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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5: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이 겪고 있는 차별

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은 지난해 10월 7일 이후 1년 가까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팔연사’ 조직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팔연사’ 집회와 활동의 특징은 난민과 난민 신청자, 원어민 강사,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이주민들이 참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들과 운동 속에서 교류하며 이들이 한국에서 이주민으로서 겪고 있는 차별과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됐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공감하는 동료 노무사들과 함께 ‘팔연사’ 집회에서 무료 노동상담 부스를 설치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흔히 난민 비자라고 알려져 있는 G-1 비자는 다양한 사유의 ‘임시 체류’를 허가하는 비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소송, 치료, 산재보상 청구나 임금체불 진정, 난민 신청 등 짧은 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이주민들에게도 이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그중 난민 신청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난민 비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G-1 비자 소지자는 원칙적으로 한국에서 취업이 금지된다. 앞서 열거한 상황에 놓인 이주민들더러 손가락만 빨면서 결과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만약 먹고 살기 위해서 취업했다가 적발되면 미등록 신세가 된다. 취업하려면 출입국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난민 신청자의 경우 여기에 더해 첫 6개월은 아예 취업이 불가하고, 이후 허가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나 업종이 제한된다. 특히 한국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다며 난민 신청자의 건설업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이간질하는 것이다.

취업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통상 6개월마다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와 맞물려 취업 허가도 갱신해야 한다.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것이 출입국 당국의 허가 통보에 달려 있다.

A 씨는 난민 신청자다. 노동자 투쟁 지원과 반정부 활동에 대한 본국 정부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한국 법무부는 그의 난민 신청을 기각했고, A 씨는 현재 이에 불복해 소송 중이다.

A의 외국인등록증 그의 체류 등급은 기타 G-1이다 ⓒ제공 김광일

A 씨의 가족 전체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나는 A 씨의 퇴직금이 체불됐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대리인이 돼 퇴직금 체불 진정을 넣었다.

사용자가 A 씨를 대하는 태도는 한국인 사장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같았다. 취업 자체가 불법이라는 둥, 건강보험 등 가입이 불가능하니 공제금이 없어 급여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는 둥. 퇴직금 지급을 주장할 증거가 없어 쉽지 않아 보였으나 사용자의 진술이 퇴직금 지급 의무를 확정 지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었다. 올해 4월 22일부터 고용노동부는 간이대지급금(옛 “소액체당금”, 근로복지공단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체불 금품을 대신 지급하는 제도)을 위한 체불확인서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이 중 하나가 건강보험 가입 이력인데, A 씨는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간이대지급금 체불확인서 발급이 불가능했다. 결국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소송까지 제기해서 시간을 허비해 가며 법원의 간이대지급금 이행권고 결정을 받아 냈다. A 씨 가족에게는 적잖은 금액이어서 다행이지만, 불안정한 체류 자격은 이 가족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B 씨는 내가 일하는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하며 만난 친구다.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취업한 그는 체류 기간이 끝나자 난민 신청을 해서 체류 기간을 연장해 왔다. B 씨는 이주민에게 주민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하는 외국인등록증조차 없었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나 체류 기간 만료가 얼마 안 남은 이주민이 난민 신청을 한 경우 등 자의적 기준에 따라 “가짜 난민”으로 의심되면 외국인등록증을 회수하는데, B 씨도 그런 사연이 있는 듯했다.

외국인등록증의 효력이 소멸했다고 해도, 한국에서 그의 삶조차 소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그가 내 사무실에 찾아 왔다. 난민 불인정에 대한 이의신청 결과 통보일을 앞두고였다.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없는지, 한국에서 더 일하면서 체류할 수 없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인 C 씨도 같은 처지여서 함께 왔다. 외국인등록증 발급은 불가했고, 이의신청 기각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합법적 체류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들 처지에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둘은 쓸쓸하게 사무실을 나갔다. 나에게 소송대리권이 있었다면 좋으련만.

안타까워 이주민·난민을 지원하는 활동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답변은 놀라웠다. 체류를 연장하기 위한 “무분별한” 난민 신청 때문에 “진짜 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진짜 난민”들에 대해서도 난민 자격을 부여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23년 난민 인정률은 1.53퍼센트다! 정부는 난민 유입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가짜 난민”을 걸러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배척적 난민 심사를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B 씨와 C 씨처럼 한국에서 더 체류하며 일하고자 하는 것이 비난받아야 하나? 힘든 시간을 버티며 적응하고 생활 기반을 마련한 곳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체류를 제한하는 국경 통제가 진정한 문제 아닐까? 아마 B 씨와 C 씨는 미등록 신세로 일하다가 단속되거나 길거리에서 단속돼 추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간이라도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만난 다양한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차별에도 관심을 가지고 맞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국제적 정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주민 차별은 그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