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비판은 한국의 대미 협력 방침 비판과 함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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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조지아 주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가 보여 준 트럼프 정부의 야만적 인종차별”을 읽으시오.
이번 사태 후 미국 주류 언론 등에서도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이민 단속이 미국 경제에 해롭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맹국의 대형 투자자를 괴롭혔다가 자칫 미국도 경제·안보에서 손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제조업 노동력의 주된 풀이고, 미국 내 숙련 노동력도 부족한 현실도 감안하라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말도 오락가락했다. 사건 초기에 “할 일을 했다”던 트럼프는 최근에는 반도체·선박 등을 거론하며 “다른 나라나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겁먹게 하거나 의욕을 꺾고 싶지 않다. ...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LG,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 대미 투자 한국 기업들을 의식한 듯하다.
세계 경제의 불균등 발전으로 한미 경제관계에도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미국 경제의 상대적 쇠락을 메울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해양력을 강화할 역량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점을 활용해 미국에 더 많은 양보(비자와 관세 협상 등)를 받아 내자는 의견이 만만찮다.
그런데 최근 한국 내 좌파 일각에서는 대미 투자 유보·철회론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민주노총은 대미 투자를 철회하고, 그 자금을 “국내 투자, 기술 경쟁력 강화, 일자리 안정 대책에 투입”하라고 주장한다.

역시 국익론의 일환인 이런 좌파 애국론(민족주의)은 국내에서 계급협조주의를 강화하고 국제적으로 노동계급 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 노조 운동은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한국의 대미 투자 유치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노조 지도자들도 (일자리를 이유로) 국내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한미 양국 간 노동자들의 갈등을 키우는 일이다.(좌파 일각에서조차 한국도 보복으로 미국 국적의 불법 취업자들을 찾아내 추방하자는 반동적 제안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맥락이다.)
이런 애국 논리는 계급협조주의를 키운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도 더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저항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미국 투자 철회와 한국 투자 증대는 수출 시장 다변화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면 곧바로 투쟁 자제, 임금 억제, 고용 유연화(쉬운 해고)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 유치의 대가로 노동조건 하향화에 합의한 현대차 계열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 사례가 있다.
미국의 해군력 증강을 위해 추진되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 좌파가 반대해야 하는데도 정작 한국 내에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에 따라 반대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좌파 일각의 대미 투자 철회론에는 미국의 대미 투자 요구가 한국에 대한 ‘수탈’이라고 보는 시각도 깔려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정책들이 좀 못마땅한 면이 있어도 대미 투자로 이윤을 낼 수 있다고 보고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윤은 당장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이익뿐만 아니라 더 일반적인 세계 시장을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먼저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나서고,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협력해 미국에 조선업 협력(마스가)를 제안한 것도 모두 능동적으로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노리고 추진한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AI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급협조주의가 전제될 수밖에 없는 ‘국내 투자 유치’를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독립성을 해치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걸림돌을 만드는 일일 뿐이다. 미국 제국주의에 협조하는 한국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도 힘들다.
지금 한국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단지 트럼프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하게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제국주의 강화에 협조하면서도 나름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에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적은 국내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