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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10:
‘외국인보호소’의 수용자도 사람이다

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고,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구금하는 ‘화성 외국인 보호소’ 당국은 개정 출입국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추방했고, 경찰은 이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을 연행했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사건 의뢰도 늘고 있다. 유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추방돼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체불임금이나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 문의한다.

둘째, 단속으로 ‘외국인 보호소’에 갇힌 상태에서 상담을 요청하고 사건 수임을 의뢰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작업장이나 길거리에서 단속돼 곧바로 ‘보호소’로 끌려가기 때문에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기 어렵다. 또, 경황이 없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거의 없고, 급여를 현금으로 지급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용자들은 이들의 단속과 구금, 또는 추방 사실을 알 텐데도 침묵한다. 비정하게도 그들은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유형은 최근에 새롭게 맡게 되는 사건들인데, 단속이 강화되니 아예 자진 출국을 선택하는 경우다. 자진 출국 전에 자신이 지급받아야 할 금품들을 청산하고 싶어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들 힘들고 어려운 조건이지만 특히 보호소에 갇힌 경우는 당사자의 부자유 상태 때문에 사건 처리가 더 어렵다.

성인 남성들과 함께 ‘보호소’에 구금된 네 살 아동이 식사를 거부하고 벽을 보고 앉아 있다(왼쪽 위) ⓒ출처 공익법센터 어필

‘보호소’ 안의 사람들

‘외국인 보호소’에 갇혀 있는 라이베리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A 씨와 나이지리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P 씨의 지인이 찾아온 것은 불과 며칠 사이였다. 둘 다 여성이고 연령대도 비슷했다.

A 씨는 동두천 섬유업체에서 일하다 작업장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단속을 당해 ‘보호소’로 끌려갔다.

A 씨의 남자 친구가 찾아왔는데, 근로계약서는 없었다.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받았지만 다행히 급여 봉투를 꼼꼼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고용지청 진정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체불확인서를 발급받았다. A 씨 남자 친구의 체류 자격을 물으니 그 자신도 미등록이었다. 그가 단속되더라도 A 씨와 연결돼 마무리할 사람을 확보해야 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건의 경우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연락선을 확보해야 한다.

P 씨도 경기도 광주 섬유업체에서 일하다 작업장에서 잡혀갔다. P 씨 사건은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잡혀간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녀는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이 없어 무려 6개월 가까이 감옥 같은 ‘보호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출국시킬 때 항공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도록 한다. 이런 상황에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하다 잡혀 와 임금과 퇴직금도 못 받고, 그녀가 ‘보호소’에서 석방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단속도 단속이지만 법무부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신자유주의에 몸서리가 처진다.

도움을 요청하며 찾아온 그녀의 나이지리아인 친구는 내가 사건을 수임하고 나서 계속 P 씨가 출국하지 못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나에게 호소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받은 정보가 회사 이름과 주소, 그녀의 계좌번호가 전부였고, 계좌를 확인해도 지급 내역은 확보할 수 없었다. 고용지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회사명과 주소가 모두 확인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마음 아프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기본 정보도 파악이 안 된 사건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도 이런저런 도움으로 사용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또랑또랑한 말투로 사용자가 말한 첫 문장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뻔뻔하게도 “아직도 P가 보호소에 있냐?”라고 물었다. 버젓이 작업장에서 일하다 잡혀갔는데, 그 사실을 몰랐을까?

P 씨를 빨리 보호소에서 빼내야 했으므로 신속하게 체불액을 받아 내 보호소에 있는 P 씨에게 전달했다. 사건을 마무리한 그날 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왔다. ARS로 출입국관리소 공중전화라고 나오고 어떤 여성이 영어로 말을 시작했다. P 씨였다. 그녀는 감사하다고 반복했고, 나는 더듬더듬 영어로 ‘운이 좋았다, 조심히 돌아가라,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통화하면서 울컥했던 것 같다. 6개월의 ‘수감 생활’에서 석방된 그녀의 해방에 대한 축하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유일한 통로는 그녀의 나이지리아인 친구와, 친구가 사건을 의뢰한 나였을 것이다. 이런 가늘디가는 실 같은 끈에 그녀의 한국에서의 고단한 노동과 삶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국경 통제에 맞선 모든 투쟁과, 미등록 이주민들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과, 단속에 반대하는 투쟁들이 이들의 희망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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