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부통령 밴스의 연설로 드러난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대(對)유럽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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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트럼프 정부가 ‘홍수 전략’(수많은 제안으로 상대의 어안을 벙벙하게 하기)의 표적을 유럽으로 옮겼다.
먼저,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트럼프의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2014년 이전으로 돌리는 것은 “공상적인 목표”이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협상의] 현실성 있는 합의사항”이 못 된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이번 주부터 우크라이나 측 대표나 유럽 측 대표 없이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유럽 정부들의 패닉과 굴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준 것은 지난주 금요일 뮌헨 안보 회의에서 미국 부통령 J D 밴스가 한 연설이다.
밴스는 연설에서 유럽을 문젯거리로 지목하여, 주로 유럽 인사들로 이뤄진 청중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럽에 관한 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러시아나 중국, 또는 다른 어떤 외부 세력이 아닙니다. 저는 내부에서 오는 위협을 가장 우려합니다.”
이어서 밴스는 표현의 자유 제약에 관한 극우의 흔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에 가해지는 최대 공격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탄압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데, 미국에서도 같은 탄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의 다른 행보들과 함께 밴스의 연설은 뮌헨에 모인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들에게 굴욕을 안겨 줬다.
유럽연합은 “규범권력”을 즐겨 자처해 왔다. 유럽연합은 그들의 우월하다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관해 나머지 세계에 설교하지만, 약소국들을 경제력으로 압박하고 굴복시켜 왔다.
뮌헨 안보 회의 의장을 맡은 독일 외교관 크리스토프 호이스겐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머금었다. 그가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을 가여워 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있던가?
진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의 이중 의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안보를 의존하고 러시아에는 가스를 의존하던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제공한 것은 주로 미국이었다. 그러나 서방[미국과 유럽 — 역자]의 지원은 우크라이나 쪽으로 전세를 기울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푸틴과 협상을 한다는 트럼프의 결정은 비교적 합리적인 대응이다. 이는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교착 상태에 있던 한국 전쟁의 휴전을 추진한 것과 비슷하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중국에 맞서자고 요란하게 법석을 떨어서 군사적 취약성을 만회하려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그런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제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토사구팽 신세가 됐다. 종전 이후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재건 비용을 대는 구실을 할 것이다.
밴스의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유럽 극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지지를 확인시켜 줬다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하는 것은 일론 머스크만이 아니다. 밴스는 레임덕에 빠진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를 만나기를 거부하고 AfD 지도자인 알리스 바이델을 만났다.
숄츠와 중도우파인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밴스의 행보를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입김에 두려움을 느끼는 유럽 지도자들은 그 둘만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파시스트인 프랑스의 마린 르펜은 2027년 대선에 다시 도전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 정치를 재편하기를 바랄지언정 유럽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전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은 “유럽이 대서양 양안의 가치 기반 협력과 지지에 더는 의지할 수 없게 됐다”고 엑스(옛 트위터)에서 한탄했다. 글쎄, 나토가 추구한 “가치”에는 냉전 시절 파시스트 치하의 포르투갈, 군사 독재하의 그리스와 터키도 얼마든지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됐다.
미군의 유럽 주둔은 결코 “가치”를 위한 것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지의 하나인 유럽이 경쟁 강대국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나토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불한당 같은 유럽 지도자들이 한 수 위의 불한당에게 겁박받는 것을 조금치도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