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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2: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불법, 불법” 하지 마라

필자 김광일은 이주노동자 전문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일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노동자 연대〉에 매달 기고하고 있다.

우선 용어 사용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정부와 언론들은 “불법 체류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외국인처우법에 아예 “불법체류”라는 용어가 명시돼 있다.

이런 용어법에는 자신들의 국경 통제를 따르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강한 증오가 서려 있다. 그리고 “불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반사회적이고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집단처럼 보이게 한다. 아울러 사용자들이 노동자의 약점을 이용해 법을 위반하거나 위법행위를 정당화하는 데도 용이하다.

따라서 UN 국제이주기구 등이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 이민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다.

법무부는 2023년부터 “불법체류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2만 명을 단속했고,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경찰청,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2개월 반 동안 집중단속을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 질 낮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이주노동자 유입은 늘리는 한편,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단속과 추방을 벌이겠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방향으로 보인다.

세습

M과 J는 부부로 내가 처음 만난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필리핀 출신으로 D-1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D-1 비자는 문화예술 비자라고도 하는데 M의 페이스북 사진을 보면 그는 기타리스트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M과 J는 체류 목적과 기간을 넘겨 공장에서 오래 일했다. 부부는 한국에서 아이 둘을 낳았고, 처음 상담했을 때 아이도 함께 왔다.

10년을 넘게 한 공장에서 일했는데도 사용자는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들이 “불법”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노동력이고, 임금은 노동력의 대가인데 “불법”인 노동력이 있을까?

다행히 자신의 옹색한 ‘신념’만 내세우며 노동법에 무지한 사용자 덕에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상당한 금액이 입금됐던 날 그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부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명백한 사회적 신분인 “미등록”이 세습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부모가 미등록이면 아이도 미등록이다. 이주아동들은 공교육에 편입될 수 있지만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은 적용에서 제외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취업비자나 유학비자를 취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등록 아동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성장하게 된다. 참으로 체계적인 국가의 미등록 관리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전면 합법화하라 2004년 미등록자 단속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들 ⓒ〈노동자 연대〉

B는 베트남 출신으로 20대 초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B는 D-4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D-4 비자는 유학비자라고도 하는데 경기도 한 대학교에 유학생으로 들어왔다. D-4 비자는 근로시간이 제한돼 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해 미등록 신분이 됐다. 그에 따르면 그런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대학에서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 수업을 하는 한 강사에 따르면, 수업시간에 유학생들은 대부분 졸거나 집중을 못한다고 한다. 학비, 생활비 등을 위해 장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당국의 돈벌이와 정부의 출입국관리 때문에 젊은 학생들이 미등록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B는 서울 번화가 술집에서 1주일에 하루 쉬면서 매일 야간을 포함해 12시간을 일했는데 임금도 체불되고 연차수당도 지급받지 못했다. 사용자는 임금 체불은 인정했지만 연차수당은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근거가 B가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A와 I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건설노동자이다. 이 둘은 경기도 한 건설현장에서 타일공으로 일했다. 1개월 반을 일하고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왔다가 미등록이 된 경우다.

이들의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실제 근로시간을 입증할 자료도 없었다.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사례다. 사용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약점을 이용해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급여도 현금 지급하는 등 체불 근거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물론, 사용자에게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에 대한 과태료 등의 패널티가 있지만, 단속만 피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하는 것이다.

수갑

고용지청 진정 중에 A가 주말 심야에 전화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단속당해 ‘보호소’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눌한 한국어로 그 시간에 전화할 곳이 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그런데 ‘보호소’라고?

나는 지역 가톨릭 이주노동자센터의 긴급호출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다 단속당해 구금된 베트남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를 ‘보호소’ 안에서 접견한 일이 있었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공장에 들이닥쳐 일하는 노동자들을 공장 마당에 몰아넣어 앉혀 놓고 일일이 외국인등록증을 확인했다고 한다. 얼마나 공포스럽고 굴욕적이었을까. 이런 단속 방법은 지금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젊은 부인은 계속 울고 있었다. 범죄자도 아닌 이들의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들에게는 4살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모두 잡혀 와 바깥에서 이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보호소’라지만 보호가 아닌 감금일 뿐인 것이다.

내가 수임했던 사건 중에는 난민 신청자였다가 미등록이 된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건도 있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부에게 있어 이주노동자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출입국 통제에서 한 끗이라도 비껴나가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건을 하면 사용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걔들은 불법이라 퇴직금을 안 줘도 돼”, “걔들은 불법이라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돼” 이다. 2000년대 중반 이주노동자 집회와 행진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로 이에 답한다. 우리에게 “불법, 불법 하지 마라”.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전면 합법화돼야 한다. 야만적인 단속·추방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