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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 개악 반대해야 한다

12월 13일 법무부가 난민법 개악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악안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해쳤거나 해칠 우려”만 있어도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심지어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했던 사람도 난민 자격을 도로 박탈할 수 있다.

정부가 정치 난민들의 난민 인정을 매우 자의적으로 거부할 수 있게 하고, 난민으로 수용해도 압박할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또한 난민들이 한국에서 정치적 운동을 하는 것을 억압하려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는 문구는 기본권 제한의 일반적 요건을 담은 헌법 제37조 2항의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대로 쓰면 지난 40년간 수많은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에서 봤듯이 기본권 제한의 폭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넓힐 수 있는 독소 조항이다.

그런 이 조항조차 구체적인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써 하라고 돼 있다. 그러나 법무장관 한동훈은 요건을 구체화한다며 이런 조항을 난민법에 추가하려는 것이다.

두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에 이집트인 난민들이 적극 참가하고 있다. 그들은 자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에 참여해 온 경험이 풍부하다. 난민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이런 활동들을 문제 삼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는 한동훈이 난민법 개악안을 입법예고하며 한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한동훈은 개악안 추진이 특별히 “테러리스트, 테러 우려자 등이 난민으로 인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서방 우파들의 관행을 가리키는 완곡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10월 27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즉시 휴전” 결의안에 “하마스 규탄이 없다”는 이유로 기권했다. 당시 총회에서 주유엔 한국 대사 황준국은 “한국은 [하마스의] 정당화할 수 없는 테러 행위를 가장 강력한 표현을 동원해 규탄한다”고 발언했다.(물론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두 번째 휴전 결의안에는 눈치 빠르게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의 현행법상으로 하마스는 테러 단체가 아니다. 테러방지법은 유엔이 지정한 단체만 테러 단체로 인정하는데, 유엔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지 않았다.

“글로벌 스탠더드”?

그러나 미국, 유럽연합, 영국, 이스라엘 등은 독자적으로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한동훈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일 것이다. 국정원도 현재 하마스를 웹사이트의 국제 테러 단체 목록에 등재해 놓고 있다. 다른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들과 함께 말이다.

난민법 개악안이 통과되더라도 정부가 팔레스타인인에 연대하는 운동에 참가하는 난민을 곧장 ‘하마스의 테러’를 지지한다고 공격하기는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슬림·난민에 대한 편견 등을 이용해 사회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도덕적 공황을 일으키고, 운동에 참가하는 난민들을 마녀사냥하며 위축시키고, 적절한 때를 노려 운동 자체를 탄압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특히, 최근 하마스 규탄 국회 결의안을 발의했던 국민의힘 의원 하태경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테러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테러방지법상 테러 단체 지정을 국가테러대책위원회(국무총리가 위원장)가 할 수 있도록 고치는 안이다.

그러나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의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저항을 이끌고 있는 정당이다. 그리고 75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에 맞선 무장 저항은 정당하다.

AP통신은 하마스의 10월 공격이 옳다는 응답자가 서안지구에서 82퍼센트, 가자지구에서 57퍼센트에 이른다는 팔레스타인정책여론조사연구소(PSR)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수치는 최근에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국제 운동 난민들은 이 운동을 고무하고 보탬이 되고 있다 ⓒ조승진

난민법 개악안이 정치 난민과 그들의 활동을 겨냥한다는 점은 이전에 추진됐던 난민법 개악안들과의 차이점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예멘 난민 집단 입국 이후 정부가 2020년과 2021년에 내놓은 난민법 개악안들은 모두 경제적 목적의 난민 신청자들을 거르는 것이었다.

법무부가 보기에 체류 연장이나 경제적 목적 등을 위한 난민 신청은 ‘가짜 난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불인정을 받으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취업을 불허할 수 있게 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이 개악안들은 더 추진되지 않았다.

이번엔 난민들의 정치 활동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 이후 난민들의 눈에 띄는 국내 활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이집트인 난민들이 난민 즉각 인정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에서 농성하고 서울 도심에서 시위했다. 한국인들도 연대했다. 한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난민들이 주도적으로 집단 행동에 나선 첫 사례였다.

규모가 큰 운동은 아니었지만,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유대감을 쌓고 더 많은 난민들이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주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올해, 팔레스타인인에 연대하는 운동에 팔레스타인인을 포함한 여러 이주민·난민들이 적극 참가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도 보탬이 되고 고무가 되고 있다.

때마침 이번 난민법 개악안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한창인 와중에 입법예고됐다.

이번 개악안이 바로 이런 난민들, 특히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겨냥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치 난민 중에는 자국 정부의 탄압에 맞선 투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이 적잖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이 조직되고 한국에서도 운동에 나서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과거에 정부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초기 지도부를 거듭 표적 단속으로 추방해 운동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 고용허가제 실시에 반대해 2003~2004년 380일간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을 주도했던 경험있는 활동가들이었고 모두 노동자연대(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이었다.

정부가 법 개악으로 난민들의 정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난민들의 운동과 팔레스타인인 연대 운동을 정부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근래에 이스라엘과 관계를 확대해 오면서 미국과 서방의 이스라엘 지지에 보조를 맞춰 온 문재인·윤석열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주민 유입을 늘리려는 한국 정부는 이런 일이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벌어지는 것을 우려해 미리부터 난민법 개악을 추진하는 것이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테러 지지 운운하며 유럽 국가들이 탄압하는 것을 보면, 한국 정부의 시도는 한국인들의 국제 연대도 억누르게 될 것이다.

난민들의 자체 활동을 고무하고, 팔레스타인인 연대 운동 등을 성장시키고, 한국인들도 더 많이 연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의도를 좌절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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