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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제국주의, 경비견 이스라엘

이 기사는 2월 14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중동과 제국주의, 경비견 이스라엘 ─ 직접 폭격 늘리는 미국, 이-팔 전쟁 확전될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일어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미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는 1948년 나크바 대재앙을 능가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스라엘은 피란민 140만 명이 내몰린 가자 남부 라파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은 거센 반발을 불렀고, 그래서 이스라엘과 서방 정부들은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인종 학살을 중단하라고 결정한 일은 이스라엘과 서방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곤경을 겪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동에 배치된 군사력도 지난해 10월 이후 증강했고, 이제 예멘·시리아·이라크를 직접 폭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확전 우려는 더 커졌습니다.

미국은 왜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계속 비호할까요? 그리고 왜 심지어 확전 위험을 무릅쓰고 중동에서 군사 행동을 계속 벌이는 것일까요?

오늘 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 관계를 비롯해, 화약고가 된 중동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중동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을 이해하려면,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중동에 걸린 미국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새로운 패권국이 된 미국에 중동의 석유는 매우 중요한 전리품이었습니다. 미국 석유 회사들은 걸프 연안에서 엄청난 수입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석유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고, 서방 경제들은 중동의 값싸고 풍부한 석유에 의존해 성장해 왔습니다. 따라서 중동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 유지와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했습니다. 중동에서의 자국 이익을 지키는 데서 이스라엘 같은 동맹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미국 트루먼 정부는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국가 수립을 선포하자 11분 만에 이스라엘 국가를 승인했습니다. 그렇게 트루먼은 이스라엘이 학살과 공포로 팔레스타인 사람 75만 명을 추방한 것을 용인했던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유대인 로비’의 영향으로 미국이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했고 이후 지원을 계속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거꾸로 본 것입니다. 미국은 단지 로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해 왔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간섭, 아랍 민족주의의 발흥 등 자국의 중동 지배에 대한 도전을 막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중동에 이스라엘 같은 동맹국이 특히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자신이 미국에 유용한 동맹임을 입증하려고 애써, 건국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과 밀착하며 서방 진영의 일부가 됐습니다.

특히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단숨에 격파하며 중동에서 미국에 반항하는 세력을 응징할 능력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때 미국 지배자들은 이스라엘의 존재가 미국 국가의 커다란 전략적 이익임을 완전히 확신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친미 왕정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중요한 동맹인 이란을 잃어 버렸습니다. 미국의 중동 전략에서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그때 미국의 대이스라엘 원조액은 사상 가장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지키고 이에 대한 도전을 처리하는 구실을 하면서, 서방의 “경비견”으로 자리매김돼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어느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았습니다. 1946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원조는 총 2970억 달러가 넘습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부유하고 강력한 군사 강국이 됐습니다.

오늘날의 미국과 이스라엘

오늘날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은 여전합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그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이해관계를 확실히 지키기 위해 비슷한 것을 하나 만들어 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국가의 관계에 일부 변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원조가 1981년에는 이스라엘 경제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했지만, 2020년에는 1퍼센트로 그 비중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즉, 오늘날 이스라엘 경제는 더는 미국 등 해외 원조에 크게 의존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협력은 꾸준히 강화돼 왔습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은 이스라엘의 군국주의를 키웠고, 경제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세계 12위의 무기 수출국이고, 그 군사 부문에 결합된 첨단 산업은 지난 20년간 이스라엘 경제의 엔진 구실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이스라엘 첨단 산업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이스라엘이 인종 분리 정책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소규모의 숙련 노동력이 필요한 첨단 산업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이스라엘 정치가 쉽게 우경화된 배경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과 타협하지 말고 모두 쫓아내야 한다는 극우의 목소리가 커져 왔습니다. 이스라엘 정치의 우경화는 다른 요인들과 맞물려 이스라엘이 전보다 더 공세적이고 난폭한 행태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 ‘다른 요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중동과 제국주의의 위기

이스라엘의 이런 공세적 행보는 비단 이스라엘 국내의 변화뿐 아니라 중동 질서의 변화와도 관련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제국주의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예전과 같은 압도적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반면 지난 20년 사이에 ‘나머지들’의 부상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중국과 러시아 등 새로운 강자들은 경제적으로 성장한 만큼 세계 정치에서 자신의 몫을 더 차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불안정이 커져 왔습니다.

이 상황은 중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중동에서 미국의 통제력은 점점 약화돼 왔습니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대실패한 타격이 컸습니다.

