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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이주노동자 대규모 재계약 탈락: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은 당장 재고용하라!

4월 15일 오후 2시 울산이주민센터에서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재계약이 거부돼 일자리를 잃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와 그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대우를 폭로하고 함께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평일 낮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관심을 표했고 여러 언론사에서 취재를 왔다. 현재 한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는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다. 현대중공업에는 원·하청 포함 5300명 넘는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나도 이주노동자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고, 주변에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인 팀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은 1년여 동안 조선 용접공으로 일한 이주노동자들(E-7-3 일반기능인력비자)의 재계약을 거부(사실상 해고)했다. 그 수가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약이 거부된 노동자들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 집담회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있었는데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들렸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현지 송출업체에 1500만~3000만 원의 돈을 지불하는데, 대출을 받아 마련한다. 이렇게 큰돈을 빚지면서도 한국에 오는 이유는 자국에서 일할 때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며 수년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현실은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E-7-3 비자 이주노동자가 하청 정주노동자보다 임금이 높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애초 E-7-3 비자 이주노동자들이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80퍼센트의 임금을 받도록 했다가, 국내 노동 경력이 3년 미만인 노동자의 경우 급여 기준을 GNI의 70퍼센트로 깎았다.

게다가 법무부는 추가로 급여의 20퍼센트를 공제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이용해 사용자 측은 이주노동자 급여에서 식사비를 떼 가고 기숙사비 5만 원 외 평균 50만 원 정도를 외국인 생활지원비 명목으로 공제해 간다(정주노동자에게는 식사가 무료로 지급되고 기숙사비 5만 원만 받는다). 사실상 최저임금 정도만 남는 것이다.

참으로 악독한 회사다.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지만 문제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와 자본이 하나가 돼 이주노동자를 어마어마하게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대출금을 갚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은 이주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며 재계약을 거부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놓고는 1년여 만에 재계약을 거부했다

사용자 측이 밝힌 재계약 거부 사유를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갑자기 기능 평가시험을 봐야 한다고 며칠 전에 말했다고 한다. 업무와 연관성이 높지 않은 시험을 연습도 제대로 못 했는데 어찌 평가가 좋을 수 있을까?

정주노동자가 비슷한 준비 기간을 거쳐 해당 시험을 봤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실제 이러한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 일터에서 기량이 높다고 평가받는 노동자가 시험에서 저평가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평가 결과에 따른 재계약 여부도 공정하지 않다. 같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누구는 재계약하고, 누구는 거부당했다. 이런 기량 평가를 어찌 신뢰할 수 있는가?

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재계약이 거부된 노동자의 일부는 울산이주민센터나 노동조합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사용자 측에 알려졌고 비 오는 날 용접 작업 거부 등 회사 관리자에게 정당한 항의를 했다고 한다. 노동조합 한 간부는 ‘괘씸죄로 재계약이 거부됐다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결국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사용자 측과 정부의 사기 행각을 잘 알고 부당하다고 느껴 불만이 꽤나 생기는 상황에서, 일부 노동자들의 재계약을 거부해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재계약이 거부된 노동자들은 어지간해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게 매우 어렵다. 한국어 실력이 꽤 있는 스리랑카 출신 찬나 씨는 급한 상황에서 구직비자인 D-10 비자로 전환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행정 절차가 까다로워서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다. 게다가 D-10 비자는 구직 활동만 가능해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다른 돈벌이 활동(알바)조차 할 수가 없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물고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미등록 노동자(“불법 체류자”)로 내몰리게 된다.

대출을 받아 한국에 와서 원금과 이자를 갚고 고국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을 강력히 규탄한다.

재계약이 거부된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현대중공업 사용자 측은 이주노동자들을 당장 재고용하라. 그리고 부당한 임금 공제를 당장 중단하라.

한편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사용자 측과 대화에 나섰지만 아직 적극 대응하고 있진 않다. 이주노동자를 재고용하라고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를 규탄하고 연대를 모으며 투쟁을 건설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나는 집담회 이후 재계약이 거부된 이주노동자를 만났다. 동료 이주노동자 집을 전전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매달 100만 원씩 대출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고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고국의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애써 웃음을 지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는 다시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조선업 불황기에 구조조정에 불안해 하면서도 애써 가족을 위해 담담하게 일했던 내국인 동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국적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다. 벼랑 끝 처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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