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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운동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개시 선언, 그 배경은 무엇인가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살육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개전 만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를 분할하고 이를 “평화”라고 부르려 한다.

2월 12일 도널드 트럼프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소득이 매우 큰 장시간의 전화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푸틴과 “협상을 즉각” 시작하기로 합의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도 “대화 내용을 전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발표와 같은 날에 미국 국방장관 피터 헤그세스는 유럽 지도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의 “압도적으로 많은” 몫을 유럽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헤그세스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2014년 이전으로 수복하는 것이 “비현실적 목표”이자 “전쟁을 장기화할 뿐인 … 신기루같은 목표”라고 했다.

헤그세스는 “확고한 안보 보장책이 있어야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실현 가능한 결과라고 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이자 그 위기를 증폭시킨다.

언뜻 보기에 트럼프의 역겨운 가자지구 인종청소 계획과 이러한 행보는 서로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둘 다 미국의 세계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같은 전략에서 비롯한 것이다.

대(對)우크라이나 정책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은 해방이나 자결권을 위한 전쟁이 아니고, 2022년 2월에 러시아의 잔혹한 침공 때문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연락한 것을 두고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을 저버렸다고 비난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1990년대 이래로 미국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 사이에서는 대리전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 전 대통령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 제국주의가 중동에서 겪은 패배를 만회할 기회로 여겼다. 바이든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더 중요하게는 미국의 핵심 경쟁국인 중국에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

바이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기업주들을 백악관에 모아 놓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될 것이고 미국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

이는 미국 외교 정책 서클들의 장기적 야심에 부합했다. 트럼프 1기 정부 때인 2018~2020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장회의(NSC)에서 고위직을 지낸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은 퇴임 후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개입해야 한다고 줄곧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11월에 빈드먼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주는 전략적 가치는 ... 대러·대중 경쟁을 위한 미국 등 유로-대서양권의 염원을 실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바이든 정부도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유럽과 유로-대서양권 염원을 실현”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은 “확전 수위를 관리하며 러시아의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이는 러시아군을 묶어둘 만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되 더 큰 충돌은 피하는 것을 뜻했다.

그 결과 2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제국주의 야심을 위한 살육의 장으로 남아 있고 승리는 요원하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 변화의 둘째 요인은 미국의 “헤게모니”, 즉 세계를 지배하고 동맹국들에 미국의 지도를 관철시킬 역량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서 트럼프는 “나홀로 가는” 전략을 더 추구하는 편이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구축했다. 여기에는 언제나 경제적 차원과 군사적 차원이 모두 있었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를 이용해 경쟁국·동맹국·약소국에 미국의 힘을 투사할 수 있었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 덕에 미국은 달러 통화량을 통제하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무역 협상을 맺을 수 있었다. 1970년대에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뒤에도 미국은 IMF와 달러의 지위를 이용해 타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력은 군사력으로, 즉 전쟁 동맹 나토와 세계 도처에 깔린 미군 기지로 뒷받침됐다.

1991년 냉전이 종식되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만사가 미국에게 잘 풀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세계적 경쟁 체제다. 얼마 전 죽은 노회한 전범 헨리 키신저는 미국이 전례 없는 규모의 경제적 경쟁, 특히 중국이 제기하는 경제적 경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대의 ‘테러와의 전쟁’은 군사력으로 미국의 헤게모니를 각인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경쟁국들은 그들도 자기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게 됐다고 여겼다.

이와 더불어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메리트(UAE) 같은 국가들이 석유 생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을 다각화하며 더 중요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로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과 지역 수준의 제국주의, 즉 “아(亞)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첨예해지고 있다.

2018년경부터 미국은 “강대국 간 경쟁”을 자신이 직면한 주요 도전으로 여겨 왔다.

대외 정책 면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는 연속성이 크다. 둘 모두 이런 도전들로부터 미국의 패권을 지키려 한다.

트럼프는 핵심 위협인 중국에 역량을 집중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보는 손실을 끊고 싶어한다.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질질 끄는 충돌에 돈을 대고 있다.

“그 충돌로 우크라이나는 점점 더 파괴되고 영토를 더 많이 잃고 있다.”

더 큰 그림을 보면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훨씬 “나홀로 가는” 전략을 선호한다. 즉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역량을 축내고 있다고 여기고, 그들이 미국에 덜 의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트럼프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안보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더 광범한 미국 대외 정책의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언뜻 변덕스러워 보이는 트럼프의 각종 발표들의 근저에는 어떤 방법론이 있다.

최근에 루비오는 여러 “강대국들”이 군웅할거하는 세계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대처법을 설명했다. 루비오는 미국이 세계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의 기구들을 이용해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루비오는 여러 동맹국과 맺는 “다자 협정”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과 맺는 양자 협정에 더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루비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중국이든 러시아든 각자가 각자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식으로 돌아갔다. 미국도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만나면 파트너십과 동맹을 맺고, 이해관계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외교를 통해 충돌을 예방하면서도 각자의 국익을 증진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냉전 종식 후 실종됐다. 우리 미국이 세계 유일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많은 경우 세계 정부가 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모종의 책무를 맡게 됐다.

“세계에 초강대국이 하나뿐인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례적인 것이고 냉전 종식의 산물이다.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다극화된 세계, 즉 세계 곳곳에 다수의 강대국이 있는 상황으로 회귀하게 될 터였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또 어느 정도는 러시아에 맞서고 있고, 동시에 이란·북한 같은 불량 국가도 상대하고 있다.”

루비오가 말한 미국의 변화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예컨대 중동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미국 제국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심화시킨다.

미국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동맹들에 크게 의존해 왔고, 이러한 지배의 네트워크는 쉽사리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동에서 트럼프는 가자지구 인종청소 계획으로 동맹국 이집트·요르단을 임계점까지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랍 우방들이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의 품에 안기는 상황은 미국에 이롭지 않다.

트럼프는 미국의 힘을 지렛대 삼아 우방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동맹국들이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고 미국의 압력에 순순히 따르는 것 말이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구상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기업주들의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유럽연합 외교관들은 협상에서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트럼프 정부에 로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외교관들은 충돌 종식 이후 우크라이나 국가가 유럽연합의 안보 구상에서 핵심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럽 정부들은 비용, 무기, 현지 평화유지군에 관한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하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서방 관리는 트럼프의 발표에 이렇게 반응했다. ‘무슨 합의든 간에 어떻게 유럽 없이 집행할 것인가? 돈과 사람을 대는 것은 결국 유럽일 것이다.’”

반전 운동이 “러시아군 철수, 나토 반대”를 외친 것은 옳았다.

제국주의 전쟁과 그것을 낳는 체제에 맞선 투쟁에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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