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끝장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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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종북 세력,”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거듭 말했다. 쿠데타(미수)가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반민주적 폭거였음을 시인한 것이다.
쿠데타 기도 전에 이미 윤석열의 정치 위기는 심각했다. 지지율은 추락했고, 반윤석열 정서도 확산됐다. 11월 이후 반윤석열 집회는 매 주말 10만 명 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이처럼 윤석열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은,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들이 서민 대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리고, 세계와 한반도를 더한층 위험천만하게 만들고, 기후 위기 심화에 일조하고,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즉각 끌어내릴 뿐 아니라, 윤석열이 권력자와 기업주·부유층을 위해 추진하려 한 각종 개악도 좌절시켜야 한다.
고물가, 고금리, 생계비 상승
경제 위기로 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윤석열 집권 내내 실질임금이 삭감됐다.
실질임금이 3년째 하락하는 것은 1998년 IMF 위기와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금리를 계속 올려 가계 빚을 눈덩이처럼 키우고, 전기·가스·수도 요금을 대폭 인상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 억제로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보통 청년들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취업의 문은 더 좁아지고 양질의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생활고에 한숨이 팍팍 나오는데도 윤석열은 주 60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있는 노동시간 개악,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악을 추진하려고 했다.
생계비 위기에 대한 저항 탄압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생계비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부 솟구쳤다.
일부는 전국적 초점이 돼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냈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키웠다.
윤석열은 취임 초부터 노동자 투쟁을 탄압했다.
최소한의 운송료 보장을 요구한 화물연대 파업을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 재난”이라고 얼토당토않게 비난하고,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강경 탄압했다.
또,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공격하며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이에 대한 항의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가 ‘윤석열 정권을 무너트려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이번 계엄 포고령 1호도 특별히 노동자 운동을 겨냥해 “파업과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고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외면
윤석열 정부 들어 전세 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빠진 수만 명의 세입자들이 크나큰 고통을 겪고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말 그대로 “사회적 재난”이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가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해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약간의 이자와 임대주택 지원만 있었고, 떼인 전세금 반환은 한사코 거부당했다.
부자 감세와 재정 긴축
윤석열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재정 긴축을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복지 예산 삭감으로 빈곤층이 늘었다.
반면, 안 그래도 부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에게는 법인세·소득세·종부세를 대규모로 감면해 줬다. 기업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를 위해 규제 완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선물도 제공했다.
이 때문에 대주교와 주교 같은 고위 가톨릭 사제들도 최근 성명을 발표해, “배부른 극소수만 살찌게, 그 외는 모조리 나락에 빠뜨리는” 윤석열을 “파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태원 참사, 해병대원 죽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에 무관심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결정적 요인은 시국 치안과 마약 수사를 앞세운 윤석열과 경찰의 잘못된 우선순위 때문이었다. 그날, 정부가 기본적인 안전 조처만 취했어도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그 많은 청년들이 참담하게 희생되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경찰은 참사 4시간 전부터 이어진 112 신고 수십 통을 무시했고, 마약 단속과 윤석열 규탄 집회 통제에 경찰을 우선 배치했다.
참사 이후에도 윤석열은 “참사”라는 말을 못 쓰게 하거나 유가족을 통제·감시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고 대중의 분노를 단속하는 데 급급했다.
한편, 해병대 제1사단장이던 임성근의 지시로 급류가 흐르는 하천에 들어가는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한 해병대원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병대 지휘부는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안전 장비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과 국방부는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삭제하라며 외압을 가했다. 윤석열 정부와 군 고위 장교들이 평범한 사병들을 그저 소모품이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로 여긴다는 점이 비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한반도 긴장 고조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양의 포탄을 우회 지원했다. 한국이 지원한 포탄이 유럽 국가들이 제공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일조해 세계와 한국을 모두 더 위험하게 만드는 짓이다. 한국의 무기 지원은 러시아의 반발을 사면서 한반도 평화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또, 윤석열은 배상금 제3자 변제안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내동댕이쳤고, 일본의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를 용인했다. 일본 우익과 화해해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로 나아가려 한 것이다.
미·일 제국주의와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반발을 부르고, 지정학적 위험을 키우는 데 일조하는 짓이다.
여성 차별
윤석열은 대선 때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각종 정책에서 ‘성평등’ 삭제, 여성폭력 예산 대폭 삭감, 후기 임신중지 공격 등 성차별 문제에서 백래시를 거듭했다.
뒷걸음질 치는 기후 ‘대책’
윤석열은 여느 우파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기후 위기 해결에 관심이 없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미온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조차 ‘비현실적이고 기업에 부담이 된다’며 사실상 지키지 않으려 했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위험한 핵발전을 확대하려 한다. 그들은 값싼 전기 에너지를 기업주들에게 공급하고 핵 에너지(또, 그 무기) 기술을 개발하려고 핵발전에 매달리고 있다.
법·질서 내세운 권위주의
윤석열은 집권 초부터 국가기관 내부 단속에 먼저 신경을 썼다. 친민주당 인사들을 밀어낼 뿐만 아니라 억압적 국가기관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 여러 개악 추진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또, 거대한 반정부 시위에 대비해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경찰·검찰·국가정보원·국방부 등에서 격렬하게 숙정을 벌였다. 간첩 조작, 밀정 등 추잡한 전력의 공안 수사 전문가들을 요직에 등용했다.
윤석열은 흉악범죄 대처,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공권력 강화를 추진했다.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자 정부는 주요 도심에 무장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해 계엄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유아인, 지드래곤, 이선균(결국 고인이 됐다)과 같은 유명인들을 떠들썩하게 속죄양 만들며 수사했다.
또, 정적 제거를 위해 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를 집요하게 수사했다. 방송 장악을 위해 KBS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하고, YTN을 민영화하고,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정부 비판적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반미 자주 좌파 탄압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권위주의적 통제가 결국 12월 3일 군사 쿠데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친일·군사독재의 후예 국민의힘
윤석열의 쿠데타 실패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쿠데타를 옹호했다.
이 당의 기반이 바로 친일·군사독재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직후 도망갔던 친일 관료 상당수가 미군정에 의해 발탁됐다. 이들은 자신의 수치스런 전력을 냉전 반공주의로 세탁했다. 이 점은 군부, 경찰, 검찰 같은 특별한 억압 기구일수록 두드러진다. 1950년대에 형성된 국가 고위 관료들도 독재 정부를 지탱하는 주요 축이었고, 1960년대에 성장한 재벌들도 정경유착으로 군사독재의 후원을 받으며 한국 경제를 지배하게 됐다.
역대 우파 정부뿐 아니라 윤석열도 ‘역사 전쟁’을 벌였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국힘(과 그 전신들)은 군부, 국가 관료, 재벌을 주요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석열뿐 아니라 국힘 의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지만 말이다.
이미 박근혜 퇴진 운동 때에도 친박 우익들은 군대가 계엄령을 선포해 운동을 진압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실제로 군부 내에서(특히 방첩사령부 중심으로) 친위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 국힘은 “탄핵 트라우마” 운운한다. 군사 쿠데타 주범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당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내면서 국힘도 끝장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