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네타냐후의 화음 속 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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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갈등은 하마스 제거 방안을 둘러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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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 보도가 많다.
바이든과 네타냐후가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3월 25일(이하 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라마단 기간 즉각 휴전’ 결의안을 표결할 때 미국은 기권했다(본지에 실린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안 채택: 라파흐 지상전 앞둔 이스라엘에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보시오).
그러자 네타냐후는 미국에 파견하기로 했던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애초 이스라엘은 미국 정부의 (라파흐 지상전이 아닌) 대안적 하마스 제거 작전을 논의하기 위해 이번 주에 고위 당국자들을 미국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전부터 바이든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과 전후 처리 방식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바이든은 네타냐후가 라파흐 지상전을 승인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을 더욱 고립시키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 달 만에 이뤄진 이스라엘 지도자와의 통화에서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의 라파흐 지상전 수행 계획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라파흐는 이스라엘군이 점령하지 못한 가자지구 남부의 마지막 인구 밀집 지역이다.”(3월 19일 자)
라파흐는 이스라엘이 점령하지 못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봉쇄하고 있지만 말이다.
가자지구 사람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인도적 지원도 대부분 라파흐를 통과한다.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하기 전 라파흐 인구는 약 25만 명이었다. 지금은 140만 명이 밀집해 있는 가자지구 최대 피란민 대피소가 됐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시작해도 이들에게는 탈출로가 없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라파흐 지상전 계획에 불안감을 나타냈다. 라파흐 지상전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등 서방)이 역풍을 맞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팔레스타인인 3만 2226명을 학살했다(3월 24일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지만, 그로 인해 ‘정당방위’라는 이스라엘의 전쟁 합리화 논리는 산산이 깨졌다.
그래서 미국은 민간인 ‘보호’ 계획을 먼저 제시하라고 이스라엘에 촉구했던 것이다.
미국은 네타냐후가 라파흐의 피란민들을 소개한 뒤 하마스를 섬멸하는 작전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이렇듯 바이든(그리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유럽연합)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생명과 인종 학살 종식에 관심이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그래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기아 작전으로 영유아가 굶어죽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병원들을 무참하게 공격해도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편든다.
네타냐후가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취소했지만, 미국은 현재 방미 중인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와 하마스 제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요컨대, 바이든과 네타냐후는 하마스 제거 방법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을 뿐이다.
대들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굳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중동 통제 유지 전략과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프로젝트가 충돌할 때도 있었다.
1996년,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당시 신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와 처음 만난 뒤 이렇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여기서 초강대국은 누구입니까?”(〈파이낸셜 타임스〉 3월 19일 자). 클린턴은 네타냐후의 오만한 태도에 격분했다.
1991년에도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1세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강행에 제동을 걸려고 대(對)이스라엘 차관 보증을 중단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이츠하크 샤미르였고 네타냐후는 외무차관이었다.
부시 1세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이 1991년 1~2월 대이라크 걸프 전쟁 승리 후 미국이 구축하려는 중동 질서에 차질을 줄까 봐 차관 보증을 중단했던 것이다. 결국 샤미르는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통제력이 약화돼 온 만큼 이스라엘의 구실이 미국에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 지대인 중동에서 단지 미국의 우방 정도가 아니다. 미국의 중동 지배를 떠받치는 “대들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도 대들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대들보는 이스라엘이다.
미국 권력자들의 마음에 꽉 차지 않더라도 이 대들보가 무너지면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 구축해 온 중동 지배 질서가 와르르 붕괴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두고 언론들이 “바이든이 네타냐후에게 뺨을 맞고 있다”고만 보도하는 것은 피상적이다(이 말은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크리스 반 홀렌이 했다).
결국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을 통제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수조 원에 이르는 미국의 지원 없이는 이웃 아랍 국가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력 우위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국의 무기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스라엘은 미국 등 서방의 더 광범한 제국주의적 프로젝트의 중요한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
시간 벌기
미국 등 서방의 권력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21세기에 자행되고 있는 전례 없는 인도적 재앙이 아니다.
서방 권력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방 정부들까지 위협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3월 14일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가 네타냐후를 작심하고 비판한 것이다.
척 슈머는 민주당의 유대계 최고위 인사다. 그는 지난해 10월 7일 공격 직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등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한 동맹자로 자처하는 자다. 그런 자가 네타냐후 내각의 교체를 촉구했다.
“네타냐후의 연립 정부는 10월 7일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는 (완전히) 바뀌었고 이스라엘인들은 그들 정부의 비전과 방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현 연정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면] … 미국은 현재의 노선을 바꾸기 위해 우리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스라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이든은 척 슈머를 지지했다. “그는 좋은 연설을 했다. 많은 미국인이 공유하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스라엘 정부는 격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바이든은 “입지를 흔들려는 것은 아니”라며 네타냐후를 달랬다.
미국은 지금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행위와 다소 거리를 두려 한다.
이를 위해 “언론 플레이”도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얼마 전에 미국이 “이르면 몇 주 안에”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미국은 낙하산으로 식량을 가자지구에 공중 투하하고 인도적 해상 통로를 연다.
그러나 무기 제공 중단 등 미국이 이스라엘에 실질적인 압력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미국이 지난주 금요일(3월 22일) 유엔 안보리에 ‘휴전’ 결의안을 제출한 것도 이스라엘에 실질적 압력을 가하지 않으려는 기만책이었다. 이 결의안은 휴전이라는 표현만 썼을 뿐, 실제로는 휴전을 촉구하지 않았다.(본지에 실린 ‘미국, 안보리에 “휴전” 결의안 제출?: 휴전 지지한다면서 휴전 요구하지 않는 위선’을 보시오)
바이든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위선적인 걱정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벌려 한다. 그 사이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사그라들기를 바란다. 그러면 7개월 뒤에 있을 대선에서 재선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