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우클릭에 담긴 모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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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이하 이재명)는 개혁 염원 지지자들과 ‘중도층’(실은 보수 유권자) 모두를 잡고 싶어한다.
2월 10일 국회 연설에서 이재명은 “내란 세력과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면서도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노동시간 유연화를 하자면서도 총노동시간은 줄이자고 했다. 경제 성장이 우선이고 국민연금을 서둘러 ‘개혁’하자면서도 국가가 기본적 복지를 제공하는 기본사회론을 유지했다.
이재명은 국민의힘이 극우화하는 상황이 오히려 중도층을 포섭하고, 자신이야말로 정치를 안정시킬 적임자임을 지배계급에게 보여 줄 기회라고 보는 듯하다.
2월 10일 이재명은 “헌정 수호 연대”를 제안했다. 극우의 민주공화정 공격에 맞서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뿐 아니라 보수 정당인 개혁신당까지도 연합하자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묵인과 안정 지향형 중도의 지지를 구하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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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13일 친문계에게도 “헌정 수호 대연대”를 하자며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 최근 친문계는 민주당이 더 ‘중도적’으로 가야 한다며 당내 투쟁을 개시했다.
물론 이재명은 윤석열 탄핵 집회 적극 참가를 계속 호소하고, 국회 연설 다음 날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 나와 비상계엄 선포 때 국회로 달려와 준 사람들과 그 뒤 국회의 탄핵안 가결 때까지 국회를 지킨다며 노숙했던 청년들과 ‘응원봉’들에게 재차 감사를 표했다.
노동자 등 서민 지지층과 진보 성향 지지층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특별법과 관련된 민주당의 노동시간 유연화 타협안에 우파는 사기가 올랐고,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공식 지지해 온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등은 반발했다.
이런 갈지자 행보는 이재명의 오래된 화전양면 작전에서 비롯한 것인데, 쿠데타 반대, 윤석열 반대, 극우 반대로 모인 운동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반영하지 못한다.
갈지자
국가기관들과 고위 관료들 중 어디까지 쿠데타에 연루돼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보수까지 포함하는 민주공화정 수호 연대론은 적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한다.
개혁신당 이준석은 윤석열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고, 우파적 차별·혐오 정치의 선도자다.
극우의 서부지법 폭동은 당연히 비난받고 엄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찰·검찰을 우리 편으로 봐서는 안 된다. 경찰은 2월 15일 광주에서 극우인 세이브코리아 측에게 금남로를 집회 장소로 내줬다.
따라서 윤석열과 그 측근만 핀셋으로 제거해 기성 정치체제를 안정화시키자는 타협 추구는 목표와 방법 면에서 운동에 자기제한성을 강요하는 것이다.
지금 개혁신당이 참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야5당(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의 원탁회의가 출범 협상 중이다.
조국혁신당은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을 동시에 내걸자고 하고, 민주당은 개혁신당을 끌어들이려고 내란 종식만 걸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2월 16일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내란 종식에 집중해 신속하게 최대 연합을 출범시키자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배계급에 좀 더 타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민주당을 편든 것이다.
절충을 통해 원탁회의가 출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걸든 이런 민중전선은 노동계급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투쟁은 자제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지배계급 속이기
이재명은 “우클릭을 집권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해 달라,” “집권을 해야 쿠데타 세력 청산과 개혁 추진이 가능하다”며 개혁 염원 지지층을 달랜다. 집권을 위해 지배계급을 기만하는 것이니 잠시 좀 참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을 기만하겠다는 책략은 지배계급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고, 서민 지지층에는 혼란을 조장하고 사기 저하를 낳는다.
당장 우파 언론들은 이재명 대표의 국회 연설에 대해, 우클릭에 일관성이 없다거나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거나, 이율배반이라는 식의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의 “잘사니즘”을 “뻥사니즘”이자 “위장 우클릭”이라고 비난했다. 우클릭의 진정성을 보이라고 오히려 더 압박하는 것이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 계급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강압 수단(경찰·군대·감옥 등)과 동의 수단(정당·교육기관·언론 등)을 통해 사람들이 기성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려고 나날이 투쟁한다.
트로츠키가 지적했듯이, 이런 일을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지속해 왔고, 국제적으로도 그런 경험을 공유하는 지배계급의 계급 본능은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 대중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다.
그래서 대기업주, 국가 관료, 군부 고위층은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에 적극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실패해 내란죄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도 쿠데타 기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반면, 지배계급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그런 책략을 써서라도 집권을 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는 전략은 오히려 목적 달성을 위해 스스로 우경화한다.
지금 최상목이 노골적으로 윤석열 세력 처단을 방해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그를 날릴 태세가 전혀 아니다. 미국과 재계·관료들이 최상목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김용현의 위험천만한 전쟁 유도 행위 수사 요구도 쏙 들어갔다. 군부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사기와 계급 의식을 갉아먹고 대중 운동을 부차화·수동화시키며, 운동의 열성 지지자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로 취급하고 정치적으로 소외시키기 십상이다.
이는 저항의 기세를 약해지게 만든다. 중도가 반발할 만한 일은 피하라는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좌우 극단을 배제하는 것이다.
윤석열과 국힘의 지원 속에서 극우가 주류화·세력화하고 있는데도, 윤석열 퇴진 운동이 극우와의 맞대결을 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이 극우화하는데, 윤석열 반대 운동은 극우와 맞서지 않겠다는 건 한 손을 묶고 싸우는 격이다.
이는 대중이 극우 반동에 맞설 행위 주체로 자리잡기 어렵게 만든다.
한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의 온건한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민주당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운동을 자기제한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운동의 기세를 약화시키는 일이다.
대중의 자주적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가능성이 지금 좀 더 높기는 해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태세로 보면, 헌재에서 윤석열 탄핵이 인용돼도 윤석열·여당·극우 진영이 (각자 강도는 달라도) 이를 순순히 승복할 것 같지 않다.
윤석열 1차 체포영장 집행 때 수만 명이 집결했던 극우는 그날 영장 집행을 막아내면서 자신감과 교훈을 얻었다. 그것이 서부지법 폭동, 국가인권위 점거 난동으로 이어졌다. 더 많은 일상 공간에 극우의 진지를 마련하려고 한다.
설사 이재명이 집권해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개혁 정부가 개혁을 배신하고 우익은 그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으며 상황이 문재인 임기 말경처럼 다시 나빠질 수 있다.
대중이 대거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진정한 개혁을 지키거나 새롭게 쟁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두 달간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윤석열을 정치적 궁지로 몬 진정한 힘은 대중 행동에서 나왔다. 그런 행동에 담긴 변화의 열망은 단지 쿠데타 이전, 윤석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전혀 만족할 수 없다.
윤석열 반대 운동은 민주당으로부터 (함께 싸우더라도)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특히, 계급적 행동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단호하고 대담하게 극우와 대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