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임금 투쟁은 중요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적잖은 좌파들조차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성과급)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이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일부 또는 전부) 공유하기 때문이다.(좌파 중에서는 노동자전선,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동자투쟁, 노동자연대 등만이 분명하게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참세상연구소의 홍석만 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삼성전자는 초과이윤이 아닌 평시에도 시장의 독점적 지배력과 원하청 종속 구조 속에서 독점이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원청 노동자들은 평시에도 독점이윤에 기반한 일종의 ‘독점 임금’을 받고 있다. … 이 ‘독점 임금’은 독점 이윤과 마찬가지로 시장 불균형과 생산의 (착취에 기반한) 하청 종속의 결과로 이미 정상 임금(?) 또는 평균 임금을 초과하고 있다.”
독점 이론에 근거한 이런 주장은 대기업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반면, 대기업 사용자와 정규직 사이에는 마치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처럼 가정한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 등으로 ‘독점이윤’이라는 높은 이윤율을 누리는 반면, 경쟁이 치열한 하청 중소기업들은 낮은 이윤율을 누린다는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대기업들도 치열한 국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독점이윤’을 거둘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정규직에게 ‘독점 임금’ 같은 혜택을 베풀 수가 없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다른 기업들을 쓰러뜨리며 살아남아 왔다. 지금도 두 기업은 미국 마이크론이나 대만의 TSMC, 그리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경쟁 압력 때문에 그들은 선진 기술로 비용을 절감하려고 막대한 자본을 설비 투자에 투입한다. 그러면 다른 기업들보다 생산비를 낮춰 (일시적인데도) 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다른 기업들로 일반화되면 초과이윤은 상쇄되고, 그러면 다시금 더 혁신적인 기술을 위한 막대한 설비 투자 경쟁이 이어진다.
수년 전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에 대거 사용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기술 투자에 소홀한 사이에 SK하이닉스가 혁신 기술로 치고 나간 사례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조차 안정적 ‘독점이윤’을 거둘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당시 삼성전자는 2023년 영업이익이 급감해 적자에 빠지면서 ‘위기설’까지 나오기도 했다.(법인세 0원)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경쟁이 이처럼 치열한 것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하청 노동자들 몫을 가져간 ‘독점 임금’이 아니라 노동생산성 증대에 따른 단위노동비용 절감 덕분임을 보여 준다. (그것은 노동자 한 명이 생산하는 가치가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여러 통계를 살펴보면, 제조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중소기업보다 높지만, 대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중소기업보다 더 낮다.
또한 국제적으로 치열한 기술 혁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기업 경영자들이 핵심 정규직에게 높은 ‘독점 임금’을 주고 나머지는 차별하는 노동계급 분할 책략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날로 격화되는 국제 경쟁 때문에 정규직에게 그런 혜택을 베풀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기업주가 하청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한 결실을 나눠먹기는커녕,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잉여노동을 착취당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착취 관계 속에서 똑같이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들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로 조건이 다르더라도 단결할 수 있다.
반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점 임금’ 탓에 하청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다고 보면(제로썸), 두 집단 사이에 단결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노동계급 단결을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을 억제해야 한다는 도덕주의로 이끌리게 된다.
도덕주의
이 때문에 일부 좌파들(홍석만과 이용덕 씨 등)은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성과급 대폭 인상 같은 자신들의 임금을 올리는 요구가 아니라 더 열악한 부분의 임금을 개선하는 요구를 채택해야만 그 투쟁을 지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예컨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 지급’ 요구를 채택해야만 한다거나, ‘초과이윤세’ 도입으로 삼성전자의 초과이윤을 국가가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요구를 채택해야만 지지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제 처음 투쟁에 참여해 보는 노동자가 상당수인 삼성전자 노조가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내걸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면(이건 정치적 투쟁이다), 좌파가 굳이 노동자 사이의 반목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한편, 개별 대기업의 조건 개선 투쟁을 노동계급 전체는 생각하지 않고 노동계급 내 격차만 키우는 이기적인 투쟁이라고 보는 다른 좌파들도 이 투쟁에 대한 지지 자체를 아예 꺼림칙해 한다. (이런 논리로 심지어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도 다른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늘리는 것이라 보고, 지지를 기피하기도 한다.)
물론 특정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느 시점에서 격차를 증대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임금 격차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특정 부문의 노동자 투쟁이 제한적 성과를 거두더라도 그 결과가 다른 부문의 노동자 투쟁에 고무적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봐야 한다.(물론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정치는 우리가 별도로 논의해야 하는 개혁주의 문제와 관계 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요구를 채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상향 평준화를 바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고려하게 만들려 해도 도덕주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역학을 적용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조건을 지키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내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의식이 변하고,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즉,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가장 잘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초과이윤세’처럼 전체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개혁입법을 위해서도 실질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이윤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을 그 투쟁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초과이윤세’나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 요구 등을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성과급 인상 요구와 대립시킬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이타적 투쟁을 기대하는 것은 도덕주의적이다 못해 공상적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연대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이 성과를 낸다고 해서 그들 모두에게서 고르게 계급의식이 성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계급의식의 불균등 발전).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경험을 파편화시키고 자본가·언론·정부 등은 갖가지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약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래서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일관된 반자본주의 좌파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려면, 특정 경제 투쟁에서 한발 떨어져 ‘전체 노동계급을 생각하라’고 훈수나 둘 게 아니라, 그 경제 투쟁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연결하고 그들 자신도 저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좌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당한’ 요구와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자생적’ 요구를 대립시킬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일단 무조건 지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비판할 게 있다면(혁명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있다), 투쟁의 건설에 도움이 되는 그런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