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전략 비판:
계급 화해라는 공상적 ‘전략’은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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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규직 임금을 삭감하고 해고를 더 쉽게 하는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려고 사악하게도 노동계급 내부 이간질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지배자들이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략에 승부수를 건 만큼, 노동운동의 전략 기조는 노동계급 공통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추구하는 것이 돼야 한다.
2006년 이후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 정당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사회연대전략에 대해 〈노동자 연대〉가 비판적인 이유는 바로 계급적 단결이라는 핵심 과제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노동계급 내부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가 커졌다. 정규직 노동운동이 부문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이를 방치하면 계급적 단결이 어려워진다.
-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벗어나려면, 빈곤한 사람들의 이익도 함께 대변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
-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먼저 ‘양보’해서 (즉, 세금, 각종 사회보험료, 임금 인상 자제 등으로 실질적인 임금 소득을 깎아서) 저임금 노동자들과 빈곤한 서민에게 쓰이도록 하자. 이것이 노동운동의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이고 계급 내 연대(“계급 형성”)의 길이다.
- 노동자가 먼저 ‘양보’하면 국민적 명분(설득력)이 생겨서 자본을 ‘설득’(압박)하는 데 유리하다.
일단 1과 2의 주장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이 강제한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와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이 단결을 위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의 교활한 이간질에도 맞설 수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면, 월급이 2백만 원 미만인 노동자가 9백37만 명에 이른다. 이런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도 더 심할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통상임금 확보, 최저임금 인상 등의 투쟁에 노동운동이 연대해 함께 나서는 것이 계급 내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에게는 잘 조직된 노동운동이 박근혜의 ‘더 낮은 임금, 더 쉬운 해고’ 공격을 싸워 물리치는 것이 보호막이 될 수 있고, 또 스스로 조직화하고 투쟁에 나서는 데에도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 그중에서도 조직 노동계급이 할 일은 정부에 맞선 투쟁에서 전체 피억압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노동계급에 이로운 것이 사회 전체에도 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이다. 노동계급은 체제의 심장인 이윤에 타격을 가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이룩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 노동계급의 구실은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위한 투쟁에서 발휘하는 힘을 작업장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어야지, 자기 투쟁을 자제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상대적 고임금의 노동자가 경제 위기에도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것은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곳이 임금을 삭감·동결하면, 나머지 기업들에선 임금 인상 요구가 더 어려워진다.
비관론과 계급 내 격차의 과장
3과 4의 주장은 조직 노동계급이 연대 투쟁을 하기보다는 ‘임금 소득’을 양보해 자본과의 타협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의 ‘연대’는 실상은 ‘소득의 나눔’이다. 이는 더 열악한 노동자와 서민뿐아니라 조직 노동계급까지도 수동화시키는 대안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이제는 계급투쟁 방식으로 노동계급 내 격차를 상향 평준화해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비관론이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투쟁에 대한 비관론 때문에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양측의) 상층 지도부가 골치만 아픈 임금 인상, 고용 보장 투쟁 대신 노사정 간 ‘정치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이 협상의 성공을 위해 임금 삭감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할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에게 양보 가능한 첫째 목록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계급 내 격차를 과장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연대전략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웠던 정용건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올 1월 〈사민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연대전략을 ‘복지국가 하자는 운동’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이 관점에서는, 세금 인상 등으로 임금이 당장 깎이는 것을 감내하는 것은 전략적 양보,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연대전략은 상대적 고임금 집단의 임금 소득을 어떻게 ‘양보’하자는 것일까? 한 기업 내 격차 해소 문제라면, (바람직한가 하는 판단과 별개로) 정규직이 임금 인상을 포기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등의 ‘직접 이전’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사회적으로는 노동계급 부분 간 임금 소득의 직접 이전은 가능하지가 않다. 따라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양보는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한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료 인상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경제 주체의 세금 부담을 늘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노동계급의 세금 부담도 늘겠지만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 부담도 늘어, 복지를 위한 재원이 늘어난다는 발상이다. 국가(조세정책)를 매개로 자본과 노동이 ‘사회적 연대’를 해 복지국가를 이루자는 것이다.
결국 사회연대전략은 계급간 타협에 기초를 둔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치 전략의 다른 표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노동운동 상층이 계급투쟁을 회피해 협상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프로젝트다.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적 연대’의 약점
사실, 공동체(사회)의 복지 비용을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함께 부담하는 것을 ‘사회적 연대’로 보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연대’ 개념에 속한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의 당수를 지낸 잉그마 바르손은 이렇게 말했다.
