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노동자를 위한 한국경제론》 나원준 지음, 진보정책연구원:
수탈론과 계급 협력주의의 난점을 드러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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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나원준 교수(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과)가 최근 《노동자를 위한 한국경제론》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나 교수가 올해 6월 진보당 산하 진보정책연구원이 주관한 ‘노동자를 위한 한국경제론’ 세미나에서 강의한 결과물로 나온 책이다. 강연 원고를 책으로 만든 덕분인지 이 책은 아주 쉽게 읽힌다.
책 곳곳에서 통찰력 있는 지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로 국가의 기능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바뀌었다는 지적(48~49쪽), 한국이 이제 자본 수출을 하므로 ‘아제국주의’가 됐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88~89쪽), 경제 민주주의 논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신자유주의를 주로 비판하는 쪽과 재벌 체제를 주로 비판하는 쪽 모두 “한국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특정한 양상”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오직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관점에 설 때에만 그런 혼동이 사라진다”는 지적(139쪽)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경제 종속’과 ‘수탈’에 관해 좀 더 엄밀하게 규정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한미 무역 협상에서 수탈론 등을 제기했던 만큼 이는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펴는 경제 종속 주장도 모호함과 혼란이 여전하다.
미국은 슈퍼 제국주의?
나 교수는 경제 종속을 규정하는 게 매우 까다롭다는 점을 인정한다. 여러 국가 경제들의 상호 연관성을 종속과 혼동하면 안 된다는 올바른 지적을 한다. 네덜란드 경제의 대외 개방성이 매우 높다고 해서, 네덜란드가 독일이나 프랑스에게 종속돼 있다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서 나 교수는 종속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는데, 바로 “상호 의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문제”(185쪽)라고 한다. 그러나 나 교수의 새로운 기준인 “권력 관계”도 매우 모호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혼란을 자아낸다.
나 교수는 “권력 관계”의 사례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든다. 이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정작 세계 자금은 다른 국가들에서 빠져 나와 미국으로 향하는 일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엔화나 유로화보다도 미국 달러화가 더 안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통화들 사이의 이런 위계가 바로 “권력 관계”이며, 미국은 국제 화폐의 위계를 이용해 경제적 종속을 확립하고 유지한다고 주장한다(185~187쪽). 그런데 국제 화폐 위계에서 달러화가 정점에 있고 유로화나 엔화조차 달러화 밑에 있으니, 유럽·일본조차 미국에 종속돼 있고 미국만 유일하게 제국주의 국가라는 추론이 나온다.
비슷하게 나 교수는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미국의 패권 유지 정책이라는 점을 불비례적으로 강조한다.
나 교수가 말한 금융화란 “대규모 달러 자금이 국제적으로 재순환되어 미국 내로 유입”(50쪽)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해서 달러를 벌어들인 나라가 그 달러로 미 국채를 사면 그 나라들은 수탈당한다는 주장이다. 마이클 허드슨은 이를 ‘금융 제국주의’라고 불렀다(194쪽).
이 사례들은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라는 점을 보여 줬지만, 동시에 미국 경제 패권의 쇠락과 국제 금융체계에서 달러화의 불안정성이 더욱 증대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 교수는 패권 유지 정책으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러면 트럼프는 왜 이 수탈을 지속하지 않고 관세를 높여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려 할까? 나원준 교수는 책의 다른 곳에서는 트럼프가 고율의 관세를 통해 동맹국들을 수탈한다고 주장한다(246~248쪽).
결국 나 교수는 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도 무역 적자 감축도 모두 수탈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러면 한국 경제는 종속?
나 교수의 종속 개념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나 교수는 종속이라는 개념이 경제 성장과는 무관하고 설사 저개발국이나 후진국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발전한 국가라 할지라도 경제적 종속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 교수도 인정하듯이, 이 주장은 종속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이런 의미 변경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의 실천적 함의다. 예를 들어 한국처럼 발전한 국가가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는다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당연히 미국의 압박에 반대해야 하겠지만 국내 산업과 한국 기업의 발전을 위한 산업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나원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종속돼 있음을 보여 주는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금융 종속”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종속”이다.
금융 종속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상장기업 시가총액 중 외국인 보유 비중과 투자소득수지 가운데 이자 및 배당 지급 규모를 제시한다. 한국의 경우 주식 시장의 외국인 보유 비중이 40퍼센트로 높은 편이고, 이자 및 배당 지급 규모가 GDP의 2퍼센트에 이른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KB금융 같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외국인 지분이 50퍼센트를 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대기업들을 좌우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국 대기업들은 총수나 정부가 통제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들이 외국 투자자들의 꼭두각시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미국 다국적 기업의 현지 자회사들 중 미국인 지분이 50퍼센트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 기업들은 미국 기업이 아니란 말인가?
한국이 지급하는 이자와 배당 규모만 보는 것도 반쪽 진실일 뿐이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대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금융채무를 뺀 순대외자산이 플러스를 기록해 지난해 말에는 GDP의 58.8퍼센트까지 증가했다.
나 교수는 산업 종속의 지표로는 무역 의존도, 생산수단의 수입의존도, 기술의 해외의존도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앞선 주장과 모순될 뿐이다. 나 교수는 앞서 국가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종속의 지표로 삼을 수 없다고 해놓고 막상 한국 경제가 더 개방돼 있다는 (즉, 세계 경제와의 상호 의존이 높다는) 지표를 종속의 지표로 사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한국 좌파의 상당수도 한국 경제가 “종속” 또는 “신식민지” 상태라는 근거로 기술의 해외의존도 또는 기술 종속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계속해서 경쟁을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장비나 우월한 기술의 독점은 일시적일 뿐이지 영속적일 수는 없다. 여러 실증 분석 결과를 보면, 지적재산권으로 얻는 소득이 무역 및 투자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10~2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고, 이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더구나 최근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증대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기업들은 세계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 교수 스스로도 ‘마스가 프로젝트’를 비판하면서 “숙련 노동과 기술 유출”을 우려했던 것 아닌가.
이처럼 나 교수가 주장하는 기술 종속 또한 반쪽 진실인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합 추구
한편, 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시기 구분을 하면서 “**년 체제”라는 용어(53년 체제, 61년 체제, 87년 체제, 97년 체제, 2008년 체제)를 사용하는데 이 또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나 교수가 제시하는 ‘체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소시기 구분점 정도는 될 수 있지만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기에 ‘체제’라고 지칭하는 것은 어색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시기 구분을 통해 나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민주당과의 연합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나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97년 체제’의 당사자가 민주당이니, 민주당은 연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주장을 비판한다(284쪽).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펼치는 것은 ‘87년 체제’의 한계 때문이라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이런 약점은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한미FTA를 다룰 때도 나타난다. 나 교수는 한국 자본가들이 한미FTA를 통해 한국 노동자와 (잠재적으로) 미국 노동자들을 더 착취할 기회를 노렸다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의 한국 수탈만 언급한다.
마찬가지로 나 교수는 트럼프 정부와의 무역협상 또한 미국의 “수탈”이라고 보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으로 한국 정부가 무역협상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자본가들은 트럼프의 대미투자 압박이나 마스가 프로젝트에서 돈을 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포착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국제 질서에서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교수의 주장은 미국의 “수탈”을 강조함으로써 민주당과의 연합이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데 맞춰져 있다. 이는 노동운동과 좌파 정당들이 민주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사회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 교수의 새 책이 ‘노동자들을 위한 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그 결론은 국가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이 고용주나 민주당 등과 연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른다. 미국의 압박을 빌미로 말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국익”으로 명명되지만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개혁을 위한 노동자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주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