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9:
쿠데타와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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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는 미수로 끝났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쿠데타 기도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변론을 이용해 자신의 정당성을 선동하고 있고, 이런 토양 속에 거리에서 극우들이 성장하고 있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는 한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에게도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주민들은 체류가 불안정하고, 차별을 받고 있어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을 법하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미국 권력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에, 트럼프 재선과 그의 이주민 공격 정책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켰을 것이다.
내가 아는 다양한 이주민들은 나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또 내가 윤석열 퇴진 시위에 나가는 것을 응원했다. 그들도 시위에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얀마 출신 내 친구 S 씨도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로 적잖이 놀랐다. 미얀마가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내전 상태라 더욱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전의 한복판에서
S 씨의 부모님은 반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내전의 한복판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군이 탈환을 위해 폭격까지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S 씨는 부모님 걱정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미얀마의 통신이나 인터넷도 불안정해 겨우겨우 부모님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는 불안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할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반정부군의 공세에 밀리고 있고, 공세에 맞서기 위해 징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래 모병제였으나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2월부터 18~35세 남성과 18~27세 여성을 모두 정부군에 강제 입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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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때문에 미얀마를 떠나 인접한 태국 등으로 이주해 미등록 신분으로 일하는 미얀마 청년들이 많다. 그런데 최근 태국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 단속을 강화해 체포한 청년들을 미얀마 정부에 인계하고, 미얀마 정부는 그들을 고스란히 군대로 끌고 간다고 S 씨는 말했다. 미얀마 청년들의 생명을 두고 벌이는 정말이지 더러운 국경 통제 공모다. 심지어 해외 체류자에게도 징집 통지서를 보내고 있다고 하니 그 정도가 짐작이 간다.
징집 대상에 해당하는 S 씨의 동생은 어렵사리 미얀마를 떠나 일본에 도착했고 제약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생을 미얀마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온 가족이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려는 노동자들의 수도 엄청나게 늘어 경쟁률이 역대급이라고 한다.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미얀마인 노동자들은 고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지지와 열의가 높다. 이들은 힘들게 일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미얀마 현지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에 꾸준히 동참하고 있다. 부평역에서는 주말마다 미얀마인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노동시간이 긴 이주노동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휴일을 헌납하는 것이다.
국경 통제
내가 수임했던 미얀마인 노동자들이 페이스북에서 추천 친구로 뜨곤 한다. 이들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미얀마 국내 투쟁을 지지하는 영상들이 많이 공유돼 있다. 나중에 들었는데 한 미얀마인 노동자는 반정부군에 참가해 총을 들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투사였다. 이들의 열의를 보면 울컥해진다.
그리고 파독 광원과 간호사들이 떠올랐다. 서독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직종에 파견된 한국인 노동자들은 전두환 일당이 5.17 쿠데타 이후 학살을 벌였을 때, 가장 먼저 앞장서 전두환 일당의 학살을 폭로하며 규탄에 나섰고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문제는 미얀마인 노동자들의 고용허가제 체류 기간이 끝난 경우다. 미얀마로 귀국할 경우 강제 징집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에 남고 싶어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임시 체류 비자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는 그냥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난민 신청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이는 언감생심이다.
이제 S 씨의 얘기로 돌아와 보자. S 씨는 군부 쿠데타 이전에 미얀마를 떠나 한국에 왔지만 쿠데타 때문에 5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했다고 아련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울 때는 고향이 폭격당하거나 전투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다. 그의 동생은 일본으로 탈출했고, 부모님은 내전의 한복판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쿠데타의 고통은 고스란히 한 노동계급 가족에게 전가됐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 미얀마와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 1980년 서독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파독 노동자들, 그리고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에 맞서 파면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
민주주의의 적은 국적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의 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이들은 국적 불문하고 모두 친구다.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노동자들이 친구인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