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민중전선 전략의 모순이 적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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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앞두고 윤석열이 법원과 검찰의 도움으로 석방됐다.(민주당은 왜 법원 비판은 안 하는가?)
순식간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윤석열 파면 가능성이 좀 더 우세해 보였는데, 이제 완전한 안갯속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환영했던 것은, 윤석열이 구속 상태에서 헌재 심판과 내란죄 재판을 받느냐 아니냐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그동안 극우 거리 시위를 활용해 법원과 헌재를 압박하고, 내각을 포함한 국가기관들이 윤석열에 불리한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등 집요하게 공세를 펴 왔다.
극우 거리 시위는 현직 대통령과 여당의 공개적인 지원을 받으며 사기가 올랐을 뿐 아니라, 그 극단성을 뿜어내며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기회로 삼고 있다. 그들은 연일 “헌재를 쓸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삼일절 전국 집중 집회에 수십만 명을 동원해 한껏 세를 과시했다.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권’의 일부인 최상목 권한대행 내각은 여야 갈등을 이유로 내란죄 특검, 마은혁 재판관 임명 등을 계속 거부해 왔다.
검·경 등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교묘히 수사를 방해해 왔다. 좌우 거리 시위에 대한 경찰의 태도도 우파에 유리하고 진보파들에게는 적대적으로 변해 왔다.
결국 우파 동원과 결집이 탄핵 반대, 정권 교체 반대 여론을 만만찮게 형성하고, 윤석열이 탄핵심판 직전 석방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트럼프와 한국의 기업인들은 이런 우파 결집을 이용해, 행여 윤석열의 몰락이 자신들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상황 관리에 치중해 왔다.
윤석열이 군사 쿠데타 미수로까지 간 원인 일부는 강경 신자유주의와 노골적 친미·친일 노선에 대중이 반발하고 정치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한국 기업인들은 비록 군사 쿠데타라는 방법에는 놀랐을지라도 윤석열이 성취하려던 목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퇴진에 대한 동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 반대한다고 밝히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민중전선 — 막다른 골목
반면, 윤석열 반대 운동은 우파만큼 동원과 기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권 퇴진 운동을 만들려 하지 않고 합헌·합법적 수단에 집착하며, 극우에 대항한 최대 동원을 회피해 온 결과다.
물론 민주당은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리자마자 긴급 의원총회를 하루 사이 두 차례나 열고 의원 비상 대기(국회를 떠나지 않기)를 시키며 투쟁 태세에 나섰다.
그러나 내란죄 특검을 두 차례나 거부하고, 헌재의 위헌 결정도 무시하며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있는 대통령권한대행 최상목에 대해서는 구시렁구시렁 불평만 해 왔다.
수십 년 기획재정부에서 핵심 관료로 자리잡아 와, 미국과 재계가 모두 그를 내버려두길 원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려고 북한 당국을 접촉하려 하고 심지어 선제 공격으로 국지전을 일으키려 했다는 진술이 나왔는데도 군부가 집단으로 반발하자 외환죄 수사 얘기는 아예 쏙 들어갔다.
민주당은 차기 정권을 잡아도 이럭저럭 국정을 운영하려면 미국, 재계, 고위 국가 관료, 군부의 묵인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쿠데타를 좌절시키는 데 일조하고, 윤석열 국회 탄핵안 가결에 앞장서며 탄핵소추 촉구 집회에 대중 동원을 하면서도, 쿠데타 세력 척결을 목표로 삼기는커녕 국정 안정을 위한 여야정 협력을 말했다. 이는 윤석열 개별 탄핵(파면), 즉 윤석열 하나만 제거해 조기 대선을 치르는 데 치중하는 것이었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입증해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우클릭’은 우파의 사기를 올려 줄 뿐이다. 우파는 민주당의 우클릭을 보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고 압박이 통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군사 쿠데타를 기도한 것은 지배계급의 의제를 추진하다가 대중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계급도 윤석열 소생시키기에 큰 열의가 없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쿠데타 세력 타도를 하려면 노동자들이 진정한 총파업 등 계급적 방식을 동원하는 등 더 효과적인 대중 행동으로 사용자들과 국가기관들에 타격을 가하며 압박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 탄핵안 가결 직전, 직접 나서 철도 파업을 끝내도록 종용했다. 그때는 그 행동의 난점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대규모 거리 집회를 주최해 온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민주당이 고수하는 투쟁 수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추수주의를 정당화한 것은 윤석열 탄핵이 기정사실이라는 소박한 낙관이었다.
노무현, 박근혜 탄핵심판 결과가 모두 대중의 친민주주의 염원에 부합했다는 경험에 더해 이번에는 내란죄 혐의이기 때문에 빼박 파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로 가차없는 자들이 박근혜 때처럼 순순히 물러설 거라고 여기는 게 오히려 순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권’이 대중 동원까지 해 가며 조직적으로 탄핵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비상행동의 주축인 참여연대, 진보당, 민주노총 지도부 등 주요 좌파 세력들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통해 선거로 정권을 바꾸고 연립정부를 세우고 그후 개혁 공조를 통해 개혁을 얻어내겠다는 전략은 민중전선이다.
이 전략의 당장의 난점은 민주당의 집권(조기 대선)에 불리할 만한 일(지배계급이 놀라거나 민주당 집권에 결사 반대할 만한 일)을 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회피하다가 윤석열 석방으로 세력균형이 급변하는 듯하자 비상행동은 긴급 투쟁 계획을 내놓고 지도부 단식 농성 등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 파업 등 질적인 투쟁 수위 제고 방법이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3월 10일, 단식 중인 비상행동 지도부, 야 5당 원탁회의(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정의당은 공동 합의를 이뤘다. 내란 세력 종식과 재집권 저지, 사회대개혁을 위해 함께 연대한다는 내용이다. 민중전선 전략의 모순이 낳은 위기를 민중전선 확대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 국면은 그런 전략의 모순이 야기한 것이다. 반윤석열 최대 결집을 이룬 듯하지만, 실제로는 윤석열 일당을 타도할 힘은 여전히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 파괴와 극우 반동을 막기 위해 파업 등 우리 편이 가진 강점(특히, 노동계급의 경제적 힘)을 현실화시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