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 또 혐오 집회 금지법 발의:
극우뿐 아니라 좌파적 비판도 억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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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민주당 이상식 의원이 ‘혐오 집회’ 금지 법안(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말 이미 민주당 김태년 의원과 위성곤 의원도 유사한 법을 발의한 바 있다. 극우의 ‘혐중’ 시위를 겨냥해서다.
그 외에도 극우의 가짜뉴스나 혐오 표현·집회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이 여럿 있다. 복수의 정당 현수막 규제법들(옥외광고물법 개정안), 학교 앞 혐오 시위 차단법(교육환경보호법 개정안), 특정 국가 및 집단에 대한 모욕·명예훼손 처벌법(형법개정안) 등.
비슷한 맥락에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과 무소속 최혁진 의원도 각각 증오선동죄(형법 개정안), 혐오 선동 방지법(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극우는 트럼프가 벌이는 이란 전쟁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극우 집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사망한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나 납치된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에 비유하며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주장이 흔하다. ‘혐중’ 구호와 노래도 여전하다.
그런 극우 집회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사회 개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이다. 트럼프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고 ‘혐중’을 부추기는 극우의 선동과 집회를 반대하는 것은 변화 염원 대중에게는 마땅하다. 그래서 우리는 극우에 대한 법적 처벌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기구에 집회 규제 등 민주적 권리의 행사를 단속하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본지는 그것이 좌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해 왔다. (관련 기사: 혐오집회금지법은 좌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도 극우를 견제하려고 한다. 선거 구도를 인권 대 혐오, 민주 대 반민주로 만들어서 극우를 견제하며 선거에서 득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 정당 민주당이 극우를 견제할 때는 (명시적이든 아니든) 동시에 좌파의 비판과 아래로부터의 투쟁도 꼭 견제한다. 좌우 극단을 배제하고 중도 중심으로 양극화를 봉합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민주당도 (세 번의 집권을 거치며 점점 더)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호하고 체제 안정을 뚜렷하게 지향한다.
올해만 해도 (겨우 두 달 새) 민주당은 국힘과 합심해서 두 차례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올해 1월 대통령 ‘집무실’ 100미터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개악안을 통과시켰고, 3월에는 간첩죄 확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민주당이 극우를 견제하는 방식은 국힘과 검열권을 행사하는 기관들에 미치는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는 식이다. 그래서 두 당이 서로 자기 정권을 방어하고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그보다 부차적으로 취급된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통과시킨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대표적이다. 국가가 나서 허위조작 정보 여부와 유통을 판단·결정하도록 하는 그 법을 일부 언론단체 등이 나서서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국힘은 이 법을 격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또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민주당의 방식은 극우 견제도 효과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극우 선동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은 그에 맞선 대중 행동과 그에 따른 각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진보당의 혐오 표현·집회 규제법 — 극우를 막을 수 없다.
진보당은 그동안 민주당의 집시법 개악, 간첩죄 확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등을 옳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진보당도 이재명 정부와 동맹해 오면서, 점점 국가를 이용해 극우를 저지해야 한다고 보게 되는 듯하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발의한 것과 흡사한 혐오집회 금지법이나 정당현수막 인종혐오표현 규제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좌파 정당인 진보당은 혐오표현 규제의 역효과(과잉금지)를 민주당보다 우려하고, 혐오표현을 더 엄밀하고 촘촘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래도 부작용은 똑같다는 것이다.
《혐오》의 저자이자 인권 운동가(미국 시민자유연맹 전 회장) 네이딘 스트토슨은 더 엄격하게 ‘선동’에 초점을 맞추든, 전통적 차별의 대상이 돼 온 집단을 향한 표현만 규제하든 간에 혐오표현금지법은 혐오표현이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나는 제정되거나 입안된 모든 혐오표현금지법을 추적하고 해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규정한 심각한 결함을 피하는 혐오표현금지법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예컨대 진보당 손솔 의원이 발의한 혐오 집회 금지 법안은 이렇다. “인종, 국가, 민족, 지역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에 대하여 편견·증오·차별·적대심을 조장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함.”
그것은 극우의 혐중 집회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도(시온주의자들에 대한 적대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규탄 집회도 겨냥할 수 있고, 경찰은 필요하면 실제로 그럴 것이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명동에서 극우 행진이 외국인 관광객을 위협하는 것을 비난하자, 경찰은 극우의 명동 행진을 제한하며 동시에 팔레스타인 연대 행진도 제한했다.
추상적인 법률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집행하는 것은 경찰, 정보기관, 법원 등 국가 기관들이다. 국가 기관들은 근본적으로 체제 수호를 위해 기능하고, 따라서 좌파에게 적대적이다.
국가 기관이 좌우 집회를 불편부당하게 똑같이 규제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진정 타격을 받는 것은 좌파 측이다.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기성 질서와 체제가 부추기는 지배적 사상의 일부다. 그래서 극우의 주장은 집회 말고도 스피커와 유통 경로가 좌파보다 훨씬 많다. 법·제도를 통해 극우를 약화시키는 것에 한계가 큰 이유다.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고 전진하려면 지배계급의 기만과 협박, 이간질을 극복해야 하고, 그러려면 집단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집단이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고 그에 따라 함께 행동하려면 가감없이 충분한 토론이 필수적이다.
즉, 표현의 자유의 진정한 가치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이 기성 질서를 수호하는 권력자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할 때에 있다. 그들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에 진정한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이다.
프랑스 혁명 때 정권을 잡은 자코뱅은 ‘혁명 수호’를 명분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 모두(온건파뿐 아니라 급진적 파리 민중을 뜻하는 상퀼로트까지)의 언론을 탄압하고 제거했다. 자기 기반을 스스로 밑에서부터 허문 셈이다. 자코뱅 정부는 취약해졌고, 온건파가 의회에서 반동을 일으켰을 때 민중 봉기를 호소했지만 파리 민중은 외면했다. 결국 자코뱅은 패배했다.
극우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초점을 국회가 아니라 거리와 일터에서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것에 맞춰야 하고, 그러려면 좌파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문제를 놓고 친자본주의 민주당에 불필요하게 타협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