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국제 행동의 날 대행진:
이스라엘의 라파흐 폭격을 규탄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2월 17~18일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맞서 세계적 연대를 호소한 기간이다. 한국에서도 국제 행동의 날 대행진이 17일(토) 서울에서 진행됐다.
재한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이주민, 국내 단체 39곳이 함께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이 행진을 주최했다.(‘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 행동이었던 1월 13일 집회·행진도 주최한 바 있다.)
500여 명이 참가한 이날 대행진은 시작부터 고양되는 국제 연대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집회와 행진에 앞서 오후 1시부터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사전 행사에는 출신과 국적이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한 물품과 액티비티를 준비해 와서 부스를 차렸다. 페이스 페인팅, 팔레스타인에 연대 메시지 보내기, 직접 만든 영상 상영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한 참가자는 손 뜨개질로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장식을 직접 떠 와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집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뿐 아니라 내·외국인 행인들도 발길을 멈추고 관심을 기울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관광객은 부스에서 연대 메시지를 받고 있던 이가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인을 제대로 위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어 슬프지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도 이렇게 연대 행동이 있다니 기쁘기도 하다고 했다.
교사 참가자들은 학교노동자들, 학생들이 찍은 개인 인증샷을 모아서 전시하며 학교에서의 연대 활동 소식을 전했다.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라는 외침이 쓰여진 현수막도 준비해 왔다.
‘촛불 풍물단’은 휘날리는 팔레스타인 깃발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경쾌한 풍물 연주로 흥을 돋웠다. 많은 행인들이 그 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다국적 참가자들이 많은 만큼 주최측은 사전 행사 때부터 ‘인권침해감시단’을 배치했다. 이 감시단은 최근 정부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을 보내 이주민·난민을 사찰·감시하는 것에 맞서 그들의 정치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대응이었다.
국제 연대의 열기는 집회로도 이어졌다.
사회자는 집회 시작을 알리면서 “오늘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와 행진이 벌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부답게, 국제 행동의 날 런던 집회 주최 단체 중 하나인 영국 전쟁저지연합(StWC)의 사무총장과 공동의장이 서울로 보내 온 연대 메시지가 전해졌다. 전쟁저지연합은 영국 런던에서 100만 명 가까이 모여, 팔레스타인 연대를 “혐오 행진”이라 비난하는 정치인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였다며,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도 “모든 성공을 기원”했다.
국제 연대 메시지를 대독한 ‘아시아의 친구들’ 차미경 대표는 “겨울부터 오늘까지 … 저희가 함께했던 마음으로 팔레스타인에도 봄날의 소식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집회 참가자들에게서는 흥겨움과 함께 분노와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지난 한 주간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라파흐에 몰아넣고 죽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며 슬퍼하고 또 분노했다. 매주 지역에서 행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다는 한 집회 참가자는 라파흐 공격이 시작된 후 거리에서는 “평소보다 더 일찍 유인물이 동이 났다”며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고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라파흐 공격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스라엘은 라파 공격을 즉각 멈춰라!”, “이스라엘은 인종학살 즉각 멈춰라!”, “인종학살 공범 미국 정부 규탄한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며 발언한 팔레스타인인 유학생 나리만 씨는, 지배자들의 위선을 꿰뚫는 발언으로 참가자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지금 전 세계 지도자들은 가자지구에서 인도적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며 어떻게 구호품을 전달할까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호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만든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얘기, 전쟁을 멈추자는 얘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구호품을 받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이 쫓겨난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 나라를 되찾는 것입니다.”
이어서 발언한 이집트인 무함마드 사이드 씨는 아랍 지배자들의 배신을 꼬집었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이웃 나라인 이집트의 대통령 압둘팟타흐 엘시시는 가자지구를 봉쇄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학살 하는 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이드 씨는 “아랍 지배자들은 모두 배신자들이고, 거기서 살고 있는 아랍 민중들은 [그 밑에서] 억압받고 있다”며, 아랍과 한국 모두에서 각국의 지배자들과는 다른 대응을 보여 주자고 호소했다.
행진에 나가기 앞서 전국공무원노조 서울본부, 나눔문화,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이 결의문을 읽었다. 외국인 참가자들을 위해 핵심 요구를 아랍어와 영어로도 공유했다.
대행진
집회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낭독한 후 본격적으로 대행진에 나섰다. 이날 대행진 모습은 알자지라를 통해 중동 등지의 아랍어 사용자들에게도 전해졌다.
대열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주한 미국 대사관 앞을 거쳐 인사동-명동-서울시청-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까지 말 그대로 도심을 누비며 행진했다.
대열은 주한 미국 대사관 앞을 지날 때 “조 바이든, 학살 공범!” 구호를 크게 외쳤다. 유엔난민기구 서울지부 인근을 지날 때는, 난민구호기구(UNRWA) 지원을 중단해 가자 주민들을 기아와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을 강하게 규탄했다.
행진은 시종일관 활력이 넘쳤다. 참가자들은 다채로운 팻말을 치켜들고 리듬감 있는 구호를 연거푸 외쳤다. 힘찬 북·부부젤라 소리는 행진의 활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따뜻해진 날씨 속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행진 대열에 대한 호응도 컸다.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는 행인들, 환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를 그려 보이거나 엄지를 치켜들고 연대를 표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 여성들 일행이 주최측이 나눠 주는 팻말을 받아들고 즉석에서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인사동·명동 일대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에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부모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런 우호적인 거리 분위기 덕분에 짧지 않은 행진 코스였음에도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이 거의 없었다.
대열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 도착해 “학살 전범 네타냐후”와 “학살 공범 바이든”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때 한 아랍인 참가자가 네타냐후와 바이든의 얼굴이 그려진 팻말을 신발로 내려치는 모습은 속 시원한 장면이었다.(아랍권에서 신발을 집어 던진다는 것은 상대가 밑바닥보다 못하다는 의사 표현으로, 가장 모욕을 주는 행위로 여겨진다.)
참가자들은 다음 집회가 열리는 2월 24일(토) 오후 2시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모이기로 다짐하며 국제 행동의 날 대행진을 마무리했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지배자들이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이스라엘을 지원하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못 본 척 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세계 각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목소리와 자신감은 커지고 있”다(2·17 국제 행동의 날(서울) 결의문). 한국에서도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계속 힘차게 키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