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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항의 1차 집회:
경찰과 검찰의 여성차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다

홍대 누드 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여성 대상 불법촬영 범죄에 무성의하게 대응해 온 경찰과 검찰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5월 19일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여성 1만여 명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다음 카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19일 시위 뒤 ‘불편한 용기’로 개명) 운영진이 주최한 이 집회는 주최 측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규모 시위였다. 한국 역사상 성차별을 이슈로 벌어진 최대 규모 시위였다. 워마드가 이 시위를 주최한 주축인 듯하지만, 워마드 회원보다 훨씬 광범한 여성들이 참가한 것 같다.

이미 4월에 ‘위장·몰래카메라 판매 금지와 몰카 범죄 처벌 강화’ 청원에 20만 9000여 명이 참가했다. 홍대 누드 모델 불법촬영 사건 발생 뒤 일어난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 요청’ 청원에는 1주일 만에 40만 명이 동참했다. 유명 유튜버 양모 씨가 불법 누드 촬영과 영상 유출 피해를 호소하며 올린 청원까지 가세해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한 듯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2006년 공식 보고된 성폭력 범죄 중 3.6퍼센트에 불과했지만 2015년엔 24.9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되고, 삭제도 어려워 많은 여성들이 불안에 떤다. 피해 여성 일부가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났다.

수사당국이 여성들의 신고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이 제기돼 왔다. 5월 14일 서울경찰청장 이주민이 “피의자 성별에 따라 속도를 늦추거나 공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발표한 사례를 보면 이런 불신은 분명 근거가 있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면 관할을 핑계로 사건 접수를 떠넘기고, “신고해 봐야 범인을 못 잡는다”, “무고로 고소당할 수 있다”며 신고를 말리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신고 여성을 탓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채팅을 하다 찍힌 촬영물로 피해를 본 여학생이 경찰에게 “공부나 하라”며 혼이 나고, 혼외 관계를 맺다 영상이 찍힌 여성들이 훈계를 듣기도 했다. 귀찮아하는 수사 담당자의 눈빛, 말투 등 모든 것이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한겨레 21》 제1214호).

많은 여성들이 경찰뿐 아니라 검찰에도 불신을 드러낸다. 공식 통계상 신고된 범죄의 대부분이 검거되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기소율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2012년 10월~2015년 4월까지 형이 선고되거나 확정된 1심 판결의 대부분(약 68퍼센트)이 벌금형에 그쳤다. 여기에는 법률상 허점과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가볍게 여기는 판사들의 태도도 작용한다.

여성들이 불법촬영 범죄 수사에 소극적이거나 가벼운 벌금형을 내렸던 경찰·검찰에 항의한 것은 정당하다. 수사기관은 여성들의 피해 호소를 진중하게 다뤄야 하고 가해자 수사와 유출된 영상을 신속히 차단·삭제하는 등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도전

여성들의 대규모 청원에 이어 대중 시위까지 일어나면서, 경찰과 정부는 앞으로 여성들의 피해에 신속하게 대응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이 고무된 듯하다. 5월 26일에는 19일 집회 주최 측과 다른 쪽이 주최한 집회가 800명 규모로 열렸다. 19일 집회 주최 측은 6월 9일 혜화역 부근에서 2차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요구한다. 지극히 정당한 요구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워마드 회원의 구속 자체가 성차별적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동의하기 힘들다. 둘이 다투게 된 과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워마드 회원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남성 대상 불법촬영 처벌 자체를 반대하는 워마드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도 많다.(19일 집회 참가자 중에서도 워마드의 팻말에 불편함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고, 26일에 열린 또 다른 ‘여성만의 시위’는 워마드와 연대하지 않는다고 표방했다.)

한편, 두 집회 주최 측 모두 ‘여성’에게만 참가를 허용한다. ‘운동권’ 배제를 표방한 것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시위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

물론, 성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다수가 남성이다 보니, 남성들에게 즉각적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성 일반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효과적인 시위 방식이 아니다. 남성 일반이 성범죄자는 아닐 뿐더러 많은 남성들은 불법촬영 범죄를 포함한 성범죄에 반대한다. 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지지하는 남성들의 동참을 환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 대부분은 단지 신속하고 공정한 처벌뿐 아니라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성차별적 문화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싸우는 것이 운동의 저변을 넓히면서 성평등 의식을 확산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운동권’ 배제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이지 않다. 여성 차별에 반대하며 평등을 지지하는 진보적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은 불법촬영 범죄 항의 시위가 단지 평등한 처벌을 요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의 여성 차별에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9일 집회 주최 측은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넘어 ‘현 경찰총장·검찰총장 파면, 여성 경찰청장·검찰총장 선출’을 요구한다. 현 경찰총장·검찰총장 불신이야 지당하지만, 여성 경찰총장·검찰총장이 더 진보적인 대안은 아니다. 현재 영국 런던의 경찰청장은 여성인 크레시다 딕이지만, 노동계급 투쟁 탄압과 이주민 추방 등에서 남성 경찰청장 못지않게 반동적이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에 의존하기보다, 성차별에 분노하는 새 세대 여성들과 진보적 여성·노동 단체들이 폭넓게 연대해서 성차별에 맞서는 운동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