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의 으름장 뒤에 있는 냉혹한 지정학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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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을 대표할 사진은 백악관 집무실에 모인 유럽 지도자들이 상석에 앉은 트럼프를 일제히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트럼프 측근들은 “교장 선생님이 문제아들을 불러들인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이 사진은 프랑스인 학자 질 그레사니가 말한 유럽 국가들의 “행복한 속국 콤플렉스”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레사니는 7월 유럽연합이 트럼프의 관세 요구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을 놓고 이렇게 논평했다. “이는 유럽연합이라는 경제적 거인이 정치적으로는 난쟁이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이 난쟁이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 투쟁을 벌이거나 일관된 전략적 우선 순위를 분명하게 제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물론 기본적인 세력 관계는 80년 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래 그다지 변한 게 없다. 나토가 창설된 것은 서유럽 자본주의가 소련을 억제하려면 미국의 군사력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임 미국 정부들은 유럽 동맹국들과 가끔 대립하면서도 립서비스로 그들의 체면을 세워 주려 했다.
트럼프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대방을 겁박하는 광경이 생중계되는 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유럽인들(‘행복한 신하’ 대표 주자인 영국 노동당 정부의 총리 키어 스타머 포함)은 여전히 미국을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이 트럼프의 관세 요구에 굴복한 이유 하나는 자신들이 중국처럼 미국에 대들다가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보장을 그가 사실상 철회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이 고분고분한 유럽인들이 이번에 미국에 모인 이유도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협상으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내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만남에 앞서 트럼프는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했다. 그 회담에서 트럼프는 푸틴을 압박해 즉각 휴전을 이루겠다는 공언을 지키지 않았다. 그 공언을 두고 서방의 전쟁 지지론자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병합하고 나머지 지역도 종속국으로 만든다는 푸틴의 요구를 트럼프가 수락한 것이라는 혐의 제기가 쏟아져 나왔었다. 유럽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개입해 트럼프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트럼프가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부랴부랴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이 더 적극적 구실을 맡겠다는] 스타머의 “의지의 연합”이 전쟁을 지속하거나, 평화 협정을 관철시킬 군사력이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유럽은 트럼프와 미국 국가의 군사력이라는 “아빠”(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의 아첨)을 필요로 한다.
트럼프가 푸틴에 의존적이라고 주장하며 온갖 정신분석을 내놓는 자유주의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도 현실의 세력 관계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그리고 유혈낭자하게 계속 키우고 있다. 푸틴은 전장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수록, 협상장에서 양보할 이유도 줄어든다. 그래서 푸틴은 전쟁을 질질 끄는 것이 득이 된다.
둘째, 중국과 벌이는 세계적 수준의 제국주의 대결에서 트럼프 정부는 공공연히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 놓으려 하고 있다. 국방 분석가 퍼트리샤 마링스는 최근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과 달리 오늘날 미국 헤게모니를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13억이 넘는 인구와 튼실한 경제, 지구상 가장 큰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미국을 위협한다.
“미국은 중국이 진정한 적수라는 것, 특히 군사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이 시험 비행하는 차세대 전투기들은 미국보다 한 세대 앞서 있고, 중국이 발사하는 미사일들도 한 세대 앞서 있다. 해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의 건조 능력은 엄청나고 러시아와 합산하면 세계 군함 건조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수도 있다.
“미국은 산업 혁신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기술 격차를 관리해야 한다. 러시아를 중국과 떼어 놓는 것은 거기에 일조할 것이다.
“중국 군대는 여전히 몇몇 부문에서 러시아산 기술과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는 “미묘한 상호의존 관계이고, 서방의 제재로 더 강화됐다.”
이렇듯 트럼프가 [유럽을 향해] 큰소리치는 것 이면에는 중러 동반자 관계를 깨뜨리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냉혹한 지정학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푸틴이 중국을 저버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국 자본이 러시아의 동쪽 끝 인구가 희박한 시베리아 지역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 거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서방이 자신의 경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경험은 중국 곁에 머물 강력한 동기가 된다.
강대국들의 이런 세력 다툼 속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장기판의 가장 하찮은 말 취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