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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프랑스 신민중전선:
계급 협력은 극우 물리칠 방안이 아니라는 가장 최근 사례

지난해 프랑스에서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최근에 커다란 분열을 맞이한 신민중전선은, 좌파 정당이자 노동계급 정당인 진보당이 중도좌파 행세를 하면서 민주당과 동행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 좌파가 지난해 6월 신민중전선을 형성한 것은 총선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신민중전선은 급진 좌파 정당 ‘불복종 프랑스’(LFI)와 공산당, 반자본주의신당 등이 모여 결성됐지만, 거기에는 사회당도 포함됐다.

총선 결선 투표일인 7월 7일 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는 프랑스인들 ⓒ출처 Photothèque Rouge

사회당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정당이었지만, 지난 4반세기 동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빈번히 집권한 주류 정당으로서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명백하게 지키는 자유주의 정당이었다. 신민중전선은 파시즘에 맞선다며 좌파들이 그런 자유주의 정당과 손을 잡은 형식적인 ‘좌파’ 연합이었다.

신민중전선 설립에 고무받아 80만 명이 파시스트들을 규탄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운동 덕분에 총선 투표율이 20퍼센트포인트 이상 올랐다. 그리고 5만여 명이 ‘불복종 프랑스’로 새로 입당할 만큼 급진 좌파에게 우호적인 조건이 형성됐다.

총선 결과 신민중전선은 원내 최대 세력이 돼, 국민연합의 정부 구성을 막았다는 안도감이 좌파 측에 찾아왔다. 마크롱 측은 국민연합에 이어 3위에 그쳤고, 대통령직 사임이 거론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8개월 남짓 지난 지금 신민중전선의 위상은 참담하다.

우선, 국민연합(RN)의 위협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RN의 지도자들인 마린 르펜과 조르당 바르델라는 모두 35퍼센트 안팎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선거 이후 마크롱은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연합이 원내 제1 당은 못 됐어도 의석 수를 크게 늘린 덕분에) 국민연합의 지지에 기댔다. 그래서 좌파들은 국민연합의 승리가 완전히 저지됐다기보다는 유예된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특히, 마크롱이 사회당을 회유해 신민중전선을 분열시키는 것을 ‘불복종 프랑스’ 등 신민중전선 내 좌파들은 막지 못했다. 그에 따라, 마크롱이 총선 결과를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총리를 임명하는 것도, 강도 높은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막지 못했다. 지난 8년 동안 마크롱 정부에 대한 환멸이야말로 국민연합이 성장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었는데도 바로 그 정부가 다시 소생한 것이다.

신민중전선의 성취가 이처럼 좌절된 것은 파시즘을 막겠다며 좌파들이 자유주의(물론 사회적 자유주의를 표방했어도 자유주의이긴 마찬가지였다) 정당인 사회당과 손잡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한껏 고무할 수 없었고, 그 대신 선거·투표와 의회 내 샅바 싸움이 주요 수단이 됐다. 이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신민중전선의 내부 역학

지난해 6월 국민연합에 반대해 80만 명이 거리로 나온 일은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를 물리칠 진정한 방안을 찾고자 했음을 보여 준다. 오랫동안 국민연합은 자신들이 여느 보수 정당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해 왔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 가면이 벗겨지길 바랐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좌파는 국민연합에 맞서 기층 동원을 계속 이어가고 파업을 조직하려 하기보다는 신민중전선에 투표하는 것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파시스트를 억제한다는 구상은 좌파들을 흔히 기회주의로 이끌었다.

예컨대 국민연합의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주요 무기인 무슬림 혐오와 이민자 차별에 맞서 싸웠어야 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중요하게 건설했었어야 했다. 국민연합이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을 옹호했기 때문이다.(국민연합은 유대인은 증오하면서도 이스라엘 국가는 지지한다.)

급진 좌파인 ‘불복종 프랑스’는 6월 초 유럽의회 선거 때까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신민중전선 결성 후에 치른 6월 말, 7월 초 총선에서는 사회당을 의식해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는 심각한 기회주의였다.

