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8:
살라 말리쿰! 무슬림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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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무슬림 노동자의 종교 활동에 대한 분쟁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경기도 파주 사업장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인 노동자 A 씨의 부당징계 사건을 수임했을 때였다.
A 씨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로, 그가 보내 준 사진을 보면 매주 우즈베키스탄인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작은 모스크에서 예배하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A 씨는 해당 작업장에서 4년 10개월을 근무하고 출국했다가 재입국 특례로 다시 근무하고 있었다. 고용허가제에서 재입국 특례제도란 사업장 변경 없이 4년 10개월을 근무하면 여러 입국 요건들을 면제해 다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인데, ‘성실근로자 재입국 취업 제도’라고 불렸다. 한마디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성실하게’ 군말 없이 한 사업장에서 꾹 참고 견디면 다시 입국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A 씨는 사업장 변경 문제로 사용자와 갈등이 생겼다. 급여가 적은 곳이라 재입국 특례 입국 기간 동안은 임금이 높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갈등에 대한 사용자의 답변은 징계였다. 그것도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였다. 한국인 노동자에게도 중징계인데 고용허가제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정직 기간 동안 다른 사업장에서 임시로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 수임을 위해 상담하고 자료를 건네받고 나서 놀랐다. 정직 3개월 징계 사유에 “종교활동(이슬람 기도시간)으로 업무차질 유발”이라고 적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A 씨는 같은 사업장에서 4년 10개월을 근무했고, 당시에도 늦은 오후 짧은 시간 기도를 했다. 업무가 밀려 있으면 업무를 마무리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A 씨의 기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4년 10개월이나 기도가 허용됐다면 관행으로 인정받을 여지도 있었다.
징계 사유의 부당성에 대한 이유서를 작성하며, 나는 한남동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에 문의해 무슬림에게 기도의 의미, 계절마다 조금씩 변하는 무슬림의 기도 시간에 따라 A 씨가 당시 행했던 늦은 오후의 정확한 기도 시간에 관한 자료를 받아 첨부했다. 그가 독실한 무슬림이라는 것을 입증할 자료도 포함했다.
근로기준법은 신앙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차별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그러나 더 분노스러운 것은 징계의 부당성 여부를 다투는 노동위원회 심문회의였다. 주심을 맡은 공익위원의 말은 결코 잊을 수 없다.
A 씨의 기도에 대해 주심은 이렇게 얘기했다.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싶으면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세요.”
뿌리 깊은 무슬림 혐오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무지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모르겠지만 주심의 말은 명백한 인종차별적 언사였다.
A 씨와 대리인인 나의 주장은 결국 인정되지 않았다. 심문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A 씨는 격분했고 또 자포자기한듯 나에게 “사업장 나와서 불법으로 일할 것이다”라고 했다. A 씨가 지금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종교를 존중하는 한국인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종종 모스크 금요예배에 함께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공단지역에 위치한 모스크들이다 보니 예배에 참가하는 무슬림은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들이다. 금요예배에 참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순식간에 모였다가 순식간에 흩어진다. 작업장 점심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기름때와 흙먼지 묻은 작업복을 입고 모스크에 와서 곧바로 발을 씻고, 기도를 드리고 삼삼오오 차를 이용하거나 오토바이 등을 타고 곧바로 작업장으로 돌아간다. 허기를 달래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점심시간에 이렇게 기도한다. 기도는 그들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리라.
음식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휴식과 수면, 음식 섭취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식사에도 어려움이 있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할랄 도축 육류를 먹는 것이 문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에 가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것이 할랄 푸드 마트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 메뉴에는 값싼 육류인 돼지고기가 자주 제공된다. 내가 만나 본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은 돼지고기가 나오면 아예 먹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다.
사용자들이 무슬림 노동자들에게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지 않는 핵심 이유는 비용 문제일 것이다. 비용 문제로 무슬림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소규모 사업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조선업종에는 이주노동자 유입이 크게 늘고 있는데, 그중에 우즈베키스탄과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의 유입도 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인종차별에 따른 저임금이 핵심 문제다. 그러나 무슬림이라 음식에 관한 어려움도 겪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 많이 고용돼 있다. 그런데 2023년 5월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무슬림 노동자들의 식단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문제 해결을 사용자 측에 촉구한 적이 있다.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해 1월 한 정규직 활동가도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는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사용자 측이 할랄 인증 도시락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활동가의 제안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이 사용자 측에 할랄 인증 도시락 제공을 요구했다.
사용자가 이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요구와 항의는 무슬림 노동자들에게 한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인 활동가들 사이에서 무슬림들의 처지를 환기시키고 알릴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이런 사례가 더 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무슬림 노동자들은 여느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종교에 따른 차별도 겪고 있다. 이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무슬림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새해가 되길 바라며 인사를 드린다. 살라 말리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