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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중도·보수” 선언은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도 타협을 거듭할 것임을 미리 보여 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이하 이재명)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라고 밝힌 것은 기회주의가 선을 넘은 것이다.

국민의힘(이하 국힘)이 순식간에 극우화하면서 중도층(실은 보수적 유권자 층)에 여백이 생기자 이를 외연 확장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배계급의 이재명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SNS에 “국민의힘이 버리고 떠난 보수의 책임을 민주당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이 이런 셈법을 할 수 있는 것은 좌파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대중 지지를 많이 잃어 존재감이 크게 약화됐고,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을 지지하고 있다.

이재명은 21일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를 만나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민주노총 방문 때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도 직접 청취했다.

그러는 한편, 이재명은 지배계급에게 자신이 경제·안보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 안정의 적임자임을 보이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재명의 중도·보수 선언은 새삼스러울 뿐이다.

이재명은 지배계급에게 그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신자유주의, 친제국주의

이재명은 2월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살림을 하는 정당이 오로지 진보, 오로지 보수 이렇게 해서 어떻게 국정을 하느냐. 예를 들면 국정 운영할 때도 안보·경제 영역은 보수적 인사들이 보수적 정책으로, 사회·문화 영역은 진보적 인사들이 진보적으로 집행하면 된다.”

이는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제3의 길, 이른바 ‘사회적 자유주의’로 불렸던 노선을 연상시킨다. 이 정당들은 전쟁이나 신자유주의 문제에서는 우파와 별 차이 없이 굴면서, 차별 문제에서는 진보적 외양을 띠려고 했다.

사실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정책 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이미 지난해에 그런 노선을 정리한 바 있다. 민주연구원이 발표한 ‘민주당의 역사와 정치철학’은 민주당이 중도·보수로 출발했고, 그 역사 내내 중도에 기반을 두고 때에 따라 진보 정책과 보수 정책을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당 최고위원회 발언은 “예를 들어”라고 표현됐지만, 사실상 친기업·친성장 노선과 한미동맹 우선 노선 추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배계급의 경계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것이 선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유신 잔당” 김종필, 박태준 등과 연합해 지배계급 일부의 지지도 받은 것이 승리에 도움이 됐다.

1997년 IMF 경제 공황 직후 수십 년 일당 독재에 대한 환멸 때문에 대중의 절대 다수가 김대중에게 투표한 선거에서 김대중은 우클릭을 했던 것이다.

김대중은 집권하자마자 쿠데타 주범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하고 경제 정책을 김종필계에게 맡기고 정리해고·파견제를 도입하는 노동 개악을 추진했다.

윤석열이 쿠데타를 기도한 것은 강경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골적인 친미·친일 노선(특히 한미일 군사 동맹 추구)이 대중의 반감을 사서 정치 위기가 급격히 심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장차 민주당 정부의 노선이 큰 틀에서 윤석열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면, 윤석열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왜 목숨 걸고 계엄군에 맞섰나, 왜 엄동설한에 거리를 지키며 윤석열 구속·탄핵을 위해 싸웠나’ 하고 회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되면, 임기 초부터 정권 흔들기에 나설 우익은 다시 사기가 오르고, 대중의 실망감을 이용해 부활 기회를 잡으려 집요하게 반격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에도 이런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강조했듯이, 역사는 똑같은 일이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배신은 극우가 청년들 일부를 포섭하는 기회가 됐다.

개딸들과 진보당

중도·보수 정당 선언은 이재명이 지금 빈 중원을 차지하러 대부대를 이끌고 공격적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포장된다.

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집권을 위해 실용주의적 책략, 지배계급 기만 책략을 벌이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지는 지배계급을 기만하려는 책략은 결코 통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우경화로 끌고 간다고 논평했다(👉이재명의 우클릭에 담긴 모순들).

이미 신년 기자회견 때 이재명은 성장이 우선이라며 우클릭을 본격화했지만, 국힘이나 조중동은 더더욱 우클릭의 진정성을 요구해 왔다. 쉽게 속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이재명은 이제 중도·보수 정당 선언을 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일은 국힘의 성장 우선론, 한미동맹 중시론 등을 민주당이 이어가게 되면서 정치 지형이 오른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다.

그동안 이재명에게 보수적 압력을 넣어 온 비명계(친문계 포함)는 이재명의 중도·보수 정당 선언을 비난한다. 하지만 전 경남도지사 김경수는 중도·보수 정당 선언이 정체성이 아니라 대선 전략의 문제라며 비판을 철회하고 지지를 나타냈다.

당 내에서는 윤석열의 계엄에 반대했던 우파 인사들과의 연합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지금 이재명 지지층 사이에서 우클릭에 항의하는 소수 의견은 반향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아직은 이재명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동안 왜 그토록 ‘수박’을 미워해 온 것인가?

한편, 민주당이 지배계급의 환심을 사려 하면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까지 염두에 두고 내란 종식 원탁회의에 참여한 진보당의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고 있다.

김재연 진보당 대표는 민주당이 진보였던 적이 없다고 옳게 지적했다. 그러나 김재연 대표는 민주당은 중도·보수의 길을 가고 진보당은 진보를 대표하는 길을 걸으면 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중도·보수 선언에도 불구하고, 진보당은 민주당과 연합하고, 그 연합 안에서 진보당이 진보좌파를 담당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싶다고 말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할 일 하고 우리는 우리 할 일 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1+1=2라는 식으로, 계급투쟁 역학에 무지함을 반영한다.

집권 후 개혁을 위해 참고 지켜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정한 개혁 동력이 대중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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