“각자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복지 요구다. 만약에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정한 권리가 되려면, 우리는 – 연대 속에서 – 이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연대적인 기여금을 내야만 한다.”(《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논형, 2009)
복지 제공이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주장은 개인의 생계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장 원리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 논리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에게도 재정 부담이 지워져야 한다는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좌파나 현장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기업주들의 “정규직 양보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계급’을 ‘국민’과 조화시키는 방식의 사회민주주의적 ‘연대’ 개념(도덕)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공동체가 내부에서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법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독자적인 생존수단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력을 불평등한 조건에서 판매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동등한 주체 간의 노동력 매매 계약이 현실에서는 ‘갑’과 ‘을’ 사이의 종속적 계약이 되는 이유다. 이 근원적 불평등 때문에 노동력 판매 대가인 임금은 노동자들의 사실상 유일한 소득원이다.
이 덕분에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과정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정해진 노동시간 안에서 약속한 임금 몫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의 이윤은 바로 이 잉여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시점에서 이윤 몫과 임금 몫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노동과 자본은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계급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처지에서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일부에 해당하는 복지 비용은 자본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임금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연대전략의 ‘(사회적)연대’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복지 비용을 사회가 부담한다면,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 안에서 어느 계급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를 더 캐물어야 한다.
바로 이 문제에서 사회연대전략의 “계급 형성론”도 모순에 부딪힌다. 계급형성론자들은 소득 연대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과 나머지 노동자들이 계급(연대)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회연대전략의 계획상) 사회적 소득 연대에 마찬가지로 동참하게 돼 있는 자본가들과는 그런 연대의식을 형성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복지국가에 대한 착각
이런 모순들을 봐도, 사회연대전략의 포퓰리즘(계급 협력)적 ‘소득 연대’ 프로젝트는 계급 형성은커녕 노동계급의 분열과 계급의식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사회연대전략이 계급을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소득 나눔을 통해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공상적 사회주의에 가깝다. 이성과 선한 의지로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해 조화를 이룬다는 발상 말이다. 이런 공상은 자본이 설득 가능하고, 국가가 중립적이고 사회 전체를 통합적으로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다는 착각과도 연결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다. 국가는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주관하는 외관을 띠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배계급의 강제적 통치 수단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설득으로 자본으로 하여금 이윤의 침식을 용인하도록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복지국가라는 사회적 타협 체제는 격렬한 계급투쟁이 상호 휴전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휴전이 휴전 협상가들의 산물이 아니듯이(전쟁에서 드러난 상호 세력관계의 결과물이다), 복지국가도 사회적 합의주의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다.
또한 복지국가라는 역사적 시스템은 노동자들의 투쟁,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호황, 냉전 제국주의 체제의 형성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등의 구체적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즉, 특정 시점에서 당대의 계급세력균형 속에서 성립 가능했던 잠정협정(modus vivendi)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의 요인들이 모두 사라지거나 변화됐다.
이런 점에서도 사회연대전략은 공상적이다. 강력한 계급투쟁 없이, 그것을 성사시킨 역사적 배경과 전혀 다른 조건에서도 당시와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바른 분석의 중요성
설사 사회연대전략가들이 투쟁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계급 간 타협을 위해 계급 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결정적 약점을 덮을 수는 없다. 계급 분열의 논리는 단호한 대중 투쟁 구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연대전략에 호의적인 대다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때 민주노총 안에서 혼란과 분열을 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에 대처하는 좌파의 약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노조 관료층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회피한다. 즉, 노사 간 협상을 전담하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이해관계가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요구와 상충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결국 ‘대공장 노조’ 지도부의 투쟁 회피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와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되고, 사회연대전략의 해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정규직 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대립시키는 듯한 일종의 도덕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도덕주의는 수동적 급진주의 그리고/또는 정치적 무기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급타협주의 세계관의 산물인 사회연대전략보다는 자본과 맞서 싸우는 데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노동자 연대를 강화시키는 전략이 노동조건 방어에도 훨씬 더 효과적이다. 노동자 연대는 다른 피억압 민중과 달리 이윤 생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그리하여 자본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 노동자 5만 명이 모두 사내하청이라 할지라도 전원이 똘똘 뭉쳐 파업한다면, 노동계급 투쟁의 파괴력이라는 점에서는 5만 명이 모두 정규직인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문제는 일부는 정규직, 일부는 사내하청, 또 일부는 촉탁직 이런 식으로 분열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계급 내 다양한 격차와 사회적 빈곤 해소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계급 내 격차를 해소할 돈이 어디서 나와야 하냐는 물음에 올바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저임금의 수혜자는 기업주이지,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아니라 계급투쟁 전략이 노동운동의 유일한 전략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