총선에서 신민중전선 투표를 호소하는 ‘불복종 프랑스’의 장뤽 멜랑숑(가운데) ⓒ출처 La France insoumise

또한 신민중전선은 결선 투표(3위 후보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여럿 된다)에서 국민연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마크롱의 후보들을 지지해 자신의 후보들을 사퇴시키기도 했다. 그중에는 2023년 프랑스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맞서 싸웠던 연금 개악안을 기초한 엘리자베트 보른도 있었다. 이런 행보로 국민연합의 의석을 일부 줄였을지 몰라도 국민연합으로 하여금 “우리 당만이 진정한 야당”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해 줘, 마크롱 정부에 대한 환멸로 국민연합이 득을 볼 수 있도록 해 줬다.

가장 전투적인 반파시즘 활동가도 선거에서는 수동적인 방관자와 똑같이 1표만을 갖는다. 그래서 가장 온건한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좌파가 양보해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하기 쉽다. 이런 압력을 신민중전선이 받아들인 결과 (그 내부의) 사회당이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 직전까지 사회당은 그 당의 배신에 대한 지지자들의 환멸로 의석이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대선에서 2.0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하는 신세였었다. 하지만 신민중전선 덕분에 의석을 갑절 가까이로 늘린 것이다(59석). 그 결과 사회당은 신민중전선 안에서 ‘불복종 프랑스’(74석)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력이 됐고, 이는 좌파에 대한 온건화 압력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총선으로 원내 최대 세력이 된 신민중전선이 총리 후보로 내세운 인물도 사회당 계열 전문 관료 뤼시 카스테였다.

이런 사례들은 신민중전선 내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회당이 신민중전선 전체의 정치를 좌우했음을 보여 준다. 신민중전선은 좌파들이 선거로 파시즘을 막는다며 사회당에 타협하는 통로였지, 그 반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의회 내 샅바 싸움

좌파들은 신민중전선을 통한 선거 승리와 함께, 의회 내 샅바 싸움을 의회 바깥의 투쟁보다 중시했다. 총선 직후 마크롱이 가장 취약했을 때 좌파들은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안정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긴 “휴전”에 응하며 마크롱이 숨돌릴 틈을 줬다. 사실 신민중전선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므로 좌파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은 최다 의석 세력인 신민중전선 측의 총리 후보(위 언급된 뤼시 카스테)를 거부하는 것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는 9월에는 드골주의자(우파 세력이다)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불복종 프랑스’는 “민주주의가 도둑맞았다”며 항의 시위를 조직했고, 30만 명이 그에 호응해 거리로 나섰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잠재력을 보여 준 사건이었지만 ‘불복종 프랑스’는 이를 정권 퇴진 운동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선거를 통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민중전선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한 연합이었음에도 국민연합의 주요 조직들이 곳곳에서 집회를 열 때도 맞불 집회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 탓에 맞불 집회는 해당 지역의 반파시즘 활동가들만 동원해 수백 명 규모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신민중전선이 이룬 최대치는 12월 의회 표결로 총리 바르니에를 불신임시킨 것이었다. 그가 긴축 예산안을 의회 표결 없이 행정명령만으로 통과시키려 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우파 총리의 불신임이 좌파 측의 주도로 통과된 것에 고무받아 12월 동안 노동자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때로 수만 명이 파업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 이런 투쟁들이야말로 마크롱 정부에 대한 환멸을 국민연합 쪽이 아니라 좌파 쪽으로 되찾아올 기회였다.

“연금, 임금, 고용, 공공부문”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해 지난해 12월 파업·시위에 나선 노동자들 ⓒ출처 UFSE-CGT

그러나 신민중전선에 속한 노동총연맹(CGT) 등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파업을 실질적으로 벌일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는 신민중전선이 의회에서 긴축 예산안을 완화시켜 주리라 기대했다.

