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혐오표현 금지법 문제를 낱낱이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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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가짜뉴스’를 명분으로 언론을 집요하게 탄압하며, 허위정보 규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도 문재인 집권 시절 ‘가짜뉴스’ 단속과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진했다.(결국 무산됐다.)
좌파 측에서는 이에 반대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하지만 우파의 역사 왜곡이나 차별적·혐오적 표현은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적잖다. 혐오표현 금지는 특히 차별 반대 운동 내에서도 많이 지지받는 요구다.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아르테 출판, 2023)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은 이런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고, “중학교에서부터 … 다양한 평등주의 운동을 하던 학생운동가”였으며, 미국시민자유연맹 회장(1991~2008)을 역임한 저자는 미국에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와 같은 운동이 성장한 것에 상당히 고무받았다.
그런데 새 세대 활동가 상당수가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은 큰 장점이 있다. 첫째, 저자는 어떠한 종류의 혐오표현금지법도 분명하고 단호하게 반대한다. 예컨대 ‘선동’에 초점을 맞춘 더 엄격한 혐오표현금지법이든, 전통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돼 온 집단을 향한 표현만 규제하는 혐오표현금지법이든 모두 똑같이 문제가 있다며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이러한 급진적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것은 역자인 홍성수 교수를 포함해 혐오표현 규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여느 저명한 논자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둘째, 실력 있는 법학자답게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점을 치밀하고 설득적으로 논증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혐오표현금지법은 “서로 다른 정도의 정확성과 너비로” 만들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탄력적인 개념인 “혐오”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주관적 판단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할 수밖에 없고 집행 당국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집행이 필연적이다.
“탐탁지 않거나, 불온하거나, 막연하게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표현을 억압할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면 정부는 제한되지 않는 검열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결국 “권한 없는 사람들과 인기 없는 사상들”에 불리하게 행사되고, 종종 반대 의견이나 소수자 집단이 표적이 되며, 의견 표명이 상당히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집행돼 온 혐오표현금지법과 대학의 혐오표현 학칙, 관련 연구와 보고서들을 추적해 풍부한 사례를 들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 튀르키예에서는 시민들이 정부 관리나 군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혐오표현금지법에 따라 기소되는 경우가 흔하다.
● 영국의 법이 규정한 혐오표현에는 전쟁에서 싸우는 영국 군인에 대한 비판이 포함됐다. 2012년 영국 군인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살해를 비난한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린 10대 무슬림 아즈하르 아흐메드가 이 법으로 체포됐다.
● 캐나다의 혐오표현금지법의 첫 번째 집행은 캐나다 세관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가 쓴 《블랙 룩스: 인종과 재현》 1500부(여러 대학이 주문한)를 압수한 것이다.
● 2004년 프랑스에서 제정된 ‘를르슈법’의 입법 취지는 반反유대주의와 반反아랍 외국인 혐오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이스라엘 제품 불매 운동을 옹호하거나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표현을 처벌하는 데 거듭 사용됐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제정되거나 입안된 모든 혐오표현금지법을 추적하고 해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규정한 심각한 결함을 피하는 혐오표현금지법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혐오표현금지법이 일단 제정되고 나면 그 범위가 계속 확대돼 왔다는 저자의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이 기대하는 효과(혐오표현이나 그 해악 줄이기)를 신중하게 검토해, 그것이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논리적·경험적으로 밝히며 “대항 표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강력한 혐오표현금지법이 있음에도 나치즘이 부활했다. 혐오표현금지법으로 나치가 기소됐을 때 오히려 나치를 순교자로 만들어 나치가 주목받고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
게다가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권력자들(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등)은 혐오를 부추겨도 그 나라의 혐오표현금지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혐오표현을 당한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감정적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과장하지 않고, 무엇보다 그들을 법으로 “보호”하는 것보다 그들이 혐오표현에 맞설 수 있도록 고무하고,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하는 것(“대항 표현”)이 그 해악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혐오표현 금지에 대한 저자의 이런 견해는 〈노동자 연대〉 신문이 주장해 온 바와 많은 부분 통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에는 한계도 있다.
우선, 마르크스주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의할 때 정치적으로 누구의, 무엇을 말할 자유인지를 묻고, 좌파의 투쟁과 단결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 점이 분명하지는 않다.
천대받는 대중의 운동에 해로운 주장을 “표현의 자유”라며 옹호한다면, 우익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때 이를 의도치 않게 감싸게 되거나 (그에 맞서는 운동이) 마비될 수 있다. (관련 기사: ‘대법원, 박유하 무죄 판결: 한국 지배계급의 친서방(미·일) 외교와 일치하는 판결’)
다음으로, 저자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긴급성 원칙”(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심각한 해악을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그리고 임박하게 야기하는 경우)에 따른 표현은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긴급성 원칙”도 결국 국가가 판단하고 집행한다는 점에서 혐오표현금지법의 근본 난점을 공유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유보 조항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 숨어 있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저자가 커다란 존중을 보내는 미국연방대법원 포함) 본질적으로 노동계급과 급진적 좌파에게 적대적이다.
혐오표현과 차별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중 운동이라는 점도 저자와 마르크스주의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표현에 반대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