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속 대학생의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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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전례 없이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제국의 심장부에서 강력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며 성장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 운동이 기폭제가 됐다.
미국의 약 130곳, 영국의 약 30곳, 그 외에 서방 세계 도처의 대학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 내 공간을 점거하고 연좌 농성을 벌였다. 서방 세계 바깥에서조차(심지어 한국에서조차) 이런 행동들이 있다. 글로벌 학생운동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학생운동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미국 학생운동은 이제 정부, 대학당국, 경찰 등 권력자들과도 싸우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의 신경질적 반응은 이 운동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됐다. 하버드대학교 당국은 일부 시위 참가자들의 졸업을 보류했다. 권력자들은 유대인 혐오라는 비방으로 운동을 억누르려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대학생 운동도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물결을 타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기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서울대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수박’의 농성을 소개하면서, “친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는 이제 미국을 넘어 영국과 독일 그리고 한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썼다.
서울대를 시작으로 고려대, 서울시립대, 연세대에서 텐트 연좌 농성이 벌어졌다. 텐트 농성장은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행동의 거점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캠퍼스 행동으로 관심이 높아진 덕분에 5월 15일 ‘대학생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 행동의 날’ 집회는 비가 억수로 오는 악천후 속에서도 200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모여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근래 벌어진 학생 시위 중 가장 큰 규모였고, 참가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이 상당했다.
국제적 학생 운동 규모에 견줘 보면, 한국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매우 작은 규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서구에 비해 매우 낮은 한국의 구체적 실정을 고려하면 그저 작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특징
대학 캠퍼스가 이처럼 저항의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20세기 초에만 해도 대학은 지배계급 자녀들의 훈련소였지만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사정이 점점 달라졌다. 자본주의가 확장되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기계와 기술을 가동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관리하고 다음 세대 노동자들을 양성하려면 잘 훈련된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의 훨씬 더 광범한 층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려고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일어났다.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1970년에 26.9퍼센트였지만 2023년에는 76.2퍼센트에 이르고, 학생 수는 300만 명이 넘는다.
대학 진학은 더 높은 지위와 더 나은 일자리, 더 나은 임금에 대한 기대로 현 체제를 더 지지하게 만들 수 있다. 대학은 자본주의하에서 ‘좋은’ 삶을 누리겠다는 열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염원이 충족되지 않을 때 대학은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고등교육이 확대되면서 캠퍼스는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경합하는 장이 됐고, 그런 상황에서 급진적 사상들도 번성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정치적 행동이 폭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달리 고된 노동규율에 매여 있지 않은 덕분이다.
학생들이 갈수록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조직과 운동을 건설하는 데 어렵사리 시간을 낼 수 있는 풀타임 노동자와 달리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그런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다.
학생들은 소수로도 싸울 수 있다. 텐트 농성은 일부의 학생만 움직여도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컬럼비아대학교를 비롯해 대학 텐트 농성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시작하면서 확대됐다.
그동안 글로벌 지배계급은 대학 시장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학생들에게 경쟁을 강요해 왔다. 그럼에도 대학생들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사회 세력이고 저항의 물꼬를 틀 잠재력이 있다. 지금 그들의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대중 행동의 기폭제
1968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한국의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 1989년 중국의 톈안먼 항쟁, 1998년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 퇴진 투쟁 등 학생들은 정권을 타도하거나 크게 위협하는 폭발적 투쟁을 종종 만들어 냈다.
학생들은 특히, 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때 둘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1987년 6월항쟁처럼). 1987년 6월항쟁은 7~8월 노동자 대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의 학생들은 더욱더 그런 사례다. 당시 프랑스의 대학가에서는 불만이 곪아터지고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었고, 형편없는 대학 시설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1968년 5월 파리의 소르본대학교에서 시위가 확대되고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자 대학 당국이 학교를 폐쇄했다. 경찰이 곤봉과 최루탄 가스를 쏘며 학생들을 공격했지만, 학생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정부는 결국 저항에 밀려 대학 휴교령을 해제하고 체포된 학생들을 석방했다. 학생들이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학생들이 보인 완강함과 용기는 프랑스 노동조합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 지지가 워낙 커서 프랑스의 가장 큰 두 노동조합 연맹인 노동총동맹(CGT)과 ‘노동자의 힘(FO)’은 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하루 파업을 지시해야 했다. 무려 100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고, 노동자들은 거기서 자신의 잠재력을 힐끗 자각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들은 학생들이 체제에 맞선 훨씬 광범한 반란을 자극하고 촉발할 능력이 있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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