오히려 그들은 “국정 안정을 위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을 신민중전선을 통해 받았다. 실제로, 총리 불신임으로 프랑스의 위기는 커졌다. 신용평가사 S&P와 무디스는 각각 11년과 9년 만에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사회당 소속 전임 대통령이자 현 국회의원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12월 16일에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며 ‘정국 안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긴축 재정과 결합된 ‘국정 안정’ 요구는 노동계급이 고통을 떠안으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국정 안정과 긴축 재정은 또한 프랑스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그들의 사활적 요구이기도 했다.

위기는 신민중전선 내 좌파와 사회당 사이의 지향점 차이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결국 올해 2월 사회당은 신민중전선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간 사회당을 신민중전선에 매어두기 위해 갖은 타협을 한 ‘불굴의 프랑스’ 등의 좌파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마크롱은 신민중전선을 분열시키는 데에 결국 성공한 덕분에, 통과가 한 차례 좌절됐던 긴축 예산안을 일부만 손봐서 결국 의회 표결 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다. 국민연합은 이 예산안에서 이주민 의료 예산 증액 계획을 백지화시키는 등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신민중전선의 8개월 경험은 좌파가 파시즘에 맞선다며 자유주의 정당과 손잡는 전략은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계급투쟁보다 선거와 의회 내 샅바 싸움을 훨씬 중시하면서 대중의 반파시즘 투지를 진정한 대중 투쟁으로 구현하지 못했다. 또한 파시스트가 성장한 원인인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욱 첨예해질수록 자유주의 정당은 신뢰할 만한 동맹이 절대 못 된다는 것도 보여 준다.

6월과 9월, 12월처럼 주요 국면마다 대규모 행동에 나섰던 프랑스 노동자 등 서민에게 ‘의회에 기대지 말고 거리 시위와 파업으로 극우를 물리치자’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했다.

특히,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으로 기성 질서와 이윤 시스템을 뒤흔들 힘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프랑스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본지는,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쿠데타를 옹호하는 극우를 제압하려면 노동계급이 총파업을 만만찮게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보면, 극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킬 힘은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과 조직에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을 주도하는 세력의 일부인 주류 반미자주파는 노동계급 운동 안에 뿌리를 내린 세력으로서 그런 총파업을 설득하고 조직하기 위한 기반을 만만찮게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파업으로 기성 질서를 마비시킬 잠재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시큰둥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3월 27일로 멀찍이 잡은 것이 이를 보여 준다.(그것도 3월 26일까지 헌재 선고가 공고되지 않는 경우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들이 민주당과의 전략적 동맹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비록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노동계급한테서도 많은 선거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기업주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애쓰고 있고 그래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일관되게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월 20일 이재용을 만나 “삼성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덕담을 한 것이나, 민주당이 국민연금 개악안을 놓고 국힘과 타협한 것은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주류 반미자주파는 계급 투쟁이 아니라 ‘윤석열 등 극우에 맞서 계급을 초월한 최대한의 광범한 단결’을 이루는 것이 더 강력한 연대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930년대 코민테른의 민중전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민중전선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공산당이 ‘진보적 부르주아지’와 손잡아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충하는 계급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 세력들 간의 전략적 연대는 겉보기로는 더 많은 세력을 포함시킬 수 있어도 투쟁에서 실제 발휘하는 힘은 오히려 약화시킨다. 극우·파시스트가 성장하는 원인은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인데 바로 그 자본주의를 명백하게 수호하는 자유주의적 정당과 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합 안에서 노동계급은 자유주의 정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계급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깔린 전제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과 극우·파시즘에 맞서는 투쟁이 별개이고, 극우·파시스트를 선거와 집권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민중전선으로 일시적인 선거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계급 투쟁 동력이 약화돼 파시스트에 권력을 내준 사례들이 많다(대표적으로 1930년대 프랑스와 스페인, 1973년 칠레).

헌법과 선거보다 계급 투쟁이 극우·파시스트를 물리칠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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