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친푸틴”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푸틴과 거래하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구독
도널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비용 “상환” 협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갈취할 수 있게 하는 협상안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광물 자원 일부에서 나오는 수익을 미국에 넘기기로 합의해 줬다고 미국 관리들과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전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합의의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합의는 지난주 언론에 유출된 트럼프의 갈취 계획을 조금 누그러뜨린 것이다.
유출된 계획에서 미국은 공동 투자 기금에 5000억 달러를 투입하라고 우크라이나에 요구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자원 수익의 50퍼센트와, “향후 제3자에게 부여되는 모든 신규 채굴권”의 경제적 가치의 50퍼센트를 차지할 터였다.
유출된 계획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이번 합의가 “기본 틀”에 가깝다면서 “추가 협상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관한 문구가 포함되기를 바랐다. 이번 합의안에는 그런 문구가 포함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상은 미국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미국 제국주의의 대리전임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제 젤렌스키는 두 경쟁 제국주의 중 어느 한 편에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주류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친러시아”라거나 “친푸틴”이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이전에도 서방 지도자들은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푸틴과 얼마든지 거래한 바 있다.
1999~2000년에 러시아는 러시아에서 분리·독립한 체첸 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 미사일과 폭탄, 포탄을 쏟아부었다. 푸틴은 체첸에 본때를 보이고, 러시아가 여전히 러시아 주변 지역의 맹주임을 주변국들에게 각인시키려 했다.
당시 유럽 정치인들은 체첸에 무기를 지원하라고 아우성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의 총리 토니 블레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푸틴이 “테러리즘”에 맞서고 있다고 칭송했다. 그로즈니가 연기에 휩싸여 있을 때 블레어와 푸틴은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관람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메들린 올브라이트는 푸틴을 두고 “단도직입적 접근법”을 취하는 “해결사 애국자”라고 칭찬했다.
당시 서방은 왜 푸틴을 지지했는가? 1990년대에 미국은 세계 유일의 군사 초강대국이 됐지만, 잠재적 경쟁자의 등장을 반드시 차단하려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약소국들을 상대로 일련의 전쟁을 일으켜 자국의 힘을 세계에 각인시키려 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주변국들, 즉 옛 소련 가맹국들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체첸의 저항이 승리하면 미국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과 대결하는 다른 운동을 고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미국은 푸틴의 체첸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지배계급의 일부는 러시아가 새로운 세계 질서에 고분고분 따르는 파트너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동시에 미국은 러시아의 다른 주변국들을 자국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일례로 미국은 1997년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위한 조지아·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몰도바 기구’를 설립했다. 그 기구는 나토 확대를 위한 간판이었다.
옛 소련 가맹국들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경쟁은 심화됐다. 이는 그저 “정책적 오판” 때문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즉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제 경쟁 시스템의 역학에서 비롯한 것이다.
러시아는 체첸 전쟁에서 승리하고 유가가 오른 덕분에 2000년대부터 위세를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동유럽으로 나토를 확장하려 했고 유럽연합도 옛 소련 가맹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러시아와 다퉜다.
우크라이나 지배자들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줄타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국가는 서방에게서든 러시아에게서든 구제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누구와 손을 잡든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돈을 원한다면 우리 클럽에만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기울 듯하자 러시아가 개입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서 일어난 분리주의 반란을 지원했다.
민스크 협정으로 알려진 “평화 협상”으로 갈등은 2015년에 동결됐다.
이후에도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경제적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트럼프 정부 1기 때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권으로 더 가까이 끌어들이려고 군사 지원을 늘렸다.
2021년이 되자 러시아 지배자들은 그 줄다리기에서 경제적 우위에 있는 서방을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판단하고는 무자비하게 군사력을 행사하기로 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참상은 두 약탈자들의 경쟁에서 비롯한 것이다. 두 약탈자들은 그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한때의 협력은 금세 갈등으로 바뀔 수 있다.
현재 트럼프가 푸틴과 기꺼이 협상하려 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핵심 경쟁국인 중국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협상을 통해 러시아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더 멀어지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좌파에게 주는 교훈은 자국 정부나, 어느 한 제국주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