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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1:
사업장 변경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이라면 마땅히 노동자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해지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게는 사실상 계약을 해지할 권한이 없다. 만약 그가 자유의사에 따라 해지 의사를 밝히고 사업장을 그만둔다면, 이는 ‘사업장 이탈’에 해당돼 미등록 신세가 된다. 적법하게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용자의 해고든, 당사자 간 합의 퇴사든 사용자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고용허가제 근로계약을 “계약”이라고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고용허가제는 인종차별 이주노동자의 조건이 개선돼야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하향 압력도 줄어든다 ⓒ이미진

S 씨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다. S 씨가 일하는 곳은 급여가 적고 일이 힘들어, 그는 사업장 변경을 바랐다. S 씨와 함께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들도 사장이 사업장 변경 요청을 거절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S 씨가 가져온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그에게 지급된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위반이 있으면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의 허가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이조차 고시는 “사용자의 단순 계산 착오로 인한 경우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아 사용자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최저임금법 어디에도 없는 규정으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인종차별적 규정이다.

나는 S 씨의 대리인으로 최저임금 위반과 최저임금 미달분 임금 체불을 고용지청에 신고했다. 처음에 사장은 뻔뻔하게 최저임금 위반 사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고용지청 출석 전날이 되자 그는 진정 취하를 조건으로 사업장을 변경해 줄 수 있다고 했다. S 씨는 이를 수락했다. 이 사장은 최저임금법 위반 처벌과 체불 임금 지급을 사업장 변경 승낙과 맞바꾼 것이다.

T 씨는 네팔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다. T 씨에 따르면 그의 사장은 일감이 떨어지면, 이주노동자들의 한 달 치 급여를 공제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업장 변경을 승낙한다고 한다. 물량이 줄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해도 사장은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므로 차라리 이주노동자들을 내보내고 한 달 치 임금도 떼먹을 수 있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T 씨가 사장의 “승낙”하에 사직서를 작성한 날 공장의 다른 이주노동자 3명도 함께 사직서와 한 달 치 급여 포기 약정서를 제출했다. 이 사직서와 약정서는 사장이 주도면밀하게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사장님 참, 친절하시기도 하다. 이 사장은 노동자들의 한 달 치 임금을 사업장 변경의 미끼로 사용했다.

억울했던 T 씨는 나를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고 한 달 치 임금에 대해 체불 진정을 넣었다.

M 씨의 사례도 떠오른다. M 씨는 공장에서 일하며 연차 휴가를 사용한 적도, 미사용 연차 수당을 지급받은 적도 없었다. M 씨의 근무 내역 등을 살펴보니, 미사용 연차 수당은 이주노동자들의 통상적인 급여의 한 달 반 치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연차 미사용 수당 체불에 대해 진정을 넣었다. 그 공장의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상황도 같았다. 수당 미지급이 인정되면 사업장의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자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사용자가 고용지청 출석조사를 앞두고 사업장 변경 카드를 제시했다.

M 씨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수당을 포기하고 사업장 변경을 선택했고 진정을 취하했다. 적은 금액이 아닐 텐데, 나는 설득해 보려 했지만 M 씨는 단호했다. 오히려 사업장을 변경하게 된 M 씨는 그동안의 어두운 얼굴이 아니라 너무나 환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여느 한국인 노동자였다면, 사장이 처벌되고 S 씨는 최저임금 미달액을 지급받고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것이다. T 씨는 이직을 위해 자신의 한 달 치 임금을 사용자에게 헌납하지 않아도 됐고, M 씨는 이직을 위해 한 달 반 치의 임금에 해당하는 연차 수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선택의 자유를 제약한다. 사업장 변경 제약은 더 나은 조건을 바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선택을 원천 봉쇄한다. 싸우기 어려운 조건이거나 싸울 자신감이 부족할 때는 이직이 일종의 항의의 수단이기도 한데, 항의의 통로도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 족쇄가 돼 그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며, 사용자에게는 노동관계 법령을 위반할 수 있는 방패막이를 제공한다.

정부가 빠르게 규모를 늘리고 있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조건이 개선돼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하향 압력도 줄어든다.

고용허가제는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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