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참석 앞둔:
이재명 대통령 앞에 놓인 난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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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이 8월 25일 열릴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82일 만에 트럼프와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동안 트럼프는 한국이 “무임승차”를 그만하고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부담을 더 지라고 요구해 왔다. 그 요구는 한국인들이 보기에 모두 위험하며 큰 부담을 지게 되는 것투성이인데, 이것들이 이번 회담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8월 9일 〈워싱턴 포스트〉는 관세 협상에서 한국에 제시할 안보 관련 요구들이 포함된 트럼프 정부 내부 문서를 보도했다. 거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의 2.6퍼센트 수준(66조 원)의 국방 지출을 3.8퍼센트(97조 원)로 늘릴 것, 방위비분담금(주한미군 주둔 지원금) 증액, 대중국 억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지지 성명 발표 등이 있었다.
관세 협상에서 이 요구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과 그 후속 협의에서 분명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는 곧 미국에 올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동맹 재조정에 동의해 주기를 원한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에 집중하도록 조정하고, 한국이 동맹에 대한 기여를 더 늘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모두 커다란 후과를 초래할 요구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돼 대만해협 위기 시 한국군이 미군을 지원하게 된다면, 한국인들은 원치 않아도 그 위기에 곧장 휘말리게 된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한국 보호가 아니라면, 왜 한국인들은 그들의 주둔을 용인해야 할까? 막대한 지원금(방위비 분담금)까지 매년 퍼 주면서 말이다. 또한 한국은 대북 위협에 자체적으로 대응하며 막대한 군사비 부담까지 짊어져야 한다.

미국의 의도대로 모든 게 잘 풀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재명 정부는 난처해 하면서도 타협안을 모색하고 있다. 7월 25일 〈중앙일보〉는 국방부의 ‘2025~2029 국방중기계획’을 입수해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의 자체 국방 계획상으로도 트럼프 임기 말에는 GDP 대비 국방예산이 3퍼센트를 초과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런 증액 계획이 백악관 측에 이미 전달된 걸로 안다’고 말했다.”
8월 3일 외교부 장관 조현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은 이웃 국가들과 다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 우리는 중국의 부상과 도전에 상당히 경계심을 갖게 됐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도 말했으나 분명 미국·일본과의 협력 강화에 더 기운 발언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요구와 타협한다면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부담과 위험이 될 것이다.
군사주의
〈한겨레〉 등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타 지역 전개 시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는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고 아예 전제한 것인 데다가, 위험을 통제하는 데서는 근본적으로 너무 취약한 제안이다. 위기가 본격화되면 미국이 종이 쪼가리에 쓰인 문구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보 요구를 우려하면서도 이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자강’의 기회로 삼자고 적극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의 압박에 맞서 ‘자주 국방’을 하자는 논리로 이어지기 쉽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이 한반도 안보의 주역이 된다면 방위예산 증액에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다.”(8월 11일자 사설에서)
그러나 이 ‘자강’은 앞서 봤듯이 트럼프가 바로 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지정학적 경쟁을 격화시키며 그 위험 증대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군비 증강은 의료, 복지, 교육 등 서민에게 필요한 예산을 크게 압박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핵탄두 프로그램에만 150억 파운드를 쓴다고 하는데, 50억 파운드의 복지 예산이 삭감되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들도 문을 닫고 있다.
적잖은 한국 좌파들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이재명 정부를 향해 “국민을 믿고 당당히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 자신이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 협력하며 노동계급에 고통을 떠넘길 태세가 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를 (비판적일지라도) 응원하는 자세로는 활동가와 노동자들에게 문제의 핵심을 미리 경고하고 대응을 준비시킬 수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평화를 유지하면서 미국 제국주의의 요구에 타협하는 중간선을 찾기는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에 대응해 자강과 국익 논리로도 노동자 등 서민의 희생을 강요할 정부 정책에 제대로 맞서기 어렵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낳는 혼란과 위기, 그리고 한미동맹 강화의 위험 등에 맞서 올바른 반제국주의 입장을 수립할 필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관세 협상의 동상이몽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또한 관세 협상 타결의 후속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지난 협상 결과에 한국 기업인들 다수는 안도했다. 유럽연합·일본과 같은 수준의 관세율이면 미국 시장을 두고 경쟁해 볼 만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미국과 합의한 3500억 달러 투자금은 조선,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서 미국에 진출할 기회로 본다. 이미 조선업체 ‘빅3’인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한미 조선 협력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미국 기업과의 협력 모색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지만 협상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세부 사항들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문도 없어서 이미 합의 결과에 대한 양국 정부의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농축산물 개방을 놓고 두 정부의 말이 다르고, 대미 투자와 그 수익 배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한국은 트럼프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반도체 관세가 한미 합의대로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등 미국이 제기해 온 ‘비관세 장벽’ 쟁점들도 아직 살아 있다.
한미정상회담과 이후에도 통상 문제에서 양국 간 이견이 불거질 공산이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과 국민의힘 모두 관세 협상의 후속 조처로 관세로 피해를 입는 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데 나서고 있다. 가령 민주당과 국힘 등 의원 106명이 한국 철강기업들에 세금 감면, 보조금 지원을 담은 ‘K-스틸법’을 공동 발의했다.
그러나 이런 기업 지원 강화는 경제 불황 지속 상황에서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와 기업가들은 트럼프의 관세·안보 압박에 따른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한편, 좌파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경제 수탈”이라고 비판하며 거기에 맞서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좌파적 “국익”론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등 서민의 이익을 가리키고, 국가가 이들의 이익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에 맞서 경제·안보 주권을 방어해야 서민들의 일자리, 먹거리, 소득 등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좌파 측의 국익론에도 모순과 한계가 많다. 한국인의 ‘공통 이익(국익)’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게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는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모호한 국익론에 따라 미국과의 관세·안보 현안에서 이재명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선다면 노동계급의 이익을 일관되게 방어할 수 없다. 노동계급 이익을 확고히 추구해야 노동계급의 투쟁이 전진할 수 있고, 노동계급 투쟁이 전진해야만 나머지 서민들의 삶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