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우파: 팔은 안으로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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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수사 초기와 윤석열 관저 체포영장 집행 때까지만 해도 양측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던 경찰의 태도가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한덕수가 복귀해 “공권력 도전에 엄중 대응” 운운한 직후인 3월 26~27일 집회에 경찰은 대단히 과격하게 대응했다.
정부와 경찰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을 막겠다며 경찰 수천 명, 경찰 버스 수십 대를 도로 봉쇄와 행진 저지에 투입해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다음날 오전 트랙터를 실은 트럭 한 대가 가까스로 우회해 경복궁역에 진입하자, 대기하던 경찰 수백 명이 트랙터를 뺏겠다며 시위대를 폭행해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 마트노조 조합원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영남 지역 산불 진화 인력이 부족해 애를 먹던 때, 상징적인 반나절짜리 트랙터 행진을 막겠다고 전국에서 경찰 수천 명이 동원된 것이다.
이날 경찰의 고압적인 폭력 장면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극우의 서부지법 폭동 때는 왜 저렇게 하지 않았는지 누구나 의문을 가질 법하다.
헌법재판소와 안국역, 경복궁 부근에서 극우 난동꾼들이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을 위협하는데도 경찰은 방관하기 일쑤다. 왜 방관하냐고 항의하면 되레 공무집행 방해라며 위협한다.
심지어 경찰이 삼엄히 깔려 있는 헌법재판소 정문 앞 경찰 지휘관이 보는 앞에서 민주당 의원(백혜련 의원)이 날계란을 맞았는데도 경찰은 현행범 체포를 하지 않았다.
반면, 비상행동 지도부나 활동가를 미신고 집회 등에 관한 건으로 조사하는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촛불행동 활동가들에 대한 괴롭힘과 신상 털기 수사도 지속되고 있다.
극우 난동 비호
극우 시위가 부상하고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그들을 지지하며 우파 결집이 일어난 것에 힘입어 윤석열 일당은 2월 말 경찰 인사에서 친윤 인물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대통령실 근무자들, 비상계엄 연루자들, 용산경찰서 출신자들, 윤석열 일가의 비리 의혹을 덮어 준 자들이 승진하고 요직을 차지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이 윤석열을 위한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그리고 3월 8일 윤석열이 석방되고, 3월 24일 한덕수까지 내각에 복귀했다. 비록 행정안전부·국방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기는 해도 계엄 전 윤석열 내각이 상당 부분 복원된 것이다.(행안부 장관의 공백은 이번 인사로 상당히 메워졌다.)
경찰 지휘부는 이제 윤석열 탄핵 기각 가능성에도 대비한다. 경찰은 최근 헌재 선고 후를 대비하는 진압 훈련을 하면서, 진압 대상(폭동 세력) 역할자들에게 ‘민주노총’이 쓰인 조끼를 입혔다.
안 그래도 갈수록 지지부진해진 경찰의 내란죄 수사는 그나마 초동 수사와 윤석열 체포 작전을 지휘했던 현 국가수사본부장이 3월 28일 임기가 끝나 물러나면 미궁으로 빠질 수 있다.
이제 경찰의 극우 비호는 더 노골적이 됐다. 사실 이미 서부지법 폭동도 경찰이 묵인한 정황이 있다.
26일 남태령에서는 안정권, 배인규 등 극우 유튜버들이 경찰과 협력 관계임이 드러났다. 안정권과 경찰관이 트랙터 행진을 막는 데 협조하자고 대화를 나누는 영상이 공개됐다. 〈오마이뉴스〉 취재에 따르면, 그 경찰관은 서울경찰청 정보과 소속이다.

3월 11일 충북 청주 충북대 캠퍼스에서는 탄핵 찬성 학생들이 연 집회에 안정권 일당과 탄핵 반대 학생들이 난입하는 사건이 있었다. 탄핵 찬성 학생들이 대피한 사이, 극우 유튜버들은 탄핵 찬성 현수막과 팻말 등을 찢고 태웠다. 이날 탄핵 찬성 측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극우 유튜버와 맞장구를 치며 대화한 것이 폭로됐다.
극우 난동꾼들이 함부로 도발하는 것에는 (경찰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본성과 한국 경찰의 뿌리
경찰이 군사 쿠데타 미수 세력을 비호하는 쪽으로 기울고, 극우에게 편파적 관용을 보이는 것은 경찰 본래의 성격과 관련 있다.
