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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후 공산당의 배신》(이언 버철):
민중전선이 노동계급을 패배로 이끈 국제적 경험의 일반화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1000만 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이 벌어져 권위주의적 대통령 드골이 헬기를 타고 나라를 떠나야 했다. 드골을 충분히 권좌에서 밀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투쟁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을 지역과 공장에서 조직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은 “사태가 시작될 때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동원에 반대했다.” 오히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에 대한 장악력을 이용해 파업 노동자들이 다시금 일터로 복귀하도록 종용하며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신했다. 크나큰 잠재력을 가졌던 운동은 몇몇 경제적 양보만 얻어 내고 드골이 권력을 재확립하는 것으로 끝났다.

《전후 공산당의 배신》 이언 버철 지음, 책갈피, 424쪽, 20,000원

이 책은 프랑스 공산당의 배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1973년경에 쓰였다. 그러나 이런 배신을 이 시기 프랑스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런 배신을 낳게 한,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공산당들이 겪은 변화의 흐름을 살펴본다. 한때 혁명적 정당이었던 공산당들이 점점 더 전통적인 개혁주의 정당(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닮아 갔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이 책은 “1934년 시작된 민중전선 전략은 국제 공산당 운동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였다고 지적한다. 민중전선 전략은 공산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공동 정부 수립을 위해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핵심적으로 강조한 것에서 크게 이탈한 것이다.

이런 이탈을 주도한 것은 소련과 코민테른이었는데, 이들은 더는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아니었다. 소련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변질됐고, 코민테른은 소련의 외교정책 도구로 전락했다.

민중전선 전략은 처음에는 파시즘에 맞서는 특수한 전술로 채택됐지만, 1950년대 중엽부터는 전 세계 공산당들의 장기 전략이 됐다. 민중전선 전략에 따라 각국 공산당은 이미 1930년대부터 “인터내셔널의 지부가 아니라 해당 나라의 독자적 정당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각국 공산당 안에서는 소위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거리를 두고, 자국 정치 질서를 존중하는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온건성을 입증하자는 압력이 점차 커졌다. 사회주의 우방국이라던 중국과 소련이 서로 무력 충돌까지 벌이고, 소련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 요구 운동(‘프라하의 봄’)을 탱크로 짓밟자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됐다.

각국 공산당은 소련에서 멀어졌지만, 그 변화는 결코 혁명적 정치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급 연합을 추구하는 민중전선 전략을 계속 좇으면서, 정부 참여 기회를 얻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제하는 구실을 했다.

서두에 소개한 1968년 5월 프랑스 공산당의 행보는 그 전형이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장기 전망은 다시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었으니, 중간계급에게 자신들이 ‘책임감’ 있고 ‘온건’하다는 확신을 주려 했다. 이는 드골이 [운동의 섟을 죽이기 위해] 제안한 선거를 받아들여 합법성을 절대로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뜻이었다. … 이번에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미래에 성공할 기회가 날아가 오래도록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지한 혁명적 투사들의 정당이었던 공산당이 이처럼 개혁주의 정당으로 바뀌어 온 궤적을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를 무대로 살핀다.

동유럽에서는 집권당이었던 공산당들이 서구 지배자들과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반란에 직면했다. 동베를린,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벌어진 반란과 그것이 다른 나라 공산당들에 끼친 영향을 혁명적 좌파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소련과 다른 길을 보여 주는 듯했던 유고슬라비아, 중국, 쿠바 공산당이 왜 진정한 대안이 못 되는지 분석하는 내용도 중요하다. 그 공산당들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특히 오늘날의 제국주의 갈등에서 진영론에 빠지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러시아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으로 피흘리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한국전쟁 분석에서도 깊은 울림을 받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미국과 소련이었[다.] … 한국전쟁은 1965년에 시작한 베트남 전쟁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 베트남인들은 전쟁의 주인공이었던 반면, 한반도 주민들은 전쟁의 피해자였다.”

끝으로 이 책은 또한 국제적 경험에 비춰 국내 주류 스탈린주의 세력인 반미 자주파 경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들은 과거보단 세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현재 노동운동 내 조직된 세력으로서는 가장 크다.

반미 자주파 경향의 활동가들 역시, (집권당이 아니었던) 각국 공산당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천대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대의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이들이다. 또한 이들은, 한때 공공연하게 한국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했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반미 자주파 경향은 민중전선(국내에서는 “인민전선”, “통일전선”이라고도 불린다) 전략을 한결같이 추구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해외 공산당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진보당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공산당의 진화 과정이 꽤나 진척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민중전선이 노동계급을 패배로 이끈 국제적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다. 물론 역사는 단순히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과거의 독특한 과정들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독특한 과정들에 대처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이 책의 분석을 1990년으로까지 확장한 논문 ‘서방 공산당의 궤적 — 스탈린주의에서 유러코뮤니즘으로’(《마르크스21》 4호(2009년 겨울))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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