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양진호 구속:
대중적 여성운동이 몰카 제왕 수사를 강제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몰카 제국의 황제’ 양진호가 구속·기소됐다.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도한 ‘웹하드 카르텔’(웹하드 업체, 필터링 업체(불법촬영물을 걸러내는 업체), 디지털 장의업체(돈 받고 온라인 기록을 삭제해 주는 업체)의 유착)이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미래기술회장 양진호는 1·3위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자다. ‘헤비 업로더’(대량 게시자)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또, 필터링 업체 ‘뮤레카’를 실소유하면서 ‘필터링을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하는 수법’으로 성범죄 피해 영상물이 대거 유통되게끔 만들었다. ‘뮤레카’는 자회사로 디지털 장의업체를 운영했다. 이런 관계망 속에서 피해 여성들이 거액을 들여도 불법촬영물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양진호 구속은 탐사보도 매체 ‘셜록’과 ‘뉴스타파’가 양진호의 악행을 폭로한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결정적 동력은 올해 5월부터 일어난 불법촬영물 반대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중적·전투적 여성운동이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가 이미 올해 2월 웹하드 업체들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경찰은 7월에야 수사 방침을 밝혔다. ‘불편한 용기’가 주도한 대규모 여성운동이 문재인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며 경찰이 웹하드 업주를 수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여성운동이 대중운동 건설을 지향해야 할 이유이다.
유착
양진호와 유착해 거액을 번 헤비 업로더, 관련 기업 임직원들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다. 이들이 실제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현행법상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양진호가 불법적인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유통으로 거액을 벌고 사세를 확장한 데는 권력층과의 유착이 있었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한다. 한 전직 웹하드 업체 개발자는 11월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웹하드 업체들의 협회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가 단속이 있을 경우 웹하드 업체 대표들에게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권력층과 유착해 단속 정보가 흘러나갔다는 의심이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요란하게 발표하면서도 정작 웹 사업자 규제는 빠뜨렸다. 기본적으로 기업인들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게 정부 기조다. 올해 불법촬영물 반대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난 뒤에도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거듭 약속하면서도 웹 사업자 규제는 거듭 회피했다.
웹하드 업체의 불법촬영 영상물 삭제·차단 의무를 규정한 법안(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대표발의)이 이미 지난해 9월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않은 것도 이를 잘 보여 준다. 이 법안은 불법촬영 영상물 피해자가 웹하드 업체에 신고하면 웹하드 업체는 해당 영상물을 즉시 삭제하고 유통 방지 조치까지 취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는 웹하드 업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양진호 구속을 계기로 ‘웹하드 카르텔’ 근절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자 11월 16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또다시 디지털 성범죄 근절 입법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웹 사업자 규제 문제는 회피하고 있다.
저작권 있는 영상물이 무단 게재될 때 웹 사업자들이 삭제·차단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불법촬영 영상물에도 기업들의 삭제·차단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거액의 벌금을 매기는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