빈슨이 지난 7월 극우 집회에서 영국개혁당에 투표했느냐고 물었을 때 참가자들은 모두 손을 들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위협은 엄청나지만, 극우가 결코 막을 수 없는 세력은 아니다. 지난여름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에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거리 동원으로 맞선 것은 극우가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우리의 과제는 파시스트들을 저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최대한의 단결에 기반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대규모 시위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극우라는 위협을 만들어내는 체제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파시스트당이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이라고 역설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즘에 맞선 공동전선을 만들면서도 파시즘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는 “혁명적 희망의 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