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운동:
방학 동안에도 투쟁을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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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정치 위기를 돌파하려고 군사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벌집을 건드렸다.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당연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광범한 대학생들의 정의감을 자극한 것이다.
지나간 역사라고만 생각했던 계엄령이 선포되자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12월 3일 밤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가 맨몸으로 장갑차와 계엄군을 막은 수천 명의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을 보며 ‘나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대거 생겨났다.
학생들 사이에서 윤석열 퇴진 정서가 급속히 커졌다. 빠르게 확산되는 학생들의 분노를 모아 내려는 노력이 결합돼, 학생 운동의 물결이 오랜만에 다시 일었다.
계엄령 해제 직후인 12월 4일 아침부터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을 비롯해 일단의 좌파 학생들은 학내에서 대자보를 부착하고 리플릿을 반포하며 윤석열 퇴진 투쟁 동참을 호소했다. 학내에서 집회를 조직하며 학생들 사이에서 윤석열 퇴진 투쟁을 확산시키려고 분투했다.
총학생회가 나서다
학생들이 윤석열 퇴진 투쟁에 대거 참가한 것에는 총학생회들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여러 대학의 총학생회들은 학생 총회를 개최했다. 학생 총회들에는 2000~27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윤석열에 맞설 것을 결의했다.
학생 총회를 개최한 대학을 비롯해 30여 개 대학의 총학생회들은 12월 13일 대학생 총궐기 집회도 성공적으로 열었다. 쿠데타 직전까지 학내 점거 투쟁을 벌인 동덕여대 총학생회도 참가했다.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50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서울 신촌에 모여 윤석열 퇴진 구호를 외쳤다. 집회 직전에 막 학생 총회를 성사시킨 이화여대 학생들 800명이 집회장으로 행진해 들어오는 장면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대학생 총궐기는 12월 14일 탄핵소추안 표결일을 앞두고 학생들의 커다란 분노를 보여 줬다. 10여 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열린 학생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해 낸 총학생회 활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전 세대가 참가하고 있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도 대학생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12월 7일과 12월 14일 2주 연속 수많은 대학생들이 여의도로 모였다. 50만~100만 명이 참가한 집회들에서 절반 가량이 청년·학생들이었다.
그간 대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학업과 알바에 치이는 삶, 끝없는 경쟁 압력, 미래에 대한 불안이 청년들을 괴롭혔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실망과 환멸 속에 이렇다 할 대안도 보이지 않아, 지난 수년간 20대의 정치적 관심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격동의 2주를 보내며 대학생들은 지금 정치화하고 있는 듯하다.
12월 7일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리라 기대하고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수많은 학생들은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에 분노했다. 학생들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국힘 해체”를 외쳤고, 일부는 국힘당 당사 앞으로 달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이제 국힘당은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쿠데타 동조 세력으로 각인됐다.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여의도로 모인 학생들은 환호했다. 또, 자신을 비롯해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변화를 이뤄 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적잖은 대학생들이 탄핵소추안 가결 뒤로도 계속 거리로 나오고 있다. 촛불행동이 12월 15일부터 매일 개최하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는 청년·학생들의 응원봉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을 완전히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조금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주도면밀하게 쿠데타를 준비해 왔던 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동안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윤석열과 그 일당을 모두 끌어내릴 때까지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방학 동안에도 (계절학기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을 이용해) 많은 학생들이 윤석열 퇴진 투쟁에 참가하도록 하자.
글로벌 학생 운동
윤석열에 맞서는 한국 대학생들의 투쟁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올해 4월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으로 번진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농성은 학살 국가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고, 이스라엘을 지원해 온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정치 생명을 끝장냈다.
한국에서도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작지만 단결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건설해 왔다. 올해 1학기 서울대에서 벌어진 6주간의 팔레스타인 연대 텐트 농성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텐트 시위, 학내 행진, 토론회 등 다양한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벌어진 대학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우리도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던 학생들은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도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7~8월 방글라데시에서 독재자를 축출한 거대한 반정부 시위에서도 학생들이 앞장섰다. 방글라데시 학생들은 군경의 유혈 진압에도 엄청난 용기로 맞서 싸우며 끝내 독재자 하시나를 몰아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뿐 아니라 극우·파시스트에 맞선 운동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학생 운동은 노동계급 투쟁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학생들의 투쟁이 거대한 반란의 기폭제 구실을 한 사례가 많다.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곧이어 6월에 노동자 1천만 명이 참가한 당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미국 대학생들의 저항은 거대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촉발했다. 미국의 반전 운동은 미국 제국주의(게다가 베트남인들의 민족 해방 투쟁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함께) 주도했던 1987년 6월항쟁은 7~8월 노동자 대파업으로 이어졌고, 이 노동자 파업 물결 때문에 전두환과 군부는 감히 쿠데타를 기도하지 못했다.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도 학생들은 더 크고 더 강력한 대중 투쟁을 촉발할 잠재력이 있다. 이미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을 기억하는 중장년들은 대학생들의 행동에 깊이 감명받으며 기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