경찰은 체제 수호를 위한 치안·경비·정보·수사 등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다. 물리력(“공권력”)을 행사해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치안 기능은 계엄 상태가 아닌 한은 경찰이 전담한다.
경찰의 중요성은 조직 규모의 방대함과 예산을 봐도 알 수 있다. 올해 경찰 예산은 13조 원을 넘는데, 행안부 산하 기관의 예산인데도 여성가족부 등 웬만한 정부 부처 예산보다 크고, 검찰보다도 많다.
2024년 기준 경찰 인력은 13만여 명으로 경찰 1인당 담당 인구는 391명이다(소방관 1인당 담당 인구는 766명이다). 전국의 경찰서, 파출소, 지구대를 더하면 2000개가 넘는다. 대중에 대한 밀착 감시와 통제를 일상으로 벌이기 위한 것이다.
경찰의 치안·경비 기능은 주로 예방·단속이므로 경찰의 기본 활동이 보통 사람들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해 감시하거나 물리적으로 규율하는 일들임을 뜻한다.
또한 지역까지 촘촘하게 뻗친 조직과 일상적 감시 활동 탓에 그동안 역대 정권 대통령들은 국가정보원, 방첩사, 검찰보다 경찰의 여론 동향 정보를 가장 신뢰했다. 윤석열의 첫 경찰청장 윤희근이 정보 경찰 출신이었다.
지배계급에게 경찰은 일상적인 통치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조직인 것이다.
체제 수호 기관이라는 점에서 경찰은 생래적으로 우파적이며, 물리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군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억압 기관이다.

국제적으로도 경찰은 극우·파시스트에 친화적이다.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미국 경찰도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공격하는 극우를 거의 제지하지 않았다. 2021년 트럼프 지지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폭동 때 경찰 일부는 이 극우·파시스트들을 일부러 막지 않았다.
나치 독일에서는 나치의 폭력 조직인 친위대와 돌격대가 나치 집권 후 경찰로 편입돼 융화됐다. 근래에는, 그리스의 나치 정당 황금새벽당이 경찰 내에 상당수 당원과 지지자를 확보한 것으로 유명했다.
한국 경찰의 역사적 기원도 매우 극우적이다. 한국 경찰은 미군정이 처음 조직했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미군은 한반도를 소련군과 분할 점령한 뒤 한국에 진주했지만, 미군 병력만으로는 군정을 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군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해방 후 흩어져 도망간 일제 경찰 출신 한국인들을 다시 모아 경찰 조직(미군정 경무국)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우익 DNA
미군정하에서 재건된 경찰은 반공을 내세워 친일 경력을 덮고, 한국 민중의 완전한 독립 열망과 생계비 저항 등을 미군정이 분쇄하는 데 선두에 섰다. 1946년 9월 총파업 분쇄와 대구 10월 항쟁 진압, 1948년 제주 학살 등. 이때 서북청년단 등 월남한 우익 폭력 조직들이 경찰과 군대의 하수인으로 움직였는데, 그들의 일부는 경찰과 군대로 흡수됐다.
그 이후로도 경찰은 독재 유지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해 왔다. 1990년대 이후 국가 형태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민주당이 집권해도 경찰의 기능과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경찰은 권력자들에 친절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피해는 흔히 외면한다. 보통 사람들이 용의자일 땐 강압적 수사나 가혹 행위를 자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퇴임 후 정계에 진출하는 경찰 최고위층이 주로 국민의힘으로 가서 강경 우파 정치인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찰의 일반적 성격뿐 아니라 그 구체적 역사성에서도 한국 경찰은 지배계급을 위한 폭력성과 우파성, 기회주의 등을 누적시켜 온 것이다.
경찰은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에 잠시 온화한 척할 수도 있지만, 좌파와 노동자 투쟁에는 일관되게 적대적이다.(박근혜 퇴진 운동이 강력하게 벌어져 지배계급 다수가 박근혜 제거에 동의했던 시기에는 경찰이 잠시 유화적 태도를 취했었다.)
지금은 지배계급도 단일하게 결속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권좌 복귀를 열망하는 윤석열 일당과 극우를 편드는 것은 그 본질적 성격과 전통을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