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혐중 시위는 ‘깽판’ 맞다 ― 그런데 경찰은 진보 집회도 제한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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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 명동 극우 집회를 두고 “깽판”이라고 비판하며 행안부 등 관계 부처에 조처를 명령했다.
이후 12일부터 경찰이 극우 시위대의 명동 거리 진입을 제한하자, 국민의힘과 극우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나아가 ‘그렇다면 진보 진영의 반미 시위도 깽판 아니냐’는 물타기까지 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처럼 명동 극우 시위는 “깽판”이 맞다. 극우 시위대는 중국 대사관이 위치할 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을 특별히 겨냥해 왔다. 방한한 손님들인 관광객들에게 “짱깨”라고 모욕하고 위협하는 게 깽판이 아니면 뭔가.
표현의 자유는 권력자들의 부당한 압력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권리를 뜻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극우는 권력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민주적 권리 파괴에 착수하라고 촉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윤석열의 친위 군사 쿠데타를 지지한 전례가 있다.
그들은 집회·결사·출판·언론의 자유를 파괴하려 한 윤석열을 여전히 찬양하고, 그의 계엄이 정당했다고 부르짖는다.
극우들이 반미 시위를 물고 늘어지는 건 억지 물타기일 뿐이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략에 한국도 적극 협력하자는 극우의 노선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만든다. 반미 시위는 이것을 반대해 평화를 옹호하는 것이다.
한국은 뿌리 깊은 친미 국가다.(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도 결코 그 노선이 바뀐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와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을 비판하는 것은 체계적 탄압을 받았다. 심지어 국가보안법은 한미동맹을 비판한 시조차 이적표현물로 규정했다. 이재명 정부하에서도 보안법을 이용한 반미자주파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협력을 더 강화하자는 극우 시위와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어떻게 동급에 놓일 수 있는가.
따라서 국민의힘부터 국가의 보안기구들까지 한국 핵심 권력자들이 옹호하는 친미·반중을 떠들면서 극우들이 마치 표현의 자유의 순교자인 양 행세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국가 기구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극우 시위 제한을 주문한 바로 그날, 경찰은 뻔히 대통령의 지시를 듣고도 저녁으로 예정된 명동 혐중 극우 시위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이틀 뒤 명동 상인들이 극우 시위를 제한해 달라고 민원을 넣고 나서야 비로소 12일부터 경찰은 명동거리 진입 제한 통고를 내렸다. 그러나 명동 대로변 행진은 여전히 허용했다.
오히려 황당하게도, 경찰은 극우 시위 제한을 빌미 삼아 ‘형평성’ 운운하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제한하려 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팔연사)는 경찰이 팔연사에 명동거리를 행진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본지에 전해 왔다. 다행히 팔연사 집회 신고 담당자의 항의로 경찰은 한발 물러섰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항의하는 운동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과 협력을 이어 왔다. 이처럼 극우 시위와 팔레스타인 연대 행진은 목적과 대의(그리고 시민들의 반응도)가 완전히 다른데, ‘형평성’이랍시고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할 시위를 제한하려 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경찰 등 억압적 국가기관에 의존해 극우를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힐끗 보여 준다. 극우를 제재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경찰은 이를 진보 운동을 공격하는 데도 활용하려 할 것이다.
국가기관이 결코 중립적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 장성, 경찰과 검찰의 고위 간부층, 대법원, 교도소장 등 강제력을 가진 국가의 기관들은 자본주의 질서와 위계를 확고히 지키려 한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우편향적이다. 서부지법 폭동 같은 극우 난동에 대해 경찰이 무르게 대응하고 법정에서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건 이런 국가기관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관련 기사: 본지 540호, ‘경찰과 우파: 팔은 안으로 굽는다’)
따라서 진보 계열 다수가 주장하듯,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며 국가에 ‘혐오’ 시위를 제한하라고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본의 아니게 진보 운동으로 돌아오는 부메랑을 국가의 손에 쥐어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는 경찰과 법원 등 국가기관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터무니없이) ‘유대인 혐오’라며 탄압해 왔다.
물론 시위 금지로 극우가 약화되지는 않는다. 극우가 번성하는 배경인 지정학적·경제적 위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우는 국가 탄압을 받으면 위축되기는커녕 순교자 행세를 한다.
극우는 단호한 반극우 대중 운동으로만 약화될 수 있다. 극우는 결국 대중의 혐오 대상이 돼야 한다.
국가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기층에서 운동을 일궈서 극우에 맞선 대중의 분노와 행동을 모아 내는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