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민중전선 전략(민주헌정 수호 연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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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은 “극우 내란 세력”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당과 대선 선거 연합을 맺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됐다.
이 선거 연합에는 다른 세 자유주의 야당(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과 ‘광장대선 연합정치 시민연대’(광장시민연대)도 포함돼 있다. 광장시민연대는 반미 자주파와 엔지오들이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을 위해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분리해 나와 만든 조직이다. 윤석열 집권 초반부터 퇴진 운동을 벌여 온 촛불행동의 권오혁 공동대표도 민주당 선본에 참여하고 있다.
좌파 정당이자 노동자 정당인 진보당이 극우에 맞서 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전략적 연합(민중전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전선의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 진보당의 열위적 지위 때문에 진보당 내에서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을 근거로 대며 진보당 후보가 완주해 당을 선전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자강 自強 후 민중전선’ 입장이다. 민중전선 전략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는 아닌 것이다. 어떤 민중전선이냐를 둘러싼 전술적 차이다.
이번 대선에서 극우 후보 김문수를 패퇴시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윤석열 탄핵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진보당 활동가들은 이를 위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소수지만 또 다른 탄핵 운동 활동가들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한다.) 윤석열의 쿠데타를 반대하고 탄핵을 찬성한 이재명에게 투표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당의 진정한 문제는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선대위에는 진보당과 자유주의 정당들뿐 아니라 심지어 우파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보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윤석열 캠프 출신인 전 한나라당 의원 이인기 등.
민주당의 우파 인사 영입은 우파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샤이 보수’가 쉽사리 결집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덕분에 김문수의 지지율이 최근에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당은 민주당의 우클릭을 비판하지 않았다. 실수로 비판을 빠뜨린 게 아니다. 민중전선의 핵심 목표가 “극우 내란 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연합해 정권 교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하면 극우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석진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압도적 승리로 내란 세력에게 회복 불능의 상해를 입혀야 차기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직감한 기층조직이 아래로부터 붕괴될 것이다.”
이런 엘리트주의가 민중전선의 핵심 접근법이다. 진보당은 극우 후보에 맞선 대중 동원을 선거 기간에 일절 호소하지 않았다. 대신에 유권자에게 이재명에게 투표할 것을 설득했다. 극우 후보 반대 투쟁을 투표 행위로 극도로 축소시킨 것이다.
그러나 김문수는 여느 우파 후보가 아니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를 지지한 특별 위험 인물이다. 따라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집권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다닐 뿐, 김문수의 출마 정당성 자체를 문제 삼거나 극우 후보 저지 투쟁을 하자고 호소하지 않았다.
극우 후보 반대를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국한하면, 극우 저지 투쟁은 후보 간 언쟁이나 정책 경쟁으로 변질된다. 그리 되면 쿠데타 세력 척결 문제는 선거 공간에서 부차화되고 극우 정치는 주류적 입장의 하나처럼 여겨진다. 이재명 후보가 티브이 토론회 등에서 김문수의 후보 자격을 직격하지 않은 채 점잖은 경쟁 후보로 대하면서 이미 그런 문제점이 드러났다.
행동 통일 vs. 강령 통일
민중전선은 좌파와 노동계급 내 상이한 단체들의 단결된 행동이 아니라 상이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상이한 사회세력 간 강령적 통일을 표방한다.
야5당과 광장시민연대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문’은 모호한 개혁입법 추진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계급의 절실한 요구는 빠져 있다.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관계법 적용의 사각지대 해소, 노동기본권 보장 등 제도적 과제는 포함돼 있지만, 노동계급의 긴요하고 당면한 요구인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은 없다.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반대도 빠져 있다. “남북 간 평화·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복원”한다고만 돼 있다. 진보당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미국 제국주의 반대 운동을 열심히 해 왔다. 2002년 주한미군의 두 여중생 살해 사건 항의 운동, 2005년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등등. 그러나 지금 진보당은 한국 자본주의의 “국익”을 좌파의 언어로 합리화하고 있다. 진보당이 말하는 “국익”이 보통 사람들의 이익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용어로는 계급 협력이 불가피해진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그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5단체를 만난 뒤 “모든 에너지를 경제와 민생 회복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선언문’의 핵심 구상은 대중 동원이 아니라 계급 협력과 국가 기구에 의지해 극우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진보당 지도부는 “사회대개혁위원회” 같은 정부 기구가 ‘공동선언문’의 이행을 보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이런 정부 기구에 참여하는 것이 “장외 구호”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렇듯 민중전선은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국가 기구를 통해 사회 변화를 이루려는 개혁주의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계급은 그저 표밭이다.
그러나 국가 기구를 노동계급에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겠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도구이며, 이 억압을 합법화하고 공고히 하는 ‘제도’의 창조물”(레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민중전선은 국가 기구들을 노동계급에 이롭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민중전선이 국가의 포로가 됐다. 결국 민중전선은 대중에게 한 약속을 배신했다. 1930년대 중엽 프랑스·스페인·미국·그리스 등지의 민중전선 경험이 정확히 그랬다.
거리 운동과 민주당 정부의 결합?
진보당의 민중전선 전략은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대의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이재명 정부가 등장한다면 그 모순은 첨예하게 표출될 수 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민주당만으로는 사회대개혁을 완성할 수 없고 “광장연합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중 운동과 민주당 정부를 결합시켜 민중전선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1936년 프랑스 공산당이 민중전선 정부에 입각하지 않고 스스로 “민중의 장관”을 자처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얼마 뒤 노동계급과 급진당(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정당)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공산당은 늘 후자를 선택했다. 상이한 계급 간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이익을 노동계급의 이익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김재연 상임대표는 마치 민주당의 의지와 선택이 아니라 외부적 힘(이를 테면 미국이나 극우의 압력)이 사회대개혁의 주된 장애물이 될 것인 양 주장하는 듯하다. 천만의 말씀이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의 경험이 보여 주듯, 이재명 정부가 사회대개혁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일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집행부를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책임을 맡으면서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당이 민주당을 견인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진보당은 민주당의 우클릭에 매번 묵인하고 있다.

대중 동원이 중요하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간에, 극우 운동은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김문수를 누가 지지하고 있는지를 보라. 윤석열의 쿠데타를 지지하며 서울 서부지법 경내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거리에서 반중·혐중 시위를 벌이는 기층 극우 서민들(소상공인, 무직자 등)이다. 극우 운동은 군사 쿠데타(미수)와 서부지법 폭동 등을 계기로 대중 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앞산을 넘은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 산맥이 기다리고 있다.
극우의 부상은 자본주의 위기의 표현이자 그 결과다. 한국의 자영업자 폐업 신고자 수는 연간 100만 명에 이른다. 올해 첫 두 달 동안에만 자영업자 20만 명이 폐업했다.
경제 위기가 가한 고통에 미쳐 버릴 지경이 돼 버린 중간계급 사람들은 극우 운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지난 1월 서울 서부지법 경내 폭동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절반이 자영업자였다.
대항적 대중 운동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극우에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 극우는 노동계급의 수동성과 사기저하에 의존한다. 반면, 대중 동원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키워 준다.
사태는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평화롭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민중전선의 정치가 주도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곧 우리 편의 패배를 예비하는 것이다.
극우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행동, 특히 최대한의 단결 행동이 필요하다. 민중전선이 아니라 공동전선을 착실하게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