반면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급격히 커져, 미국 전략가들의 근심이 커졌습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다른 지역 강국들도 역내에서 각자 영향력을 키우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중국의 입김이 중동 내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걸프 연안 국가들에 가장 큰 투자자이자, 가스·석유의 최대 수출 시장이며, 5G 등 첨단 기술 제공자입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 산유국들을 브릭스(BRICS)에 가입시키는 등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책략을 부리며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도 시리아와 리비아에 개입하며 중동에서 미국이 약화된 공백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갈수록 중동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간 미국은 중국 때문에 인도-태평양 지역에 역량을 집중하고 싶어 하면서도, 중동에서 통제력을 지키기 위한 군사 행동을 해야 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경우, 나토를 동원해 리비아에 개입했고, 중동에서 500번 이상의 드론 공격을 벌여 수천 명을 죽였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 수장 솔레이마니를 표적 살해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중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려고 이스라엘과 아랍 정권들 사이의 수교를 적극 주선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란과 대립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책략들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완전히 뒷전이었습니다. 수교 자체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빈살만은 이스라엘과 수교 논의 중 공공연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인은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더한층의 공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영토 병합과 인종 청소 의도를 드러냈고, 정착자들을 부추겨 팔레스타인인 마을을 공격하고 주민들을 쫓아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들이 벌인 저항은 이스라엘에 한 방 먹이고, 미국의 중동 전략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습니다.

이-팔 전쟁과 미국의 폭격

그래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주는 위협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신속하게 무기를 지원하는 한편, 항공모함 등을 추가로 중동에 파견하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란과 연계된 민병대들을 폭격했습니다. 이는 이란이나 헤즈볼라 등에 섣불리 전쟁에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장기화되면서 중동 전반에 전쟁이 확대될지도 모를 위험이 커져 왔습니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소규모 충돌이 잦아졌고, 홍해에서는 예멘 후티의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가 막혔습니다. 중동 내 미군 기지도 친이란 민병대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과 함께 예멘을 폭격하고 있고, 요르단 내 미군 기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와 이라크를 대대적으로 폭격하는 등 “다단계 대응”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바이든 정부는 중동에서 확전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중국 견제를 우선하는 자신의 전략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미국의 바람대로 흐를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앞서 봤듯이, 중동은 정말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많은 곳입니다. 가령 미국의 제한적 공격이더라도 이란은 그 나름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미국의 군사 행동 확대가 다른 우연적 변수와 맞물려 예기치 않은 위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바이든은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압력도 국내에서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유약하고 [이란에] 굴복”해 미군이 공격받았다고 비난했습니다. 일부 공화당 우익 정치인들은 이란을 직접 타격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대선 때문에 바이든은 이런 압력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요컨대 지금 바이든 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난제를 풀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중동 곳곳에서 제기된 도전들을 제압하기 위해 공세를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2000년대처럼 중동 전쟁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권력자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중동에서 광범한 반제국주의 항쟁의 뇌관으로 작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를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 반란으로 중동의 친미 정권들이 위기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 때문에 바이든이 종종 네타냐후와 의견 충돌을 빚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훗날 미국의 장기적 쇠퇴가 가속된 중요한 계기로 기억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절대로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온갖 책략과 무력 행사로 해당 지역을 끔찍한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리비아와 시리아 꼴을 보십시오.

팔레스타인과 중동 문제의 진정한 해법

이제 중동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한 해법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중동은 미·중·러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현지의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 그 밖의 다른 여러 정치 세력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얽히고설킨 화약고입니다. 그리고 이들 간의 갈등과 경쟁의 기저에는 자본주의의 경쟁적 축적 논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제국주의의 경비견인 이스라엘 국가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중동에서의 제국주의와 충돌합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해방되려면 중동의 기존 질서 전체, 즉 이스라엘, 제국주의 열강, 그 아랍 동맹국들과 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온건 좌파들은 ‘국제 사회’와 중동 내 당사자들의 대화와 협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 평화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두 국가 방안’을 불가피하게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국제 사회’는 미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름잡는 공간이고, 바로 그들이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비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열강이 ‘국제 사회’의 합의를 어겨도 ‘국제 사회’는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가령 팔레스타인을 놓고 ‘국제 사회’가 합의한 평화 프로세스는 오슬로 협정처럼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나거나, 아니면 이란 핵합의처럼 제국주의 강대국의 변심에 따라 금세 휴지조각이 돼 왔습니다.

다른 한편, 좀 더 급진적인 좌파들은 중국, 러시아, 이란 같은 소위 ‘반미’ 국가들의 구실을 기대합니다. 그 국가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주를 견제해 중동에 상대적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중동에서의 제국주의나 아류 제국주의의 일부입니다. 러시아와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 관여해 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원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이스라엘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였습니다.

중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봐야 합니다. 2017년 중국은 네타냐후 정부와 동반자 관계를 맺기로 하는 등 우호 관계였습니다. 중국은 이스라엘에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한 국가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학살을 비난했지만, 이런 경제적 유대를 청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반제국주의 사상과 운동으로 끌어들일 동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에서 더 광범한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1~13년 아랍 혁명 때,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는 거리로 나온 아랍인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킨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온주의에 타협하는 자국 정권을 맹비난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미국과 아랍 권력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점입니다.

그 걱정이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의 저항, 아랍 민중의 혁명적 투쟁, 그리고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연대해 중동에서 시온주의와 제국주의를 패퇴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제주의적 전망을 지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